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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특집]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 총선 동행취재 및 사퇴 인터뷰

“킹메이커 역할? 그런 것 자체를 지금은 거론하고 싶지 않아”... 13개 시·도 격전지 131곳을 돌며 119명의 후보 지원 유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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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정치 발전을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는 4월 14일 총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 당 대표직을 내려놨다. 2014년 7월 14일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선출된 지 640일 만이다. 원유철 원내대표를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대하면서 기존 최고위원회는 해체됐고, 김 전 대표는 일선에서 물러났다.

“패장(敗將)으로 대권 생각은 옳지 못해”

김 전 대표는 사퇴 이후 부산의 자택에 머물렀다. 그는 4월 16일 전화 통화에서 “당 대표 한다고 2년 동안 지역에 거의 못 왔다”며 “그야말로 마지막 총선 출마였으니까 이제 많은 시간을 지역에 할애하면서 지역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다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당선사례는 지난 이틀 동안 부인 최양옥 여사가 유세차를 타고 돌며 대신했다고 한다.

김 전 대표의 임기는 2년이 되는 7월 13일까지였다. 내년 12월 20일에 치러질 대선에 출마하려면 늦어도 6월 중순 전에 대표직을 사퇴해야 한다. 이런 점 때문에 김 전 대표의 조기 사퇴는 대권 행보 가속화를 의미한다는 관측이 전부터 끊이지 않았다.

대권 행보를 할 거라는 얘기가 여전히 나온다.

“총선에 참패했는데, 패장(敗將)으로서 그런 걸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옳지 못하다. 조용하게 시간을 보내면서 반성하고, 세상 돌아가는 거 보겠다. 또 정치 발전을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이 뭔지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찾아보겠다.”

당의 요청이 있다면 ‘킹메이커’ 역할은 하겠다는 건가?

“그런 것 자체를 지금은 거론하고 싶지 않다.”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는 문병호(인천 부평갑) 후보의 26표 차 패배에 “한 번이라도 더 지원 갔으면”이라며 눈물을 글썽였다고 한다. 선거 때 최선을 다했다고 하지만 아쉬운 점은 없나?

“첫 번째 공천 파동이 났을 때 이미 국민들 마음이 결정됐던 것 같다. 새누리당은 혼을 한번 내야 되겠다는 결심이 선 거다. 오랜 선거 경험으로 ‘아 이거 어려운 선거다’라는 직감이 있었다. 그래서 4월 4일 밤 긴급 선거대책회의를 소집해 비상을 걸었는데 우리 스스로가 엄살인 것처럼 잘못 생각하더라. 그걸 바로잡는 게 쉽지 않았다.”

김 전 대표는 두 번의 국회의원 재·보궐선거(2014년 7·30, 2015년 4·29)를 모두 승리로 이끌었다. 19대 국회 출범 당시 152석이던 새누리당 의석수는 160석까지 늘어났다.

하지만 이번 4·13총선에서 여당에 불어 닥친 역풍은 매서웠다. 비례대표 17석을 포함해 122석을 얻는데 그치면서 제2당으로 전락했다. 16년 만에 여소야대(與小野大) 국회를 보게 됐다. 새누리당이 일부 무소속 후보를 입당시킨다고 하더라도 더불어민주당(123석), 국민의당(38석)과의 3당 체제 하에서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엔 역부족이다.

여론조사업계나 언론에서도 예상치 못한 참패였다. 과반 의석을 확보해줬는데도 ‘국회 선진화법’을 이유로 법안 처리율(43.3%) 역대 최저 등의 부끄러운 수치만 남긴데 대한 책임,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드리겠다”더니 계파간 이익 다툼으로 파열음만 낸 오만함 탓 등 패인 분석이 쏟아졌다.

김 전 대표는 4월 14일 당 대표직 사퇴를 공식선언하면서 “정치는 오직 국민만 바라보고 국민만 두려워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며 “다시는 국민을 실망시키지 말라는 지엄한 명령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같은 날 오전 9시 국회 당 대표실에서 준비된 회견문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김 전 대표는 머뭇거림이 없었다.


l “총선 참패는 국민 실망시키지 말라는 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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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0일 새누리당 대구시당에서 김무성 대표와 포옹하는 최경환 의원. 두 사람은 각각 비박계와 친박계를 대표한다.

30분 전 여의도 자택을 나서는 김 전 대표에게 “1당이 뒤바뀔 수 있다는 것까지도 예상했느냐”고 물었다. 김 전 대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만 “(4월 4일) 비상회의를 소집했을 때 딱 이번에 받은 숫자 정도였다”고 말했다. 당시 회의에선 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 조사결과 서울의 경우 10석만 확실히 이길 수 있고, 전체적으로 130석 가량 확보가 가능하다는 내용이 보고됐다.

김 전 대표는 “그때부터 과반(151석)으로 끌어올리려고 국민 앞에 사죄하는 등 노력을 했는데 실패했다”고 말했다. 그리곤 허탈한 표정으로 그간의 속내를 털어놨다.

국민의당이 이렇게 선전할 줄 알았나?

“양당에 실망한 표들이 그쪽으로 가버린 거다. 투표율(58%)이 더 낮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올라온 게 국민의당 지지로 나타났다.”

국민의당이 더불어민주당이 아닌 새누리당 표를 더 갉아먹은 건가?

“결과적으로 그렇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 운영은 더 힘들어지겠다.

“(고개 끄덕)”

이제 어떻게 할 건가?

“뭘 어떻게 하나. 다 내가 책임져야지.”

김 전 대표의 측근들은 대표가 혼자 책임질 일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대표 비서실장인 김학용 의원은 4월 13일 “공천만 제대로 했으면 과반도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며 “책임 있는 사람들이 왜 침묵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한구 공천 관리위원장과 ‘무소속 당선자 복당 불가’ 방침을 내건 최경환 대구·경북 선대위원장 등을 겨냥한 발언이다.

장외에서도 날 선 신경전이 벌어졌다. 서초갑에서 당선돼 3선 고지에 오른 비박계 이혜훈 당선자는 4월 15일 KBS라디오 인터뷰에서 “김무성 대표가 공천에 권한이 있었느냐. 모든 국민이 다 알다시피 그렇지 않았다”며 “(총선 패배의 원인은) ‘공천 파동’의 주력인 주류들”이라고 비판했다. 주류가 친박계를 뜻하느냐는 질문에는 “온 국민이 다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친박계에선 김 전 대표를 겨냥해 당 대표 사퇴는 당연한 수순일 뿐이고 정계 은퇴를 선언하라고 몰아세웠다. 김 전 대표의 반대로 유승민 의원(대구 동을) 지역에 출마하지 못한 이재만 전 대구 동구청장은 4월 15일 통화에서 “김 전 대표가 어떤 명분으로든 자기 합리화를 하려고 해선 안 된다”며 “탈당은 물론 정계를 떠나야 한다”고 비판했다.

총선 참패의 책임을 놓고 또다시 당내 분란이 격화될 조짐이 보이자 김 전 대표는 4월 15일 오후 “내 측근이 등장해 총선 패배에 대한 당내 책임공방을 하고 있다는 형식의 기사들이 나오는데 제 뜻과는 관련이 없는 보도들”이라며 “(이 같은 보도가 나가지 않도록) 언론의 협조를 부탁한다”는 e-메일을 당 출입기자들에게 보냈다.


l 13일간 하루 평균 10곳, 종횡무진 ‘몸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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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4일 김무성 대표가 자신의 부산 선거사무소 앞 영도대교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이날은 이른바 ‘옥새투쟁’을 벌인 날이다

김 전 대표는 “제겐 측근이 없고 더욱이 측근을 인용한 총선 관련 책임소재를 가리는 발언들이 일절 나오지 않도록 하고 있다”며 “저는 더욱 신독(愼獨)하고 그런 보도가 있지 않도록 더욱 더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4월 14일 당 대표 사퇴 직전 인터뷰 당시에도 그는 ‘네 탓 공방’을 경계했다.

대표와 가까운 인사들은 대표 혼자 선거 결과에 책임져야 하는 게 맞느냐고 문제제기 한다.

“내용은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내가 책임져야지 방법이 없다. 책임 공방을 벌이는 건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 등 친박계는 책임이 없나?

“모두 다같이 내 잘못이라고 엎드려야 한다. 민심을 무서워하면 모두들 조용해야 할 텐데 또 정신 못 차리면 회초리를 맞는다.”

유승민, 주호영 등 탈당한 무소속 후보들이 대거 당선됐다.

“공천이 잘못됐다는 게 증명이 된 거다.”

87% 이상 상향식 공천을 했다고 했는데 과반 달성은 못했다. 상향식 공천도 성공한 거라 보기 어렵지 않나?

“그래도 상향식 공천은 계속 추구해야 할 가치다. 이번에 ‘전략 공천’한 곳들은 민심이 등을 돌려버리지 않았나.”

새누리당이 당헌·당규상 우선추천지역 규정을 이용해 ‘전략 공천’한 12곳 중 9곳은 야당과 무소속 후보에 패했다. 살아남은 당선자는 이은재(강남병), 박순자(안산 단원을), 김정재(포항 북구)뿐이다.

김 전 대표는 총선 당일 여의도 당사 2층에 마련된 선거상황실을 찾지 않았다. 공식 선거운동 기간인 13일 동안 130여 곳 ‘광폭 유세’ 후 피로 누적으로 여의도 성모병원에 입원해 링거 신세를 졌다. 오후 6시 투표 종료 후 발표된 지상파 출구 조사 결과는 병실에서 홀로 지켜봤다고 한다. 이후 병문안을 온 김학용·김성태 의원과 개표 상황을 지켜봤다.

4월 14일 오전 6시30분, 김 전 대표는 면도도 하지 않은 푸석한 얼굴에 빨간 선거운동 점퍼 차림으로 병원을 빠져나왔다. 차로 5분 거리인 여의도 자택에 들러 양복 정장차림에 빨간 넥타이로 환복한 후 마지막 선거대책회의 참석차 국회로 향했다. 이 모습을 본 경비원은 “대표님 얼굴이 반쪽이 되셨더라”고 안타까워했다.

김 전 대표는 건강 상태를 묻는 기자에게 “기력이 좀 쇠한 거다. 연설하는 게 생각보다 에너지 소모가 크다. 체력을 보충해야 되는데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진짜 사력(死力)을 다했다”고 말했다.

약 4500㎞. 김 전 대표가 13개 시·도의 격전지 131곳을 돌며 119명의 후보를 지원유세하느라 이동한 거리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부산 시청까지 직선거리가 325㎞가량인 것을 고려하면 서울과 부산을 7번 가까이 왕복한 셈이다.

유세 마지막 날인 12일에는 서울·인천·경기 21곳에 발 도장을 찍었다. 김 전 대표의 빨간 나이키 운동화는 2012년 대선 때부터 신어 밑창이 달아 있었다. 이동차량 안엔 프로폴리스 스프레이와 가글, 배즙 등 목 보호를 위한 각종 처방제가 즐비했다. 김 전 대표는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절로 힘이 난다”며 “반응이 싸늘한 곳에서는 우리 후보들이 험지에서 고생하는구나 싶어 더 열심히 소리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김 전 대표를 힘 빠지게 한 건 ‘집 나간 토끼’ 민심이었다. 야당을 찍을 순 없고 아예 투표장에 안 나오겠다고 하는 지지자들이다. 4월 6일 다음 유세장소로 이동하다 신문을 펼쳐 든 김 전 대표는 “뽑을 후보가 없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l ‘전북 배알’ 발언으로 정운천·이정현 살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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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대표가 3월 31일 서울 양천갑 새누리당 후보 지원유세에 나서 아침을 안 먹었다며 제과점에서 츄러스를 먹고 있다.

김 전 대표는 함께 이동하던 본지 기자에게 “유세장에는 우리 쪽 지지자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호응이 있지만 골목 구석구석을 돌아다녀보면 그렇지 않다”며 “새누리당의 전통적 지지기반인 50~60대가 싸늘하게 돌아선 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는 “‘텃밭(영남 지역)’을 안정시켜 놓고 수도권에 집중했어야 하는데… 이제 와서 어떡하겠느냐”며 “내가 사과하고 책임지는 것으로 끝내려고 했는데 가만 보니까 그게 아니더라”고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김 전 대표는 총선 공식 선거운동일 하루 전인 3월 30일 중견 언론인 모임인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서 “선거의 승패와 관계없이 총선 이후 당 대표직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돌려달라며 일종의 배수진을 친 셈이다. 총선을 일주일 남겨둔 4월 6일에는 긴급 선거대책회의를 소집해 ‘반성모드’로 선거를 치르기로 하고 이후 가는 곳마다 “용서해달라, 살려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돌아선 민심을 달래기엔 역부족이었다.

유세 현장을 따라다니며 지켜본 김 전 대표는 타고난 달변가라기보다 노력형 연사였다. 짧게는 5분, 길게는 30분 이상 다음 유세지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김 전 대표는 돋보기 안경을 쓰고 유세용 자료를 정독했다. 20포인트 글자 크기의 A4용지 10여 장에 파란 펜으로 밑줄을 긋거나 동그라미를 쳐가면서다. 4월 6일 본지 기자와 동행하는 동안에도 그는 “현장 분위기에 취해서 애드리브를 하다 보면 실수한다”며 원고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새누리당은 경제 살리는 정당, 안보 지키는 정당임을 강조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을 ‘운동권 정당’으로 규정한 것도 원고에 충실한 연설이었다.

하지만 후보를 띄우는 방식은 직설적이고 구체적이다. 그러다 보니 사고와 화제가 동시에 무성했다.

‘전북 배알’ 발언이 대표적이다. 김 전 대표는 4월 6일 전주을 정운천 후보 유세 지원에서 “전북도민 여러분은 배알도 없느냐. 지난해 전북 예산 증가율이 전국 꼴찌였는데, 전북 국회의원을 몽땅 더불어민주당으로 채워놓고 배신감을 느끼지 않느냐”며 “여당 일꾼을 한 명이라도 뽑아야 청와대와 정부에 가서 그동안 쌓였던 전북의 설움을 모두 풀 수 있다”고 호소했다.

알은 창자의 비속어다. 속마음 또는 배짱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김 전 대표의 이 같은 발언이 알려지자 더불어민주당 김성수 대변인은 즉각 논평을 내고 “전북 도민에 대한 모욕”이라며 “전북을 얼마나 무시하면 이런 막말을 할 수 있는지 기가 막히다”고 비판했다.

김 전 대표는 총선 하루 전인 4월 12일 전북도당을 통해 “전북을 꼭 발전시켜야겠다는 열정과 이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 때문에 다소 거친 말을 했던 것을 인정한다”며 “마음의 상처를 받으신 도민 여러분께 사죄의 말씀을 올린다”고 공식 사과했다.

정 후보는 37.5%를 얻어 더불어민주당 최형재 후보를 상대로 0.1%p 차 신승을 거뒀다. 전북에서 보수당 국회의원이 배출된 건 1996년 새누리당의 뿌리인 신한국당 강현욱 의원의 당선 이후 20년 만이다. 전남 순천에선 이정현 후보가 재선에 성공하면서 지역주의를 깬 인물들로 주목받고 있다.

‘배알’ 발언이 결과적으로 야당 심판론에 불을 지핀 걸까. 김 전 대표는 4월 14일 “저쪽(야권)에서 내 말을 악용했지만 전북의 민심은 그 말(‘배알’ 발언)이 맞다고 한 것”이라며 “그것 때문에 이정현도 살았다. 전북에서도 힘 있는 여당 후보가 돼야 이정현 의원이 한 것처럼 예산폭탄이 터진다고 하니까 이정현이 확 부각된 것”이라고 말했다.

 
l 속마음은 이미 2017년 대선을 향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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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공천자 대회에서 필승을 결의하는 원유철·강봉균·김무성 ·서청원·이인제 공동선대위원장 (왼쪽부터).

실수담도 적지 않다. 4월 7일 서울 노원병 이준석 후보 지지 연설에선 “우리나라 발전을 위해서 안철수를 선택해주시기를…”이라고 말해 웃음바다가 됐다. “안철수 같은 인물은 많이 있지만 이준석 같은 인물은 보지 못했다”며 이 후보를 띄우려다 두 사람을 헷갈린 거였다. 김 전 대표는 “아이고, 제가 하루에 10번 이상 연설을 하다 보니… 여러분을 웃기려고 일부러 그랬다”는 농담으로 모면했다. 인터넷에선 ‘안철수, 의문의 1승’, ‘이준석, 노이즈마케팅?’ 등의 댓글이 달리는 등 화제가 됐다.

손범규(고양갑)후보 지원 유세를 하다 박근혜 대통령을 “박근혜 전 대통령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 4월 10일 “여러분, 손범규 전 의원이 재미있다는 것을 알고 있느냐”라고 말을 꺼낸 뒤 “(18대)국회에서 농성도 하고 우리끼리 모여서 이야기를 할 때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앉은 자리에서 한 시간, 두 시간씩 계속 웃기는 사람이 손범규였다”고 말했다.

당 공보실에선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 대통령을 박근혜 전 대표로 지칭하려다 실수가 나온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말실수=억압된 무의식에 따른 속마음’이라는 정신분석학자 프로이드의 이론까지 꺼내들며 “김 전 대표의 속 마음이 이미 2017년 대선을 향하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뒷말이 끊이지 않고 있다.

4월 9일 김동식(김포갑)·홍철호(김포을)후보 지원 유세에서는 더불어민주당 김두관 후보(김포갑)를 가리켜 “김두한 후보”라고 말실수를 했다. 김 전 대표는 “김두한 후보는 자기 맘대로 둥지를 바꾸는 속도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다가,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뒤에 있던 김학용 대표 비서실장에게 “내가 김두한이라 했나, 김두관이라 했나”라고 물어보며 머쓱해 했다.

13일 동안 실언과 직언 사이에서 줄타기를 했던 김 전 대표의 유세 코드를 정리해봤다.

①“제가 보증한다”= 김 전 대표는 5선의 관록을 활용해 후보들과의 개인적 인연을 부각시키는 편이다. 송태영(청주 흥덕)후보에겐 “제가 사무총장 할 때 제 밑에 있었던 사람”이라며 “저도 사무처 국장출신으로 당 대표를 하고 있는데 송 후보도 당 대표까지 할 능력이 있음을 보증한다”고 말했다.

전주을 정운천 후보를 지원할 땐 “정 후보의 별명이 ‘찐득이’”라며 “(국회의원) 배지도 없는 분이 전북 몫 예산 챙기겠다고 저를 못살게 굴어서 징글징글하다. 전주 발전을 위해 예산 폭탄을 가져올 힘 있는 후보”라고 말했다. 당 관계자는 “더민주 김종인 대표와 달리 후보자들의 면면을 잘 알고 있는 당 대표이기 때문에 지닐 수 있는 강점”이라고 평가했다.

②“당 대표로 만들자”=국회의장감, 사무총장감이라며 후보를 추켜세우는 ‘감투 유세’도 김 전 대표의 트레이드마크다. 정우택(충북 청주)후보 지원 유세 때는 “4선 의원으로 만들어서 김무성이를 대신하는 당 대표 한번 만들어봅시다”라고 말했다.

5선의 황우여(인천 서을), 4선의 심재철(안양 동안을), 김영선(고양정) 후보는 당선되면 국회의장으로 만들자고 했고, 당 대표가 임명권을 가진 사무총장으로 점지한 후보만도 홍문표 등 10명이 넘는다. 이를두고 “당 대표직을 그만둔다면서 너무 공수표를 날린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오기도 했다.

③“이 사람 살려달라”=공천 파동으로 새누리당의 전통적 지지층인 50~60대가 등을 돌렸다는 자체분석 이후 김 전 대표는 더 납작 엎드렸다. “살려달라”는 표현까지 써가면서다. 4월 7일 성북을 김효재 후보의 지원 유세 때는 “모든 벌을 저에게 주시고 여기 있는 김효재 한번 살려주셔야 된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 있던 강북을의 안홍렬 후보까지 가리키며 “둘 다 당선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꺼, 함 봐주이소”라고 말하기도 했다.

노원병 이준석 후보의 지지를 호소하면서는 “저는 이제 할 만큼 했으니 그만해도 됩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준석에게 맡깁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총선 하루 전에도 이 후보 지원 일정을 급히 추가해선 “제가 정치를 은퇴한다 하더라도 이준석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모든 힘을 쏟도록 하겠다”고 추켜세웠다.


l 화제 모은 ‘어부바 유세’, 참패 후엔 ‘어부바 저주’로
‘어부바 유세’도 빼놓을 수 없다. ‘어부바 유세’는 2014년 7·30 재·보궐 선거에서 시작된 김 전 대표의 트레이드 마크다. 당시 김 전 대표가 업었던 홍철호(김포을), 김용남(수원병), 김제식(서산-태안) 후보가 모두 당선됐고 새누리당은 11대4로 야당에 압승을 거뒀다. 김 전 대표가 “제가 업으면 당선된다”고 말하는 근거다.

이번 유세기간 중 진행했던 인터뷰에서 김 전 대표는 “후배 정치인들을 격려하려고 업기 시작했는데 재밌다는 반응이라 계속한다”며 “허리야 아프지만 업어서 당선만 된다면 백번이라도 업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달 북대서양조약기구인 나토군사령관 겸 유럽 주둔 미군 사령관에 취임한 커티스 스캐퍼로티 전 주한미군사령관 얘기를 꺼냈다. 지난 해 7월 김 전 대표는 서울 용산에 위치한 한미연합사령부를 방문했을 때 “한국에서는 감사와 존경을 표시하는 관습이 업어주는 것”이라며 스캐퍼로티 사령관을 즉석에서 업었던 일이 있다. 김 전 대표는 “보통 주한미군사령관을 마치고 나면 은퇴를 하는데 나토군사령관으로 간 건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하더라”며 이번에도 ‘어부바 유세’효과가 나타나길 기대하는 눈치였다.

선거가 끝난 후 김 전 대표에게 몇 명이나 업었는지 기억하느냐 물으니 고개를 갸우뚱했다. 업는 기준을 묻자 “조금만 띄우면 될 것 같은 후보들인데 너무 무거울 것 같으면 패스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총선 참패의 여파로 ‘어부바의 저주’라는 말까지 나도는 데 대해선 다소 억울한 표정이었다. 김 전 대표는 “우세 지역은 안 가고 박빙 지역만 다니다 보니…”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번에 김 전 대표가 업어준 후보 중 낙선자가 많은 건 사실이지만 김기선(원주갑), 홍철호(김포을) 당선자도 포함돼 있다.

현장에선 지지 성향을 떠나 김 전 대표의 연설을 한번 보겠다며 몰려드는 사람들도 만날 수 있었다. 4월 7일에는 서울 성북구의 장위 전통시장 삼거리에서 유세 중이던 김 전 대표가 “저기 내 친구 있네”라며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김 전 대표의 모교인 한양대 동문 7명을 보고서다. 그중 한 명인 성낙권 씨는 “성북구에 사는 사람은 한 명도 없는데 무성이가 요새 너무 고생하는 것 같아 격려차 왔다”며 “멀리서도 알아보니 신기하다”고 말했다.

세종의 박종준 후보 유세장에 모인 사람들은 경찰과 취재진을 보고 “김무성이 거물은 거물인가벼”라고 수군댔다. “풍채는 딱 대통령감이제”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큰 소리로 “김무성 대통령”을 외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반응에 대해 김 전 대표는 “내 입으로 한 번도 대권을 얘기한 적이 없는데 그런 반응은 부담스럽다(4월 6일)”고만 했다. 4월 14일에 만난 김 전 대표에게도 에둘러 물었지만 답변을 요리조리 피하려 했다.

오세훈, 김문수 등 여권 잠룡들이 총선에서 패했다. 차기 주자가 잘 안 보인다는 얘기가 나온다.

“지금 당장 그들을 대선 주자라 할 수 있나. 또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인물을 만들 수 있다.”

곧 대선인데 당장 당내 구심점 역할은 누가 하나?

“원유철 원내대표가 있지 않나”(웃음)

4월 14일 오후 8시30분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긴급 최고위원회의에서 원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으로 추대됐다. 김 전 대표가 대표로서 한 마지막 의결이었다.

-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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