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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특집│단독 인터뷰] ‘킹이 되느냐, 킹메이커가 되느냐’ 4·13총선 승장(勝將) 김종인 더민주 대표

조직 동원해 당 대표 경선에 나설 일은 없어… 광주 내려가 호남민심 이반의 원인 직접 찾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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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더민주 비상대책위 대표는 “당의 수권 능력을 높여 정권 교체를 이뤄야 한다는 강한 소명의식을 느낀다”고 말했다.

총선 승리 후 김종인 더민주 대표의 행보가 바빠졌다. 우선 6월경 예정된 전당대회가 분수령이다. 당권을 잡고 대선까지 가느냐의 문제다. 소위 킹메이커가 되는 코스다. 킹이 되려 한다는 소문도 있다. 몰락의 리스크를 무릅써야 하는 코스다. 그의 심중을 캐어물었다. 자신감을 내비치며, 새로운 정권을 만들겠다고 답했다.

“난 대통령학 50년 연구한 사람, 정권교체로 결론 내겠다”

김종인 더민주 대표와의 단독 인터뷰는 4월 15일 오전 그가 자주 들르는 시내 한 호텔에서 조찬을 겸해 90분여에 걸쳐 이뤄졌다. 승리의 주역이 된 그의 표정은 역시 밝았다. “수도권의 정치민심이 결코 간단치 않다는 걸 잘 보여준 선거”라고 자평했다. 머리에 가발을 쓰고, 거리에서 춤추고, 샌드위치맨이 되기도 했던 선거였다. 혼신의 힘을 다했던 선거에서 압승을 거둬 감회가 깊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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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대표가 4월 13일 밤 국회 의원회관 투개표 상황실에서 이종걸 원내대표와 함께 서울 종로 정세균 당선자 이름에 당선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원내 제1당의 대표가 된 김종인에게 가장 궁금한 점은 차기 대선에서의 그의 역할이다. 킹메이커냐 아니면 킹이냐? 선거 기간 중 열린 관훈토론회에서 “더 이상 킹메이커는 하지 않으려 한다”고 공언했던 그다. 형식 논리로만 보면 그의 목표는 한 길이다. “수권 정당 만들어 정권교체 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한 이상, 그의 야망은 스스로 킹이 되는 것임이 자명하다. 차기 대선에 출마하지 않는다는 말도 한 적이 없다. 김 대표는 이번 인터뷰를 통해 “독일 유학시절부터 경제학과 정당 연구를 통해 국가 최고 지도자의 역할을 집중 연구했다”고 말했다. 그는 “여러 명의 대통령을 최지근 거리에서 지켜본 것까지 합치면 50년 이상 대통령학을 연구한 셈”이라고도 덧붙였다. 대통령의 역할과 자질론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풍부한 이론과 경험을 축적하고 있다는 자신감이다.

김종인이 과연 대통령감인가는 토론과 검증이 필요한 테마다. 여론조사에 그의 이름이 오른 적도 없다. 가능성 여부는 아직 ‘깜깜이’에 가깝다. 다만 그가 더민주의 차기 대권 구도를 철저히 ‘체크 앤 밸런스(견제와 균형)’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은 주목해야 한다. 그 누구도 대통령 자질을 온전히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고 누누이 강조해왔다. 자신을 중심에 두고 여러 후보를 경쟁시키는, 이른바 ‘택군(擇君)의 스탠스’를 유지했다. 자신의 목표가 킹이든 킹메이커든 가장 적절한 정치적 처신일지도 모른다.

그는 현재까지 야권 대권 후보 그 누구에게도 ‘애호의 방점’을 찍기 거절하면서, 자신의 발언과 처신 하나하나를 뉴스의 중심에 노출하고 있다. 노회하기 그지없는 정치 감각이다. <월간중앙>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가 처음으로 밝힌 입장은 “차기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 경선 후보로 나설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더민주에 오래 몸 담았던 사람도 아니고, 당 내부에 조직과 세력을 거느리고 있지도 않다”면서 “그런 사람이 당 대표 경선에 나선다는 것은 상식과 맞지 않는 얘기”라고 못박았다.
 
l “광주 방문, 문재인과 동행할 생각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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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대표는 유세 기간에 거리에서 춤을 추는 등 혼신의 힘을 다해 더민주의 압승을 일궈냈다.

그럼에도 김 대표는 더민주의 향후 세력 확장 가능성에 강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수도권에서의 승리가 호남에서의 승리보다 더 확장력이 강하다고도 말했다. 방방곡곡에서 모인 사람들이 수도권 유권자이므로 수도권의 당세는 실핏줄을 타고 전국으로 퍼져나간다는 것이다. 그는 여러 차례 “대선 전까지 당의 수권 능력을 높여 정권 교체를 이뤄야 한다는 강한 소명의식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표 대결하는 대표 자리에 도전하지 않겠다는 것과 정권교체의 소명을 느낀다는 발언은 미묘한 파장을 부른다. “당 대표로 합의추대를 기대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선 “수권 정당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는데, 당이 그것을 원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경선에 나서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역할과 소명을 강조한 것을 종합할 때, 내심 그가 합의 추대를 원하는 것으로도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당권을 바라보는 여러 명의 후보가 거론되는 가운데, 당내 일각에서는 추대 형식의 김종인 대표설도 이미 나돌고 있다.

김 대표는 더민주가 ‘혁명에 가까운 압승’을 일궜다고 자평하면서도 호남 지역에서의 완패에 대해서는 크게 우려했다. 조만간 광주에 내려가 호남민심의 이반 원인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호남지지 없으면 정계 은퇴하겠다”는 문재인 전 대표의 총선 직전 광주 발언에 대해서는 심각한 의미를 부여하진 않았다. “민심은 유전하는 것이므로, 광주 발언 때문에 거취를 너무 고민할 필요는 없다”고 문 전 대표를 감쌌다. 그러면서도 “광주 방문 시 문 전 대표와 동행할 생각은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1990년대 초반 청와대 경제수석 당시 대권 도전의 꿈을 키운 적이 있다는 사실도 처음으로 밝혔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에게 “차기 대통령은 50대에서 나와야 하며 만일 적합한 후보가 없다면 내가 한번 나서보겠다”고 건의했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무엇을 하는 자리인가에 대한 인식이 확고하며, 지금도 나를 위한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l “선진국 정당정치 깊게 연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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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대표는 선거날인 4월 13일 오전 조부인 가인 김병로 묘소 참배를 위해 수유리 선영을 찾았다.

이번 총선 과정에서 손학규 고문에게 러브콜을 보냈다가 거절당한 해프닝에 대해 민망했던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손 고문 입장에선 기회를 놓친 것”이라고도 말했다. 더민주 차원에서 막판 지원유세를 해달라고 부탁했을 때 거절함에 따라 정계에 복귀할 기회를 놓쳤다는 의미였다. 김 대표는 선거 결과에 대해 “110석 이상은 자신했지만 1당이 될 줄은 미처 몰랐다”며 “수도권에서 압승을 거둔 만큼 당세 확장에도 탄력이 붙을 것”이라 전망했다. 특히 김 대표는 대선 직전까지 당을 이끌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정당 안에 두 사람의 보스는 필요없다”는 말도 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는 “곧 만나 관계가 회복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파란색 가발 쓴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저렇게 열심히 뛰는 것을 보니 대선에 직접 나갈 것이 분명하다”고 보는 사람이 많았다.

“(웃음) 혼신의 힘을 다 했던 것은 사실이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한 번도 그런 일 하지 않았다. 이번엔 서슴없이 했다. 당의 공천을 받고 당선을 위해 애쓰는 후보들이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부끄러웠지만 무릅쓰기로 했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원래 염치를 내려놔야 할 경우가 많다.”

춤 솜씨도 나쁘지 않았다.

“젊은 시절 한때 춤에 몰두했던 적도 있다.”

막판에 하루 20곳 이상을 뛰는 유세를 벌였다. 건강에 큰 무리는 없었나?

“한 이틀 쉬고 나니 정상적인 신체 리듬이 돌아왔다.”

6월 중 전당대회 때 거취는 구상했나? 대표 경선에 나가는 것인가?

“난 이 정당에 몸담았던 사람도 아니고 조직과 세력을 거느리고 있는 것도 아니다. 솔직히 국회의원 이름도 다 모른다. 조직이나 계파와 전혀 관계없는 사람이 무슨 대표 경선을 나가나? 상식적으로 봐도 웃긴 얘기다. 내 역할을 당이 원하지 않으면 그뿐이다. 자리다툼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수권 정당을 만들어보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대통령 선거까진 당을 봐줘야 하는데, 당이 그걸 원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경제민주화 철학을 구현할 대통령 후보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만일 적당한 사람이 없다면 본인이 직접 나갈 생각도 있나?

“노태우 대통령 시절 청와대 경제수석 할 때 대권 도전을 생각한 적이 있다. 노 대통령에게 50대 나이의 대통령감을 찾아야 한다고 건의했다. 대통령이 ‘누가 있겠나?’ 묻기에 ‘없으면 저라도 나가겠다’고 말했다. 지금 다 밝힐 순 없지만 진지하게 고민하고 준비했던 적이 있다. 경제학을 주로 공부했지만 독일 유학 시절에는 선진국 정당정치를 꽤 깊게 연구했다. 국가 최고 리더의 자질과 역할에 대해 공부한 것이다. 나는 20대 초반에 이미 한국 최고 정치 지도자들의 행태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봤던 사람이다. 그것도 아주 결정적인 순간에 말이다. 이후에도 여러 명의 대통령, 대통령이 되기를 원하는 정치 지도자와 대화하고 토론했다. 그들의 정책 입안 과정에 깊숙이 관여해 주도적인 역할도 직접 해본 경험이 있다. 대통령 공부를 50년 이상 했고, 대통령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충분한 지식과 경험을 쌓았다.”

대통령을 한번 해보겠다는 생각이 지금도 있다는 것인가?

“난 지금도 새벽 5시에 일어나 2시간 동안 아침 공부(독서)를 한다. 정치와 경제, 국제정세를 포함한 공부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는 뜻으로 새기겠다. 다시 총선 얘기다. 107석의 마지노선을 정했는데 무려 123석을 얻었다. 선거 기간 내내 지겹게 들은 말이지만 소위 ‘야권의 분열’ 상황에서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107석 이하로 목표를 잡으면 치사하단 소리가 나올 것 같았다. 어찌 보면 과도한 목표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밀어붙이기로 했다. 수도권 민심을 믿었기 때문이다. 야당 분열에 대해서도 난 통합을 하면 했지 연대에는 부정적이었다. 어차피 수도권은 일대일 구도가 될 것으로 봤다. 국민의당 의식하지 말고 무소속이 하나 더 있다고 생각하자고 독려했다. 그렇게 수도권에 총력을 기울인 것이 쓰나미 같은 승리를 불렀다.”
 
l “두 사람의 보스는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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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다음날인 14일 오전 김종인 대표가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을 찾아 참배한 뒤 방명록을 남기고 있다.

언제 승리를 예감했나?

“선거 당일 북한산 할아버지(가인 김병로)의 묘소를 찾아 참배했다. 어쩌면 당을 떠나 정치를 그만둬야 할지도 몰랐기 때문에 할아버지에게 고하려고 했다. 그런데 참배하는 동안 절대 지지 않으리란 자신감과 영감이 떠올랐다.”

수도권과 극명한 대조를 보인 곳이 호남지역이다.

“호남에서 조금만 더 나와 줬어도 완벽한 선거가 될 뻔했다.”

문재인 전 대표가 총선 직전 두 차례 호남 방문한 것이 오히려 국민의당 쪽으로 호남표가 결집된 계기라는 시각도 있던데.

“일부 그런 측면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문 전 대표의 호남방문은 선거 전략상 옳지 않은 것이었다고 보는 건가?

“그런 건 아니다. 문 전 대표의 선택이었는데, 그 선택의 옳고 그름을 재단하기는 쉽지 않다. 그의 선택을 내가 뭐랄 수는 없다.”

광주를 포함한 호남민심 전체가 더민주에 완전히 등을 돌렸다.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성난 호남 민심을 어떻게 돌려세울까?

“총선 후 당이 어느 정도 정비가 되면 광주에 내려갈 생각이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됐을까, 그분들의 말씀을 경청하고 싶다. 호남 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당의 진로를 바꾸어나가면 만회의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본다. 문재인 전 대표에만 책임을 지우는 것은 옳지 않다.”

문 전 대표의 고민이 많다. 총선에서는 좋은 결과가 나왔지만 호남에서 완패했고 자신이 호남지지 못 받으면 정치 그만둔다는 발언도 했다. 딜레마에 처해 있는 것 아닌가?

“호남 유세에서 했던 약속이 적절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 발언 때문에 스스로 발목을 잡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민심은 항상 유전하는 것이므로, 그 문제로 처신에 너무 큰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일각에선 문 전 대표가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 전 대표도 그래서 고민하는 것 아닌가?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그렇게 무르면 안 된다. 민심은 확 변할 수도 있다. 영남 패권주의, 친노 패권주의도 있다지만 호남 패권주의도 만만치 않은 것 같다. 문 전 대표가 호남에서 그렇게 크게 욕먹을 일은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광주 내려갈 때 문 전 대표와 동행하는 것은 어떤가?

“난 그런 건 안 한다. 정당 안에 두 사람의 보스는 필요 없다. 어떤 한 사람의 정치적 판단이 옳다면 그 사람을 따라가는 것이 정당이다. 문 전 대표도 독자적으로 힘을 기르고, 자기만의 길을 가야 한다.”

선거 과정에서 비방이 난무했다. 견딜 만했나?

“금도를 넘는 사람들이 있더라. 일부 종편에 나와 떠드는 소위 정치평론가라는 사람들이 그랬다. 상상력이 참 풍부한 사람들이다. 더민주가 60석 정도를 얻을 것이라 얘기하질 않나, 106석을 얻으면 내가 물러날까 논하는 사람도 있었다. 정치를 이렇게 희화화해서 도대체 뭘 얻으려 하는지 모르겠다.”
 
l “취약 지역도 최선의 공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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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대표는 “가장 잘하는 분야가 정치인의 미래를 보는 능력이며,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과 송파, 분당 두 곳에서 더민주 후보가 승리했다. 과거에는 승리를 감히 꿈꾸지 못했던 지역 아닌가?

“강남을 전현희 후보의 경우 본인이 우선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래서 내가 선거혁명 한번 해보라고 했다. 그래서 강남 을은 가장 먼저 전략공천된 곳이 됐다. 더민주도 이제 고정관념을 깰 때가 되었다. 새누리당의 아성이라는 지역에 대해 지레 겁먹고 제대로 된 후보를 내지 않았다. 강남의 유권자들이 선호하는 역량 있는 후보를 내면 해볼 만하다. 그 지역 유권자를 무시하는 듯한 무성의한 공천은 이제 해선 안 된다.”

중앙위 사태, 또는 비례후보 파문 이후 당의 선거 동력에 이상이 생겼다. 이후 선거 막바지까지 여론조사 결과를 계속 체크했나?

“난 여론조사 믿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여론조사 실력은 아직 후진적이다. 대통령 선거는 어느 정도 맞는데 변수가 다양한 국회의원 선거에선 맥을 못 춘다. 여론조사가 특정정당의 지지율을 호도하기 위해 조작되었다는 느낌마저 든다. 그리고 세상에 야당을 심판해야 한다는 선거가 어딨나? 원래 야당은 여당을 반대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래서 여당이 잘하면 설 땅이 없고, 여당이 잘못했을 때 유권자는 야당을 찍는 것이다. 그런데 야당 심판론이란 웃긴 프레임이 자꾸 거론되며 전파됐다.”

원내 제1당이 됐는데 국회선진화법을 어떻게 할 건가? 입장이 바뀌어 오히려 새누리당이 국회선진화법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되지 않았나?

“선거 결과에 따라 국회선진화법을 흔드는 것은 옳지 않다. 입법 취지를 살려 존치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국민의당은 선진화법이 개정돼야 캐스팅보트를 행사할 수 있다고 보는데.

“당리당략과 상관없이 이 법은 그대로 둬야 한다는 것이 소신이다. 그 법을 개정하려 한다면 야당이 아니다.”

새누리당은 국회선진화법이 국회의원의 심의 표결권을 침해한다며 지난해 1월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까지 제기했다.

“각 정당이 입법 경쟁을 하다 보면 헌법 취지에 맞지 않는 법이 나올 수 있다. 이를 심판하는 것은 헌법재판소의 고유 기능이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헌법재판소의 간여가 적절치 않은 것으로 본다. 어떤 정당이 집권하든 이 법은 필요하다.”

총선이 끝났지만 민생경제의 어려움은 여전히 해법을 갈구한다. 새누리당 강봉균 선대위원장이 내세운 이른바 양적완화 정책은 이제 물 건너간 건가?

“(여소야대로) 한은법 개정이 어려워졌으니 이제 그 공약은 의미가 없다. 아니, 양적완화는 그 자체로 잘못된 정책이다. 선진국에서 금리가 제로 수준까지 떨어져 금리로는 통화정책 할 수 없으니 나온 게 소위 양적완화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정과는 맞지 않는다. 양적완화는 한국은행에서 알아서 하는 거지 무슨 정치권에서 나선다는 거냐? 돈을 찍어서 푼다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지금 현대상선이나 한진해운 같은 부실한 공룡기업의 생명을 연장하는 의미밖에 없다. IMF의 뜨거운 맛을 보고도 아직도 정신 못 차린다.”

양적완화와 IMF 사태가 무슨 관계인가?

“김영삼 대통령이 경제성장에 조바심을 느껴서 대기업 투자를 확대한 게 IMF 비극의 서막이었다. 그때까지 어느 정도까진 규제가 됐던 은행 대출이 풀리니까 재벌들이 대출을 받아 영토 확장에 나선 것이다. 투자를 아무데나 막 하니까 과잉채무, 과잉투자, 과잉시설이 온 것이다. 이게 IMF 사태의 주범이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양적완화 타령이다. 강봉균 이 분이 젊은 시절엔 굉장히 샤프했는데 이젠 총기를 잃은 것 같다.”

광주 서을 더민주의 양향자 후보 삼성공약 관련해서도 비판이 많았다. 재벌개혁 외치던 사람이 재벌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려 하니 모순이란 지적이었는데.

“재벌개혁을 내가 말한 적 없다. 재벌은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제도를 통한 관리의 대상이다. 내가 아무리 외쳐도 나를 반대하는 사람은 짐짓 모른 채 ‘재벌개혁’이란 말을 갖다 붙인다. 삼성 그 얘기도 광주 출마자들이 답답해 해서 내가 운을 뗀 것이다. 삼성의 백색가전 공장이 해외로 나가니 그 공백을 미래형 자동차 전자장비산업으로 메우자는 것이 양 후보의 구상이었다. 이것을 당 차원에서 백업하겠다고 공약을 발표한 것이 경제민주화와 어떻게 배치된다는 말인가? 경제 민주화가 뭐 대단한 게 아니다. 자본주의 시장이라는 게 하늘에서 똑 떨어져 작동하는 게 아닌 만큼 제대로 관리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 세계 국가의 대세가 된 정책인 소위 ‘포용경제’와도 같은 맥락이다. 유독 우리나라 집권 세력만 모르쇠로 나가는데, 정작 이 사람들이 국제회의 같은데 가면 이 용어를 사용한다. 지금 미국 대선에서도 샌더스 후보를 중심으로 이런 바람이 부는 것 아닌가? 도대체 미국 유학을 갖다 온 한국의 그 수많은 경제학자가 왜 침묵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손학규 전 고문에게 선거 막판 지원 유세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사전 조율에 문제가 있었나?

“손 전 고문에게 도움을 요청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런데 당 안에 손 전 고문과 가까운 사람들이 그가 유세에 나서기로 했다며 간청하는 모양새를 갖춰달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전화를 하고 그랬는데, 무슨 생각에서인지 끝내 거절했다. 나만 스타일을 구겼다. 그런 식으로 정치하는 사람에겐 솔직히 관심이 가지 않는다. 손 전 고문 입장에선 기회를 놓친 것이다. 유세에 참여했다면 그에게도 공이 돌아갔을 텐데.”

 
l “남북문제는 상대가 있는 게임… 정부에 맡겨야”
여소야대 정국이다. 국회가 개성공단 재개 등 전향적인 대북정책을 정부에 건의할 수도 있지 않나?

“대북정책은 정부의 몫이지, 국회가 할 일이 아니다. 남북문제는 정부가 이니셔티브를 쥐어야 한다. 상대가 있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는 국회의 카운터파트가 됐다. 선거 과정에서 서로에게 상처를 많이 입힌 것도 사실이다. 전당대회 전에 그에게 만나자는 요청을 할 의사가 있나?

“안 대표와 당연히 만나서 풀 생각이다. 자연스런 기회가 올 것이므로 조바심 낼 것 하나도 없다.”

경제학을 전공한 교수가 정치에 능해 놀라는 사람이 많다. 어떻게 공부했나?

“독일 유학시절 독일 대학생들과 학생운동도 같이 해봤다. 내 나이는 스물다섯이었고 동급생들 나이는 보통 열아홉이었다. 나이가 많았기 때문에 생활에도 공부에도 적응을 잘했다. 그 시절 공부를 통해 독일은 물론 미국, 프랑스, 영국의 선거제도에도 천착했다. 우리나라 정당의 실상에 대해서도 그간 여러 정부 참여를 통해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다방면의 독서가 현실분석의 도구가 되어준다. 그러나 내가 특별히 사숙하는 정치적 멘토는 없다.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하고 결단하는 스타일이다. 정치 독학생이지만 무모하게 덤비는 사람은 아니다. 내가 더민주를 치유해보겠다고 한 것도 그냥 빈 말로 한 게 아니다. 이번 총선 결과가 그것을 입증하지 않았나? 또 내가 가장 잘하는 분야가 정치인의 미래를 보는 능력이다.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

- 글 한기홍 기자 glutton4@joongang.co.kr / 사진 박종근 기자 park.jongk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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