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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의 아이콘 잃었다” 프린스 애도 보라색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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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팝의 왕자’ 프린스가 21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 기존 장르의 틀을 거부하고 사람들의 예상을 깨는 음악을 만든 창조의 아이콘이었다. 마지막 역시 자신의 음악처럼 갑작스러웠다. 1985년 2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의 공연 모습. [AP=뉴시스]


왕성한 작곡가, 기타·키보드·드럼 연주의 달인이자 펑크·록·R&B·팝 음악에 두루 정통했던 음악 천재, 마돈나와 염문을 뿌린 섹스 심벌…. 간단한 수식어로 요약되지 않는 ‘팝의 왕자’ 프린스가 21일(현지시간) 미국 미니애폴리스 외곽 자택에서 숨졌다. 58세. 그는 이날 오전 녹음 스튜디오도 겸한 자택의 엘리베이터 안에서 의식불명인 채로 발견됐다. 응급의료진이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으나 그의 마지막 길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약물 과다 복용설이 나오는 가운데 경찰은 사인 규명을 위해 부검을 실시할 예정이다.

마이클 잭슨과 미국 팝 양대산맥
대표곡 ‘퍼플 레인’1300만장 판매
마돈나 “그는 세상 바꾼 선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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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스 추모를 위한 보라색 에펠탑. [트위터]

 일주일 전 공연을 했을 정도로 건강했던 그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에 전 세계는 슬픔에 빠졌다. 마돈나는 “그는 세상을 바꾼 선지자였다”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 추모 글을 올렸고, 믹 재거·폴 매카트니 등 쟁쟁한 뮤지션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영국 방문 중 “프린스는 창조의 아이콘. 가장 재능 있는 음악가였다”고 애도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특히 그가 여러 차례 공연했던 뉴욕의 아폴로극장, 그의 고향 미니애폴리스의 야구장, 지역방송국 등이 건물 외관을 보라색으로 장식했다. 미국에서만 1300만 장이 팔린 1984년 영화 ‘퍼플 레인(Purple Rain)’의 사운드트랙 앨범으로 그의 상징색이 돼 버린 보라색으로 그를 추모한 것이다.

58년 뮤지션 아버지, 재즈 가수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일찍 음악을 접했다. 데뷔 앨범 ‘포 유(For you)’를 18세에 발표했다. 각종 악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며 기존 장르를 거부했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미니애폴리스 사운드(Minneapolis Sound)’라는, 하나의 장르로 정의되기도 했다. 통산 1억 장의 앨범을 팔았고, 그래미상을 일곱 번 받았다. 80년대 마이클 잭슨과 함께 미국 팝 음악계를 휩쓸 당시 같은 흑인인 데다 나이까지 같아 비교 대상이 되기도 했다.

영국의 BBC는 “몸을 잔뜩 치장한 요부였고, 관객들을 광란에 이르도록 달아오르게 만들었다”고 보도했다. 1m57㎝의 단신에 극히 내성적이었지만 무대에만 오르면 달라져서다. 창작의 자유, 저작권 보호 등에 기이할 정도로 민감해 90년대 초반 소속사인 워너 브러더스와 갈등을 빚었다. 항의 표시로 자기 얼굴에 ‘노예(slave)’라고 쓰고 다닌 사건은 유명하다.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나 유튜브에서 그의 음악·영상을 볼 수 없는 것도 엄격한 저작권 관리 때문이다.

수수께끼 같았지만 지역 주민들에게는 친근했다.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미니애폴리스의 벳시 호지스 시장은 이런 성명을 발표했다. “프린스는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았다. 우리도 그를 떠나 보내지 않았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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