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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오직 노와 오로지 예스의 공통된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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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
논설위원

미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대통령은 누구일까. 전시(戰時)를 제외한다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라는 게 미국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의 최근 평가다. 와스프(WASP·미국 사회의 주류인 백인 앵글로색슨 신교도) 전통이 여전한 미국에서 첫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가, 더구나 임기 마지막 해에 어떻게 가장 힘센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걸까. 그것도 2014년 이후 상하 양원에서 모두 야당인 공화당이 다수를 점한 여소야대 정국에서 말이다.

‘강한 오바마’를 만드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은 역설적으로 오바마를 ‘독재자’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 거대 야당이다. 공화당은 2009년 오바마 취임 후 “오바마가 찬성한다면 우린 반대한다”는 입장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다. 오바마케어(건강보험 개혁)를 반대하며 2013년 예산안 처리를 무산시켜 정부 폐쇄(셧다운)를 초래했고, 지난해 2월엔 이민개혁안에 반대해 예산안 처리를 막다가 또 한 번 국토안보부를 셧다운시킬 뻔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바마는 공화당의 노골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정책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차근차근 이끌고 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비장의 무기는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행정명령과 대통령지침, 그리고 거부권이다.

공화당이 불법 이민자 추방 유예를 반대하자 오바마는 행정명령을 발동했고, 공화당이 하원에서 행정명령을 백지화하는 법안을 의결하자 거부권으로 맞섰다. 이란과의 핵 협상 역시 공화당의 반대 장벽을 오바마는 행정명령으로 헤쳐 나왔다. 이란은 2012년 이후 금지됐던 원유와 석유화학제품 수출을 올해부터 재개할 수 있게 됐다. 공화당은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도 거품을 물고 반대하지만 오바마가 행정명령으로 담장을 일부 허무는 걸 막지 못했으며,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88년 만인 오바마의 역사적 쿠바 방문을 닭 쫓던 개처럼 바라봐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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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오바마는 지금껏 연평균 33건의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급은 좀 떨어지지만 효과는 거의 비슷한 대통령지침은 500번 넘게 사인했다.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많은 수치다. 이쯤 되면 공화당의 “오바마는 독재자!” 외침에 울림이 있을 법도 한데 그렇지 않은 것은 “노(No)만 외치는 야당이 행정부의 정당한 정책 집행을 부당하게 방해한다”는 국민적 인식 때문이다.

공화당의 골칫거리가 된 도널드 트럼프가 공화당의 유력한 대선후보로 부상한 것도 사실 그 같은 정쟁에 신물 난 공화당 지지자들의 선택이다. 부랴부랴 공화당 주류가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을 대항마로 내세웠지만 공화당의 구세주가 되기에는 역부족이다. 크루즈가 오바마 행정부에 사사건건 반대하면서 이름을 얻은 대표적인 정치인인 탓이다. 공화당의 일관된 반대가 오히려 공화당의 발목을 잡고 임기 말의 오바마가 정력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준 것이다.

미국 정치를 장황하게 거론한 것은 반면교사(反面敎師)를 위해서다. 그와 정반대이면서도 비슷한 상황이 우리나라에서도 펼쳐지고 있는 까닭이다. 야당 아닌 여당의, ‘오직 노’ 아닌 ‘오로지 예스(Yes)’가 대통령의 지지율을 20%대로 끌어내리고 레임덕을 재촉하고 있다. 새누리당 총선 참패의 근본 원인을 ‘대주주’인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에서 찾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지만, 그러한 뼈대에 살을 입혀 몸통을 완성한 것은 결국 집권 새누리당이다.

우리네 사정은 다 아는 바이니 긴 설명이 필요 없다. 다만 시대착오적 국정교과서를 밀어붙이는 대통령의 발밑에 “지당하십니다”의 주단을 까는 모습과 연이은 총기난사 테러에도 대통령의 총기규제 강화에 무작정 반대하는 모습이, ‘비박’을 쓸어버리겠다는 ‘무대포’ 공천과 추가 셧다운을 막기 위해 부득이 예산안 합의 처리에 나선 존 베이너 하원의장을 ‘배신자’로 몰아 쫓아내 버리는 모습이 반대이면서도 닮은꼴로 겹쳤다는 것만 얘기해야겠다.

미국이나 우리나 지금의 정당정치 체제로는 앞으로도 나아질 희망이 없다고 나는 확신한다. 과거에는 정당들이 비난받는 이유가 당리당략(黨利黨略)이라도 됐지만 지금은 특정 계파의 사리사략에 따라 예스, 노가 정해지는 상황이다. 미국의 ‘프리덤 포커스(초강경 하원의원 모임)’나 한국의 ‘진박’ 같은 꼬리에 휘둘리는 몸통이 오늘날 미국과 한국의 정당들이다. 그들이 어느 날 갑자기 뜻한 바 있어 (한국의 경우 총선에 나타난 민심을 받든다고), 계파 이익을 버리고 국리민복을 생각하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불가능하다. 표심을 보여줬던 유권자들은 또다시 4년을 기다리는 것 말고 달리 방법이 없다.

앞으로 이 지면을 통해 대안 마련을 모색할 터지만 정치학자들이 함께 고민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현대사회의 다양한 요구를 반영하지 못하는 양대 정당이 정치시장의 90% 이상을 독점해 온(그런 의미에서 힘 있는 3당의 출현은 고무적인 결과다), 정책 마케팅보다 권력의 향배를 좇는 정치공학에만 뛰어난 사람들이 정당을 주무르는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근본적인 정치개혁을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는 명분 아래 정치에 참여해서는 더욱 출중한 정치공학적 역량만 발휘하는 폴리페서가 되지 말고 말이다.

이훈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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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