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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워치] 혁신의 장애물은 정책이 아니라 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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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판 해거드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UCSD) 석좌교수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후 혁신을 통한 창조경제 구현을 한국 행정부의 핵심 정책 테마로 확립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한국에 던져진 중대한 질문은 “정책이 아니라 문화적인 요소들이야말로 보다 신속한 혁신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아닌가”이다. 특히 성공적인 혁신이 요구하는 것은 실패를 받아들이고 포용하려는 의지다. 이는 ‘문화적’인 문제다.

왜 그런지 이해하려면 실리콘밸리, 이스트런던의 인터넷 클러스터, 싱가포르의 과학파크 등 산업 클러스터를 뒷받침하고 있는 논리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이들이 이룩한 성공 스토리의 핵심은 ‘지리’의 중요성이다. 혁신은 외딴 곳에서 꽃피는 게 아니다. 상호 연결된 회사들이 지리적으로 가까운 곳에 집단적으로 위치해야 한다.

수많은 연구가 계속해서 확인해온 바에 따르면 성공의 열쇠는 재능(talent) 있는 인재들을 끌어모으는 것이다. 회사들 간의 인력 이동이 활발해야 성공을 거둘 수 있다.

그런데 ‘재능’이란 대체 무엇일까. 물론 재능에는 고도로 전문화된 스킬(skill)이 포함된다. 사실 성공적인 산업 클러스터에는 대학과 기업 사이에 긴밀한 관계가 발견된다. 스탠퍼드대와 실리콘밸리, 매사추세츠공대(MIT)와 보스턴의 ‘128번 도로(Route 128)’의 관계만 봐도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킬만 따지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창업가적 재능에서 가장 포착하기 힘든 것은 새로운 아이디어에 레이저광선 같은 포커스를 맞추는 것이다.

그러한 포커스는 엄청난 리스크(risk)에 노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공적인 클러스터를 뒷받침하는 것은 벤처자본 모델이다. 벤처자본은 초기 투입 자본을 신생기업에 제공하는 대신 지분을 받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투자는 완전히 실패한다.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부분적으로는 개개인의 심리 문제다. 하지만 문화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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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에서 실패가 차지하는 역할과 관련해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의 바바 시브 교수는 리스크에 대한 두 가지 유형의 사고방식이 있다고 지적했다. 첫 번째 사고방식은 실수를 두려워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사실 실수를 두려워한다. 또 조직이 작동하려면 실수에 대한 두려움이 꼭 필요하다. 하지만 그러한 사고방식은 리스크를 기피한다. 두 번째 사고방식은 실패가 아니라 기회를 놓치는 것을 두려워한다. 특히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기회를 잡는 것을 두려워한다.

한국에서는 과연 고위험 벤처기업에 재능 있는 인재들이 몰리고 있는가. 우선 스킬 측면을 따져보면 한국의 교육체제와 민간 부문 사이에는 상당한 미스매치(mismatch)가 있다. 15세 한국 학생들은 표준화된 수학·과학 시험에서 항상 세계 최고 수준의 실력을 자랑한다. 대학 졸업장이 있는 25~35세 인구라는 척도로 봐도 한국은 선진국 중에서도 최상급에 속한다.

한국 기업의 연구개발(R&D) 투자는 높은 수준이지만 과학기술 일자리가 한국 노동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선진국치고는 아직도 상대적으로 낮다.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많은 자연과학 전공 졸업생들이 자신의 전공 분야와 직결되는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단순히 스킬의 미스매치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위험과 실패와 신분에 대한 고려와도 관련이 있다. 대입에 맞춰진 한국의 교육제도는 매우 강력한 능력주의적인 기대를 낳았다. 열심히 공부하면 대기업 입사에 성공하고 고속 승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는 바바 시브 교수가 말한 리스크를 두려워하지 않는 창업가적 사고방식과 배치된다. 한국은 금융체제, 노동시장, 교육체제 등을 이렇게 저렇게 개혁하면 혁신을 이룰 수 있다는 충고를 숱하게 들어왔다. 하지만 한국이 들어온 권고는 과연 올바른 질문에 바탕을 둔 것일까.

우리는 어쩌면 근본적인 문제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우선 부모들이 자녀들의 실패를 용인할 의지가 있어야 한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실패가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가르쳐야 한다.

이러한 문화 변화는, 한국인에게서 거의 신성시되는 교육에 대한 관점을 바꾸는 데서 시작돼야 한다. 학문에 소질이 없는 청소년들이 과연 대학에 갈 필요가 있을까. 다른 직업 기술을 배우는 게 낫지 않을까. 직업 교육을 받다 보면 창업의 기회가 생길 수도 있다.

대졸자들이 ‘완벽한’ 일자리를 기다리며 실업상태에 남아 있는 것보다는 중소기업에 취업해 비즈니스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경험을 쌓는 게 낫지 않을까. 많은 나이든 한국인들이 노동시장의 급격한 변화 때문에 창업을 할 수밖에 없는 압력을 받고 있다. 신분을 유지할 수 없게 되거나 체면에 손상을 입을 가능성도 압력으로 작용한다. 그러한 관점에서만 창업을 살펴볼 수 없다.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고방식이 사회 전체에 긍정적인 결과를 낳는다.

질문을 바꾸고 질문에 대한 답을 바꾸는 데서 문화 변화가 시작된다. 창조경제를 출범시키기 위해 한국 정부가 도입한 수많은 정책보다는 문화를 바꾸는 게 한국에서 혁신의 앞날을 더 밝게 만들 수 있다.

스테판 해거드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UCSD)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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