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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숙의 신명품유전] 간송(澗松)의 자존심이 우리 문화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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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미디어 아티스트 구범석씨가 간송의 명품을 초고해상도 영상으로 재탄생시킨 ‘간송아트컬렉션’의 한 장면. 신윤복의 풍속화 ‘단오풍정’의 그네 타는 여인 얼굴이 손바닥에 놓고 보듯 선명하다. [사진 신승현]

한국 미술의 보물 곳간으로 이름난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관장 전영우)은 우리 문화계에서 일종의 성역(聖域) 같은 곳이었다. 1938년 우리나라 1호 사립박물관으로 문을 연 뒤 8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봄·가을 정기전에 내놓는 것 외에는 소장품을 밖으로 돌리지 않았다. 소장품 대여를 요청하는 유수한 외국 미술관과 박물관에 대한 대응은 늘 한마디였다. “꼭 보고 싶으면 전시할 때 여기 와서 보시라.”

그런 간송미술관이 2013년 8월 8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디자인박물관에서 서울디자인재단과3년 동안 협력관계를 유지하며 장기 기획전을 연다고 발표한 건(중앙일보 2013년 8월 9일자 2면) 놀라운 희소식이었다.

당시 서울디자인재단을 이끌던 고(故) 백종원 대표는 전성우 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장과 공동전시 협약을 체결하며 간송 소장품의 바깥 나들이가 DDP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고마워했다. 한국인의 독창적인 창조정신의 원형을 갈무리해 온 간송미술관과 미래 디자인 가치를 창출할 서울디자인재단의 시너지 효과에 문화계는 기대를 걸었다. 서울시 관계자도 “좋은 사업이라고 평가한다”며 후원을 약속했다.

그로부터 2년이 흘렀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은 2014년 3월 21일 개막한 간송문화전 1부 ‘간송 전형필, 문화를 지키다’부터 지난 20일 시작한 6부 ‘풍속인물화-일상, 꿈, 그리고 풍류’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국보와 보물급 문화재 수백 점을 대중에게 공개했다. 전인건 사무국장과 전인성 이사 등 간송미술문화재단의 젊은 세대는 간송 현대화에 힘썼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미디어 아티스트 구범석씨의 ‘간송아트컬렉션’은 그런 노력의 한 결과다. 연구자들이 현미경으로도 잘 볼 수 없었던 간송 소장품 구석구석을 손바닥에 놓고 보는 듯 생생하게 되살린 초고해상도 영상물을 내놓았다. 구 작가는 “간송 소장품이 지닌 무궁무진한 미감과 잠재력을 ‘간송아트컬렉션’으로 구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런 성과들에도 불구하고 DDP가 간송을 불편해한다는 소문이 확산되고 있다. 세입자 취급을 당한 간송이 대기업인 L사와 다른 형식의 전시 계약을 의논 중이라는 소리도 들린다. 개관 초기, 어려웠던 DDP의 콘텐트 조성에 큰 힘을 보탰던 간송미술관을 푸대접한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간송미술관에서 50년을 보내며 간송 전형필(1906~62)의 정신을 지켜온 최완수 한국민족미술연구소장은 ‘왜 반백 년 긴 시간을 이곳에 묻었는가’라고 물었을 때 이렇게 답했다. “문화적 자존심이죠. 간송을 못 지키면 우리가 문화적 자존심을 포기하는 일이기에 지켰죠.” 서울시는 한국의 문화적 자존심을 지킨다는 큰 포석에서 간송미술관과 DDP를 바라봐야 할 시점에 다다랐다.

정재숙 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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