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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NIE] ‘막말’ 트럼프 인기는 몰락한 중산층의 분노

미국 대선을 지켜보는 세계의 눈이 충격과 혼란에 휩싸였다. 반(反)이민·반무슬림 혐오 발언으로 ‘막말 제조기’라는 별명을 얻은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 논란

혐오·비난·배척으로 가득 찬 그의 정책과 발언에 미국 보수 백인층이 열광한다. ‘트럼프 현상’은 중산층 몰락과 빈곤층 증가 등 부의 양극화로 인한 미국 밑바닥 민심의 변화를 대변한다. 여기에 미국 내 광범위하게 퍼진 반이슬람 정서가 곁들여진다. 언론과 각종 자료에 기초해 미국 대선과 ‘트럼프 현상’에 대해 알아봤다.

쟁점과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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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현상’은 미국의 정치·경제·사회 변화를 배경으로 한다.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 속에서 부의 양극화와 중산층의 몰락은 미국 서민 보수층의 극우 성향을 자극했다. 미국 서민 보수층이 기성 정치권에 느낀 실망과 분노는 트럼프를 통해 표출된다. 극우의 부상은 2008년 글로벌 경기 침체를 계기로 전 세계로 퍼졌다. 한국도 이런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다. 흙수저·금수저 논란, 극빈층의 증가, 청년실업 등 사회적 혼란은 곳곳에 산재해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 미국 대선에서 드러나는 트럼프 논란이 언제 한국에서도 벌어질지 모르는 일이다”고 입을 모은다. 트럼프를 둘러싼 논란을 예의주시하면서 비판적이고 이성적인 관점에서 미국 대선을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미국 양당 경선, 대선 후보 선출할 대의원 뽑는 과정

미국 대선의 시작은 공화당·민주당의 대선 후보 지명전이다. 공화당·민주당은 오는 6월까지 각 주를 돌며 코커스(경선) 또는 프라이머리(예비 선거)의 방식으로 대선 후보 지명전을 치른다. 코커스는 당원만 참여하는 것을 말하고, 프라이머리는 당원뿐 아니라 일반 국민까지 참여할 수 있는 방식이다. 각 주의 투표 결과를 모아 공화당은 올해 7월 18~21일, 민주당은 7월 25~29일 전당대회를 열고 대선 후보를 최종 결정한다.

각 정당의 대선 후보 지명전은 당원 또는 일반 국민이 직접 대선 후보를 뽑는 게 아니다. 후보를 선출할 대의원을 뽑는 과정이다. 당원(코커스) 또는 당원과 일반 국민(프라이머리)이 대의원을 뽑고, 이 대의원들이 7월 후반 전당대회에서 대선 후보를 선출하는 간접선거다. 공화당의 총 대의원 수는 2472명, 민주당은 4764명이다. 이 인원이 각 주의 당원 수에 비례해 50개 각 주마다 배정돼 있다.

대선 후보 지명전에 출마한 후보들은 각 주마다 이뤄지는 당내 투표에서 얻은 득표율에 따라 그 주에 배정된 대의원 수를 나눠 갖는다. 각 후보가 획득한 대의원 수가 후보 지명전의 판세를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이렇게 선출된 대의원들이 7월 후반 전당대회에 출석해 사전에 지지를 표명한 후보에게 표를 던진다. 현재 공화당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민주당에선 힐러리 클린턴이 후보 지명전 1위를 달리고 있다는 언론 보도는 각 후보가 확보한 대의원 수가 현재 가장 많다는 것을 뜻한다. 공화당은 많은 주에서 대의원 배정 방법으로 승자독식제를 채택하기도 한다. 승자독식제는 해당 주에서 득표가 가장 많은 후보가 그 주에 배당된 대의원을 모두 가져가는 것을 말한다. 7월 열리는 전당대회까지 총 대의원 수의 과반 이상(공화당은 1237명, 민주당은 2383명)을 확보하면 최종적으로 대선 후보로 선출된다.

극빈층 추락한 저학력 백인, 기성 정치 배신감으로 결집

트럼프는 멕시코 이민자들을 성폭행범으로 묘사하고 여성·동성애자·이민자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무슬림 입국 전면 금지 정책을 내세우며 반이민·반이슬람 정서를 부추긴다. 극단적인 보호무역 공약은 세계적인 무역 분쟁 유발 가능성을 높인다. 중동은 물론 한국·일본까지 “미국의 피를 빨아먹으면서 무임승차하고 있다”고 묘사한다. 그런 그가 공화당 내 대선 후보 경쟁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트럼프의 주요 지지층은 저학력·저소득 백인 보수층이다. 미국 주류 사회를 이끌어오던 엘리트 보수층과 구분된다. 트럼프 인기는 미국 밑바닥 민심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많다. 정치 전문가들은 트럼프 현상이 단지 그의 화려한 화법과 쇼맨십에 기댄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한다. 미국의 정치·경제·사회 변화가 배경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가장 커다란 변화는 글로벌 경기 침체와 미국 중산층의 몰락이다. 2009년 이후 미국은 경기회복 국면을 거쳐왔다. 거시경제 지표는 개선됐고 경기는 살아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경기회복의 성과를 누가 가져가고 있는가의 문제는 다르다. 지난해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 리서치사에 따르면 1971년 약 61%를 차지하던 미국 중산층 비율은 지난해 50%까지 떨어지며 사상 처음으로 50% 이하로 추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조사에서 극빈층은 20%에 달했다.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중산층은 극빈층으로 추락하는 부의 양극화 현상이 심화했다.

미국 서민 보수층은 기성 정치권과 기득권 세력에 분노했다. “2008년 금융위기 때 수백만의 중산층 백인들이 서민층으로 추락했다. 그 뒤 경제가 살아났지만 경제성장의 과실은 부유층에 독점되어 빈부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백인 서민들은 홀로 내팽개쳐졌다는 좌절감을 느끼고 정부와 주류 정치인들과 부자들에 대해 배신감을 갖게 되었다.(중앙일보 2016년 4월 8일 ‘트럼프 현상은 끝나는가’)

부의 양극화와 중산층의 몰락은 서민 보수층의 극우 성향을 증폭시킨다. 2001년 참혹한 9·11테러에 대한 기억은 반이민·반이슬람 정서로 확장한다. 트럼프는 자극적이고 공격적인 언행으로 서민 보수층의 좌절과 불안을 파고든다.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 교수는 트럼프 현상을 이렇게 분석한다. “수천만 명에 달하는 미국 내 보수주의자들 중 상당수는 중산층 이하의 백인 남성이다. 자신이 이민자·유색인종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지만 차마 입 밖에 내진 못 한다. 트럼프는 금기였던 이런 생각을 큰소리로, 그것도 수치심 없이 외치고 있다.”

트럼프와 닮은 듯 다른 꼴 … 진보 세력의 샌더스 열풍

민주당 대선 후보 경쟁에서 힐러리 클린턴을 긴장시키고 있는 버니 샌더스의 부상은 트럼프 인기와 닮은 듯 다른 꼴이다. 사회주의자에 가까운 샌더스는 대학교 무상 등록금, 부자 증세, 대형 금융업체 제재 등 북유럽식 복지를 주요 정책으로 내건다. 샌더스는 비판 의식이 강한 젊은 세대를, 트럼프는 워싱턴 정치로부터 무시당한다고 느낀 백인층을 선명한 단순 화법으로 파고든다.

극단적으로 이질적인 트럼프와 샌더스의 인기는 미국 중산층의 몰락이라는 같은 토양을 배경으로 한다. 미국 사회의 우클릭이 트럼프라면, 좌클릭은 샌더스다. “고학력-화이트칼라-백인은 ‘프롤레타리아화(化)’하면서 부의 재분배와 연대를 강조한 샌더스에 눈을 돌렸다. 가난하고 못 배운 백인은 이민자들이 생활고의 원인이라 여겨 트럼프를 선택했다. 정계의 이단아였던 샌더스와 트럼프가 부상한 과정은, 실패한 중도에 실망한 대중이 극단으로 돌아선 유럽의 정치와 닮았다.”(중앙일보 2016년 2월 12일 ‘사회주의자·극우의 약진 … ‘유럽형 정치’ 미국 대선 장악’)

미국의 인구 사회학적 변화도 미국 정치 지형 변화의 큰 배경이다. 1980년~2000년생을 의미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등장과 성장이다. 최근 미국 여론조사기관인 갤럽에 따르면 미국의 베이비부머 세대(1946~65년생)는 44대 21로 보수 성향이 강한 데 반해 밀레니얼 세대는 30대 28로 진보 성향이 우세한 것으로 조사됐다. “미 대법원의 동성결혼 합헌 판결, 오바마케어(건강보험개혁법), 주와 시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러시 등 최근 미국에 불고 있는 좌파 바람은 이런 인구 구조 변화와 무관치 않다. 샌더스는 그 바람을 타고 있다. 트럼프 현상은 미국 사회의 좌클릭 현상에 대한 보수적 백인 남성 계층의 좌절감을 반영한다.”(중앙일보 2015년 8월 4일 ‘트럼프, 샌더스 그리고 코빈’)

언론은 기성 정치권에 대한 실망, 중산층의 몰락 등 정치·경제·사회적 변화에서 한국도 무관하지 않음을 말한다. “신자유주의로 인해 사회 양극화와 경제적 불평등 심화는 전 지구적 현상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샌더스 현상이 미국을 넘어 국내에서도 반향을 일으키는 이유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 기성 정치권이 우리 사회의 근본 문제에 제대로 된 답을 제시하지 못해 생기는 갈증이 샌더스 현상에 대한 동경으로 표출되는 것은 아닐까.”(중앙일보 2016년 3월 7일 ‘샌더스 현상은 현실에 대한 불만과 좌절의 표현’)

정현진 기자 Jeong.hyeon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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