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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V의 유혹, 100년 명차 브랜드도 넘어갔네

| 마세라티 첫 SUV ‘르반떼’ 타보니
‘미친 모드’ 시속 200㎞ 금세 주파
경사 40도 흙비탈길도 거침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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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김기환 기자가 지난 20일(현지시간) 마세라티가 선보인 최초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르반떼’를 타고 이탈리아 타비아노 인근 오프로드(험로)를 달리고 있다. 오는 10월 국내에 출시되는 르반떼는 포르쉐 SUV ‘카이엔’과 정면승부하기 위해 내놓은 신차다. 예상 가격은 1억1000만~1억4270만원. [사진 마세라티]


‘르반떼(Levante)’는 아랍어로 ‘지중해에서 부는 바람’이란 뜻이다. 따뜻하지만 힘찬 바람이다. 100년 역사의 이탈리아 자동차 업체 ‘마세라티’가 르반떼란 이름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처음 선보여 주목받고 있다. 본지 기자는 지난 20일(현지시간) 이탈리아 파르마 인근 타비아노에서 르반떼를 시승했다.

먼저 마세라티 고유의 ‘삼지창’ 엠블럼이 박힌 운전대를 쥐었다. 이탈리아 패션 업체 ‘에르메네질도 제냐’와 협업해 만든 가죽 질감이 매끄러웠다. 페데리코 란디니 르반떼 개발 총괄은 “미국·독일·일본 브랜드와 달리 디자인·개발·생산 모두 이탈리아에서 이뤄진 ‘메이드 인 이탈리아’(Made in Italy) SUV”라고 소개했다.

일반 차량의 ‘스포츠(Sport)’ 모드를 넘어선 ‘미친(Insane)’ 모드로 달리자 시속 200㎞를 금세 주파했다. 특유의 ‘우르릉’하는 배기음도 여전했다. 200㎞를 달리는 동안 소음·진동도 거의 느끼지 못했다. 몸놀림도 가벼워 마세라티의 스포츠 세단인 ‘기블리’나 ‘콰트로포르테’처럼 운전하기 버겁지도 않았다. 하이라이트는 4륜 구동의 장점을 십분 느낄 수 있는 ‘오프 로드(험로)’ 주행이었다. 경사 40도의 흙비탈길을 시속 10~20㎞로 거침없이 오르내렸다. 란디니 총괄은 “명차의 품격을 유지하면서 쉽고, 빠르게 달릴 수 있는 SUV를 만드는 데 주안점을 뒀다”고 말했다.

고성능 자동차 업체들까지 SUV 시장 쟁탈전에 뛰어들면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마세라티는 르반떼를 10월에 국내 출시할 계획이다. 예상 판매가격은 1억1000만~1억4270만원이다. 앞서 지난 2003년 “스포츠카의 정체성을 버렸다”는 우려 속에 출시한 포르쉐의 SUV ‘카이엔’이 인기를 끌자 내놓은 대항마다.

| 재규어·벤틀리·람보르기니 등
“시대가 변했다” SUV 앞다퉈 개발
기존 브랜드, 라인업 확대로 맞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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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규어 ‘F-페이스’


이뿐이 아니다. ‘영국의 자부심’으로 불리며 고가의 세단을 주로 만든 재규어·벤틀리도 각각 최초의 SUV ‘F-페이스’와 ‘벤테이가’를 올해 중 출시할 계획이다. 현대차 제네시스 브랜드도 2020년까지 SUV 출시를 공언했다. 심지어 ‘명품 위의 명품’으로 꼽히는 람보르기니·롤스로이스 같은 브랜드조차 SUV를 개발 중이다. 란디니 총괄은 “시대가 바뀌면 우리도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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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틀리 ‘벤테이가’


이들까지 SUV 대열에 가세하는 건 폭발적인 시장 성장세가 멈추지 않고 있어서다. 저유가 추세가 이어지고 디젤차가 인기를 끌면서 시들해진 세단 시장을 SUV가 대체하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는 올해 국내 자동차 판매 규모를 전년보다 2.8% 감소한 175만대로 예상했다. 반면 수입차와 SUV 판매는 각각 7.7%와 0.4% 증가할 것으로 분석했다. 또 국내 자동차 판매에서 SUV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1년 19.3%에서 지난해 34.1%로 증가했다. 대림대 김필수 자동차학과 교수는 “실용성을 중시하는 추세에 여가 문화가 확산하면서 SUV의 인기도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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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자동차 업체들은 소형·중형·대형으로 나뉘던 SUV의 틀을 깨고 다양화하는 전략으로 맞대응에 나서고 있다. BMW는 역동적 주행 성능을 강조하기 위해 자사 SUV를 ‘스포츠액티비티쿠페(SAC)’라고 일컫는다. ‘X6’가 대표적이다. 볼보는 ‘V60’처럼 해치백에 SUV 특성을 더한 ‘이종 융합형’ SUV를 ‘크로스컨트리’라는 이름으로 내놓고 있다. 인피니티는 차체를 높여 기존 소형 SUV와 차별화한 해치백 스타일 ‘Q30’을 올해 국내 출시한다.

정체성을 바꿀 정도의 변신도 한창이다. 군용차에서 시작한 미국 SUV 브랜드 지프는 창립 74년 만인 지난해 처음으로 소형 SUV ‘레니게이드’를 출시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수입차가 세단 시장에서 야금야금 입지를 넓히는 상황에서 SUV마저 뚫리면 돌파구가 없다”며 “SUV 라인업 확대를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용근 자동차산업협회 회장은 “세단 판매에 중점을 두는 국산차 브랜드들도 시장 수요에 맞춰 생산 차종을 다양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타비아노=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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