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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노래 발표한 이승환 "JTBC '히든싱어'가 날 다시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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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승환의 정규 11집을 향한 여정은 유난히 길다. 2010년 10집 앨범을 낸 이후 그는 11집 앨범을 CD 2장에 담아내기로 결심했다. 2014년 ‘폴 투 플라이-전(Fall To Fly-前)’ 앨범이 나왔다. 11집 중 절반이다. 이승환은 수십 곡을 녹음했고 그 중 열 곡을 이 앨범에 담았다. 남은 곡 중에서 또 열 곡을 추려내 나머지 절반에 담기로 했는데 시간이 흘렀다.

소속사 드림팩토리 측은 최근 “이승환씨가 폴 투 폴라이-후(Fall To Fly-後) 앨범에 수록할 계획으로 녹음까지 마친 열 곡 중 일곱 곡을 폐기하고 새롭게 곡을 작업했다. 좀 더 새로운 곡을 들려주고 싶다는 의지로 대다수 곡을 과감히 버렸다”고 밝혔다. 남은 세곡 중 한 곡이 21일 세상에 나왔다. ‘10억 광년의 신호’라는 노래다. ‘우리 이제 집으로 가자’는 후렴구의 가사가 간절하다. 그는 멀어진 상대를 향한 간절한 그리움과 그 그리움이 상대에게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또 11집의 완성을 위한 후반 여정이 시작됐다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그는 21일 서울 이화여대 삼성홀에서 기자간담회 및 쇼케이스를 열었다. 그는 “앨범을 내서 적자를 보더라도 내 콘서트에 와주는 팬을 위해 새 노래를 계속 만들겠다”고 말했다.
 
폴 투 플라이 전 앨범 간담회 때 나머지는 3년 이후 낼 거라고 말했는데.
“당시 3년이라고 했던 것은 못 낼 수도 있다는 불안감과 팬들에게 기대감을 안겨주고 싶다는 바람을 섞은 표현이었다. 일부러 멀찌감치 잡은 거다. 폴 투 플라이 전편이 망하고, 영화 투자도 사기당하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웠다. 25년 만에 처음으로 다른 소속사의 가수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JTBC 예능프로그램 ‘히든싱어’에 출연하면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이후 공연도 매진됐다. 이제는 약속을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앨범 작업하는데 돈을 많이 썼다던데.
“‘폴 투 플라이-전(Fall To Fly-前)’의 경우 뮤직비디오 제작비랑 녹음비로 7억 2000만원 썼다. 이번에 발표한 ‘10억 광년의 신호’를 녹음하고 뮤직비디오 제작하는데 1억 원 넘게 든 것 같다. ‘왜 그렇게 고비용 저효율적인 행동을 하느냐’고 나무라는 사람도 있다. 음악을 처음 하거나 어렵게 하는 친구들에게 누군가는 쉰 살이 넘었어도 의욕을 불태우고 의지를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신념 갖고 음악 하면 누군가 박수 쳐줄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4년 전부터 홍대 클럽에서 공연하고 있다. 이제는 홍대에서 제일 좋은 형이라고 불린다.”
적자라면 굳이 앨범을 낼 필요가 있나.
“앨범을 내면 늘 엄청난 적자를 본다. 그래서 제가 어렸을 때 음악하던 것처럼 취미 활동하는 거라고 편하게 생각한다. 앨범을 낼 수 있는 경제적인 원천은 팬들의 공연 입장료다. 그들을 위해 당연히 새 노래를 만드는 게 맞다고 본다. 음악인이 갖춰야 할 덕목이 젊은 감각이라 생각한다. 이승환은 그걸 유지하고 있고, 진화하는 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싱글 형식으로 한 곡만 먼저 발표한 이유는.
“늘 제 삶을 음악에 녹여 내고 진심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앨범 속에 들어 있는 노래를 다 듣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아쉽고 두렵다. 한 곡이라도 집중해서 들을 수 있게 싱글 형식으로 발표하는 것도 중요하다.”
나머지 일정이 어떻게 되는가.
“후편 앨범은 계획대로라면 내년 봄쯤 낼 생각이다. 7월 둘째 주까지 매주 공연이 잡혀 있고, 그 이후도 잡힐 것 같은데 그럴 경우 좀 더 늦어질 것 같다. 정규 앨범 내기 전에 2개의 싱글곡을 먼저 발표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서태지와 합동 공연을 한다는 소문이 있다.
“안타깝게 운명을 달리한 신해철군 때문에 마음 아팠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를 기리는 우리 둘만의 콘서트를 해보고 했었다. 실제로 내가 공연의 연출을 대부분하기로 하고 홀로그램으로 신해철을 무대에 소환하는 게 가능한지 알아보기도 했다. 이후 둘이 공연할 경우 좀 더 확실한 그림이 있어야 겠다고 의견을 나눴다. 좀 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서로 좋은 마음을 가지고 호감을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다가 중단된 상태다.”
국정화 교과서 반대 등 요즘 들어 사회적인 목소리를 많이 내는 이유가 있나.
“광우병 사태 때부터 꾸준히 목소리를 냈다. 당시도 콘서트를 했다. 이후 외규장각 반환 콘서트도 했다. 용산 참사 콘서트에 참석했다. 갑자기 정치병에 걸린 것처럼 얘기가 나오는데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10억 광년의 신호’라는 노래에서 ‘우리 이제 집으로 가자’는 가사가 세월호를 연상시킨다. 의도했나.
“상관없이 썼다. 마음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움의 신호를 보내는 것에 대해 쓴 거다. 그랬는데 많은 사람이 세월호를 이야기한다. 가수이기에 내가 만든 노래를 각자 해석하고 자신의 상황에 이입해서 느끼는 것에 보람도 느낀다. 청자의 몫이다. 내가 뜻했던 내용과 다를지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으로 위로받을 수 있고 세월호가 느껴진다면 그것도 괜찮은 일이라 생각한다.”
지난해 6시간이 넘는 공연도 했다. 체력 관리 비법이 있나.
“올해는 7시간에 도전해보고 싶다. 이전에는 웨이트 운동을 해서 근력을 키웠는데 요즘은 유연성을 더 길러 목에 무리가 가지 않는 운동을 하려고 계획 중이다. 말수도 아낀다. 9~10월께 내 기록을 깨는 공연을 하고 싶다. 공연 규모도 지난해보다 키우고 싶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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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