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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는 봤나, 버튼 누르면 접히는 우산

오스트리아 빈의 알베르티나 미술관을 찾았던 적이 있다. 새로운 20세기를 연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쉴레의 그림이 소장되지 않았다면 관심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도록으로 본 그림은 허상이다. 원화의 감동은 대단했다. 예술품을 보고 호흡 곤란에 현기증마저 생긴다는 ‘스탕탈’ 신드롬에 빠질 뻔했다.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것들이 널려있는 빈이다. 도시의 아름다움에 빠져 “비엔나스럽다”란 감탄을 연발했다.



하지만 변덕스러운 날씨는 사절이다. 해가 비치는 듯하다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기 일쑤다. 지나던 사람들은 익숙한 듯 우산을 꺼내들었다. 놀랄 만했다. 거리에 우산 행렬이 동시에 이어지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비를 피해 들어간 노천카페는 빈 사람들의 일상을 심도 있게 들여다보게 했다. 여행자는 바라보는 일만으로도 즐겁다. 제 기준으로 때론 상대의 입장이 되어 마음대로 상상해도 좋은 덕분이다.



윤광준의 新 생활명품 -38- 도플러 우산

사람들이 들고 있는 우산에 눈길을 빼앗겼다. 박쥐의 날개를 펼친 듯한 검정 우산, 세련된 색깔의 체크무늬 우산에 클림트의 유명한 그림 ‘키스’를 그대로 옮겨놓은 우산도 보였다. 나무로 만든 손잡이의 다양함도 빼놓을 수 없다. 둥글게 흰 손잡이부터 끝에 개의 머리 부분을 조각한 것까지. 짙은 광택의 로즈우드가 풍기는 뭉툭한 기품도 괜찮다. 기다란 장우산, 접이식 우산…. 빈 사람들은 비 오기를 일부러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상용품조차 감각의 대상으로 삼는 듯한 행동은 풍요롭다. 돌멩이가 박힌 보도를 걷는 템포도 느리다. 클림트와 쉴레가 뿌린 빈의 문화 전통이 현실 공간에서 재현되는 것일까. 우산은 비를 막아주는 도구뿐 아니라 도시의 미관을 담당하는 오브제 같았다. 도시의 품격은 그 안에 사는 보통 사람의 선택이 드러난 아름다움이기도 하다.



유럽의 날씨는 개떡 같다. 기온은 낮지 않은데 춥다. 멀쩡하던 날씨가 오후엔 부슬거리는 비로 바뀐다. 변덕의 하루는 어쩌다 한 번의 이변이 아니다. 대비의 몸짓은 당연하다. 사람들의 가방을 일일이 열어보지 않아도 우산 하나쯤 들어있으리라. 필수품이라 할 우산에 쏟는 관심은 당연하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한다. 우산을 드는 일이 즐거움으로 바뀌어도 좋은 이유다.



생각과 행동은 물론 감정마저 물건의 영향을 받는다. 일회용 비닐우산을 들면 채신머리 없이 뛰어도 이상할 게 없다. 반면 좋은 우산을 들면 행동이 조심스러워진다. 물건의 선택은 외부로 드러나는 속내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버릴 것을 전제로 하는 물건에 깃들 애정은 없다. 기능을 웃도는 아우라가 풍기는 물건이라야 각별해진다. 오래 간직되고 변함없는 품격의 우산이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 다 빈에서 본 풍경 때문이다.



얇은 천, 견고한 살, 널찍한 가리개의 미덕우산 명품들은 하나같이 프랑스?독일?오스트리아에 몰려있다. 손으로 만드는 엄청난 고가의 우산도 많다. 오스트리아의 우산 브랜드인 도플러를 찾아낸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1947년부터 우산과 햇빛 가리개만을 만들어 왔다. 고급 수제품부터 야외용 파라솔까지 구색을 두루 갖췄다. 국내에도 꽤 오래전부터 정식 수입돼 팔리고 있다.



우산에 뭐 그리 대단한 게 담겨 있을까. 도플러의 겉모습은 여느 우산과 다를 게 없다. 세상 모든 것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직접 만져보고 써 보며 시간을 묻혀야만 알게 되는 비밀이 있다. 도플러도 그랬다.



비 오는 날 우산을 쓰다 보면 별의별 일이 생긴다. 갑자기 우산이 펴져 놀라거나 우산살이 얼굴을 찌르는 경우도 있다. 잘 펴지지 않는 우산 때문에 비를 맞기도 한다. 승용차를 탈 때 쉽게 접혀지지 않는 우산은 난감하기도 하다. 세찬 바람에 우산이 뒤집히는 낭패의 기억도 흔하다.



어쩌다 한 번 쓰는 우산이라 지나쳐 버릴 수도 있겠다. 말을 하지 않아 그렇지 기존 우산의 불만은 하나 둘이 아니다. 사람들은 작은 불편에 더욱 민감하게 마련이다. 우산이라는 물건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을 뿐이다. 세상의 변화는 작은 문제의 개선으로 비롯된다. 수많은 우산 메이커가 흘려버린 기능과 형태를 도플러는 두 눈 부릅뜨고 찾아냈다.



우산의 본령이란 비가 새지 않는 방수기능에 있다. 도플러의 겉감은 얇고 부드럽다. 얇은 두께는 겉이 비칠 정도다. 흔히 우산 천의 소재로 쓰는 폴리에스테르와는 다른 느낌이다. 더 큰 면적을 접어 넣기 위해 얇아진 천은 번들거리지 않고 부스럭 거리지도 않는다. 이 정도 두께로 물이 새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접어도 좋다. 폭풍우도 견뎌내는 방수기능은 혀를 찰 정도다.



세찬 바람도 견뎌내야 한다. 우산대와 우산살의 구조와 강도가 확보돼야 얻을 수 있는 성능이다. 견고한 파이프와 카본 파이버 재질의 부품 덕에 도플러의 우산은 시속 100km의 강풍도 견딘다. 믿거나 말거나 실험결과로 입증됐다.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허약하게 뒤집히는 우산은 이제 안녕이다.



버튼을 누르면 펴지는 자동 우산은 시대의 기준이 됐다. 이것만으론 모자란다. 반대로 접혀지는 우산을 본 적 있는가. 있으면 나와 보시라. 도플러는 버튼을 누르면 펴졌던 우산이 접혀진다. 한 손으로 우산을 펴고 접을 수 있다는 말이다. 비 오는 날 승용차를 탈 때 마음은 바쁘고 두 개의 손은 턱없이 모자란다. 두 손으로 우산을 접는 사이 열린 문에 들이치는 비에 당혹스러웠던 기억을 떠올려보라. 긴박한 순간 한 손으로 우산을 접고 빨리 문을 닫는 이점만으로도 난 도플러에 ‘뻑’ 갔다. 약장수 톤의 광고가 아니다. 직접 써 본 경험의 일부일 뿐이다.



익숙한 것과 결별하라, 비범하게 마무리하라16일 서울에 세찬 비가 내렸다. 알량한 우산으로 제 몸 하나 가리지 못한 사람들을 여럿 보았다. 휴대성에 가려진 접이 우산의 작은 크기 탓이다. 2단 접이 방식의 한계란 뻔하다. 3단으로 접은 도플러 우산의 여유는 웬만큼 뚱뚱한 사람의 어깨라도 충분히 감싼다. 여유의 비축은 대부분의 경우 유리하다. 난 그날 아리따운 여인과 함께 우산을 썼다. 우산 속의 남녀는 붙을수록 비를 덜 맞는다. 따뜻한 체온이 번지는 어깨를 감싸고 걷던 비 오는 광화문 거리는 너무 좋았다.



우산 때문에 곤욕을 치른 기억들이 생각보다 많다. 우산의 역사는 길다. 익숙한 우산이 전부라 생각해 더 이상 개선을 하지 않은 게 아닐까. 열었으면 다시 닫아야 하는 게 물건의 속성이다. 한 손으로 접히는 우산은 만들어진 적이 없었다. 작은 우산의 불편은 크기를 키우는 방법밖에 없다. 세 번을 접어 펼치면 두 번 접는 것보다 당연히 커지게 된다. 관행과 습관의 고정관념을 보기 좋게 뒤집은 도플러의 개선은 훌륭했다. 세상의 위대함은 작고 사소한 것을 흘려버리지 않는 데서 출발한다.



사물과 현상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자들의 발견으로 새로움이 열린다. 다시 들여다보아야 할 것들이란 얼마나 많은가. 창조적 행동이란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강박이 아니다. 열려야 하는 필요만큼 닫혀야 하는 이유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창조경제는 말뜻을 알지 못해 실천하기 어렵다. ?평범한 것을 비범하게 마무리하는 능력?이라 바꾸면 쉽게 다가오지 않을까. 도플러 우산엔 눈여겨 보아야 할 소중한 내용들이 담겨있다. ●



 



 



윤광준 ?글 쓰는 사진가. 일상의 소소함에서 재미와 가치를 찾고, 좋은 것을 볼 줄 아는 안목이?즐거운 삶의 바탕이란 지론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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