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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으로] 와인 한 잔 9500원, 야채찜 6900원 선술집 대신 커피숍서 가볍게


일본의 새 음주 문화 '조이노미'

12일 오후 7시 일본 도쿄역 근처 마루노우치 신도쿄빌딩 1층 스타벅스 매장. 20대 회사원 7명이 외국산 병맥주를 마시면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안주는 프랑스풍 야채찜(라타투유·650엔). 맥주 가격은 800~850엔(약 8900원)이었다. 일행인 한 남성은 “인근 사무실에서 근무하다 퇴근길에 잠시 한잔하는 중”라고 했다. 매장 내 소파로 된 좌석에는 30대와 40대 여성 각 두 명이 와인 한 잔씩을 마시고 있었다. 모두 와인과 양과자 세트를 시켜놓았다. 와인 한 잔 가격은 850~900엔, 세트 메뉴는 1200~1250엔이었다. 맥주 한 병이나 와인 한 잔은 딱 점심값 수준이다.

퇴근길 딱 한 잔 술 먹는 트렌드
스타벅스·KFC 주류 판매 나서
외식업계도 ‘간단한 메뉴’ 확대

선술집보다 싸고 안주 빨리 나와
30~40대 직장 여성들 많이 찾아


커피전문점에서 와인과 맥주도 즐기는 이 매장은 ‘스타벅스 이브닝스(EVENINGS)’. 일본에선 1호점으로 지난달 30일 문을 열었다. 주류도 제공하는 스타벅스 점포는 미국과 영국에 이어 일본이 세 번째다. 일본 점포의 주 타깃층은 30~40대 직장 여성이다. 이들이 일을 끝내고 혼자 가볍게 술을 마시고 싶어도 바(Bar)나 선술집(이자카야)에 들르기가 쉽지 않은 점을 고려했다고 한다. 마루노우치는 오피스가 몰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스타벅스 재팬은 2호점을 다음달 역시 오피스가인 도쿄 아카사카에 낼 계획이다. 이 회사 야마구치 데쓰지(山口哲司) 홍보팀 매니저는 “앞으로 1년 동안 도쿄에 몇 개의 점포를 더 열어 상황을 본 뒤 전국으로 확대할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타벅스가 퇴근길에 가볍게 한잔한다는 ‘조이노미(ちょい飮み)’ 시장에 뛰어들었다. 조이노미는 ‘조금’이라는 뜻의 ‘ちょい’와 마신다의 명사형(飮み)의 합성어. 2~3년 전부터 확산되고 있는 일본의 새 음주 트렌드다. 2014년 소비세 인상(5%→8%) 등으로 저렴하고 가볍게 술을 즐기는 문화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새 시장도 열리고 있다.

음료 전문제조업체 이토엔(伊藤園) 산하의 털리즈(TULLY’S)커피 재팬도 같은 대열에 합류했다. 스타벅스 이브닝스 개점 하루 만인 지난달 31일 도쿄 중심부 긴자에 1호점을 냈다. 스타벅스에 비해 안주나 음식 종류가 많아 30가지나 됐다. 프랑스 요리 전문 요리사가 직접 만드는 음식도 있었다. 주류는 생맥주·와인에 청주(니혼슈)도 갖췄다. 생맥주와 와인 한 잔은 각각 700엔이었고 소시지 안주는 1200엔을 받았다. 와다 마코토(和田誠) 점장은 “주류와 안주는 시간 제약 없이 아침부터 판다”며 “안주류보다는 주류가 더 잘 나가고 있다”고 했다. 야마구치 사호리 홍보 담당은 “긴자 매장은 털리즈커피 재팬의 기함(Flagship)으로 다른 곳에서 맛볼 수 없는 것을 제공할 생각”이라며 “퇴근길 외 휴일에도 가볍게 한잔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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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문을 연 도쿄 신주쿠 KFC 다카다노바바점은 치킨 등 기존 메뉴 외에 생맥주 등 36종류의 주류를 갖춰놓고 가볍게 한 잔씩 하는 조이노미 서비스를 하고 있다.


조이노미의 트렌드를 겨냥한 것은 커피전문점만이 아니다. 패스트푸드 업체도 나섰다. 일본KFC홀딩스는 지난 1일 신주쿠구 KFC 다카다노바바점에서 기존 메뉴 외에 주류와 음식 메뉴를 선보였다. “원하는 시간대에 좋아하는 장소에서 좋아하는 음식과 음료를” 먹고 마실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메뉴는 치킨·파스타를 포함해 38종을 헤아린다. 주류도 생맥주 6종류와 병맥주 외에 칵테일과 와인 등 36종류를 갖췄다. 매장 면적이 130㎡, 좌석이 42석인 점을 감안하면 놀라울 정도의 메뉴다. 11일에는 낮 시간대인 데도 맥주를 마시는 사람이 더러 있었다. 캐주얼 복장의 60대 남성은 가게에 들러 “맥주를 파느냐”고 묻고 주문하기도 했다. 회사 측은 “학생과 회사원을 중심으로 아침부터 밤까지 폭넓은 세대가 다카다노바바에 모이는 점을 고려해 새로운 형태의 매장을 열게 됐다”고 했다. 일본KFC홀딩스는 조이노미 현상이 확산되면서 지난해 7~9월 3개월간 한정적으로 전체 1144개 매장 가운데 70곳이 기존 메뉴에 더해 맥주를 판매했다. 올해는 4~9월에 걸쳐 100개 점포로 확대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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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대표하는 쇠고기덮밥(규동) 체인점 요시노야 히가시긴자점 조이노미 메뉴.

조이노미를 선도해온 외식 업계는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쇠고기덮밥(규동) 전문점 요시노야(吉野家)는 지난해 7월부터 1200개 매장 가운데 350곳에서 조이노미 메뉴를 내놓았다. 이름은 ‘요시노미(吉飮み)’. 안주는 간장을 친 삶은 쇠고기 외에 삶은 달걀, 찐 콩, 소시지 등 손이 덜 가는 것들이었다. 술은 청주·맥주·칵테일(하이볼)을 비치했다. 회사 측은 2014년 일부 매장에서 실험적으로 이 메뉴를 출시했다가 매장을 대폭 늘렸다. 11일 저녁 두 명이 히가시긴자점에 들러 니혼슈(180mL) 1병, 덮밥과 된장국(미소시루) 각 두 그릇, 소시지 안주를 시켰더니 1600엔이었다. 선술집에 비하면 훨씬 싸다. 음식과 안주도 선술집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빨리 나왔다. 가토 쓰토무(加藤勉) 홍보 담당은 “요시노야는 과거에도 맥주와 청주를 팔았지만 저녁 시간대를 겨냥해 술과 안주 종류를 다양화했다”며 “조이노미 메뉴를 전 매장으로 확대할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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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짬뽕 체인점 링거헛(Ringer Hut)이 도쿄 아사쿠사점 2층에 개장한 ‘짬뽕 술집’.


나가사키짬뽕 체인점을 운영하는 링거헛(Ringer Hut)은 도쿄 아사쿠사와 우에노 매장 안에 별도의 조이노미 장소를 마련했다. 두 곳 모두 역에서 가까운 입지를 고려했다고 한다. 술 전용 메뉴에 대한 인지도가 점차 올라가고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조이노미 시장을 둘러싼 일본 업계의 경쟁이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선술집선 한 잔으로 끝내기 어려워 생긴 틈새시장
퇴근길을 유혹하는 일본의 술집은 한둘이 아니다. 큰 역 주변은 더하다. 크고 작은 선술집(이자카야)과 닭꼬치구이(야키토리)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가게 밖으로 나오는 꼬치구이 연기를 뿌리치기가 쉽지 않다. 선술집은 회에다 구이·튀김·절임류까지 안주가 다채롭다. 술은 청주(니혼슈)·소주·위스키에 칵테일도 즐길 수 있다. 청주나 소주 리스트는 지방산 브랜드로 빼곡하다. 선술집에는 제조업 강국 일본의 면모나 장인정신도 담겨 있다.

선술집과 꼬치구이 집에 들어서면 한 잔으로 끝내기 어렵다. 생맥주 한 잔 기본에 청주나 소주를 주문하기 마련이다. 테이블이 아닌 카운터에 앉아도 그렇다. 종업원의 눈치도 신경 쓰인다. 선술집에는 혼자나 여럿이 들어가도 얼떨떨해서 나오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패밀리 레스토랑이나 외식 체인에 들어가면 거의 술이 없다. 음식이 나오는 것도, 먹는 것도 속전속결이다.

퇴근길에 딱 한 잔 걸치는 조이노미 트렌드가 일본에서 확장돼 가는 이유다. 잠재적 수요가 있었지만 본격화하지 않은 일종의 틈새시장이다. 혼자 술집에 들르기 쉽지 않은 직장 여성에게 와인을 파는 커피전문점은 더할 나위 없는 안식처다. 일본KFC홀딩스의 주류 판매는 ‘치맥’ 문화를 활성화할 수도 있다. 식사도 하고 반주도 곁들일 수 있는 요시노야의 메뉴는 조이노미의 정수다.

잠재적 수요를 자극하는 업체의 공급이 새로운 소비 트렌드를 창출하고 있다.

도쿄=오영환 특파원  hwas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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