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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의 사소한 취향] 내 인생에 기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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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
문화스포츠섹션부문 기자

TV를 보며 훌쩍대는 건 나이 드는 징조 같아 참아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요즘 ‘눈물유발자’는 JTBC ‘힙합의 민족’(사진)이다. 올해로 80세가 된 배우 김영옥씨를 비롯해 이용녀·양희경·이경진·문희경·최병주·염정인·김영임 등 평균 나이 65세의 ‘할머니급’ 여성 8명이 프로 래퍼와 팀을 이뤄 힙합 경연을 펼치는 프로그램. 실소를 자아내는 ‘병맛 예능’ 선호자인 터라 웃음이 터지길 기대하며 보기 시작했는데 웬걸, 배신을 당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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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미더머니’ ‘언프리티랩스타’ 같은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이 한창 인기일 때 한 음악평론가에게 물었다. “한국 사람들은 노래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랩까지 잘하네요. 왜 그럴까요?” 그의 대답은 이랬다. “힙합이란 게 원래 억압받고 살아온 흑인들의 한풀이로 생겨난 장르잖아요. 우리야말로 ‘한의 민족’ 아니겠습니까. 랩으로 상대를 비판하는 ‘디스(diss·disrespect에서 나온 말)’도 그래요. 당쟁과 사화, 이게 다 디스의 역사예요. 하하.” 반쯤 농담으로 들었지만 ‘힙합의 민족’을 보면 살짝 알 것도 같다. 힙합의 소울(Soul)이란 이런 것인가.

그동안의 힙합 프로그램에서 젊은 래퍼들이 풀어낸 인생 스토리란 대개 가난한 환경을 딛고, 혹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음악의 길을 선택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짧게는 오십 몇 년, 길게는 팔십 년을 이 땅에서 여성으로 살아온 ‘할미넴(할머니+에미넴)’들의 사연은 ‘레벨이 다르다’. 누구는 전쟁을 겪었고, 암 투병을 했고, 이혼을 했고, 한때 삶에 지쳐 목숨을 끊으려 했다. 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신데렐라였지만 불운하게 뜨지 못했고, ‘딴따라’의 길을 반대하는 부모님께 들킬까 이불을 뒤집어쓰고 소리를 연습했다. 이런 이야기들이 리듬에 실려 주르르 흘러나오니, 김영옥 할머님의 이 말에 고개가 끄덕여질밖에. “얘들아, 이게 진짜 힙합이다.”

더 큰 감동의 순간은 ‘망하더라도 한번 해볼까’라는 도전을 넘어, 실제로 성장하고 있는 이들의 실력을 확인할 때다. 박자 감각이 영 없어 보이던 출연자가 조금씩 리듬을 타기 시작할 때, 아들뻘인 래퍼와 속사포랩 배틀을 멋지게 해냈을 때 가슴 찡한 위안이 찾아온다. “여든이든 아흔이든 하고 싶은 건 하면 된다”(김영옥)는 것, 노력하면 누구나 나아질 수 있다는 것. 1회 때 왜 이 프로에 출연했느냐는 질문에 한 출연자가 답했다. “내가 내 인생에 기대를 할 수 있잖아요.” 맞다. 내 인생에 대한 기대를 멈추지 않는다면, 할 수 있는 건 아직 너무 많다.

이영희 문화스포츠섹션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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