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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구경꾼이 날린 분노의 하이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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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주인(主人)을 박대한 대가는 쓰렸다. 패배라는 말은 사전에 없는 ‘선거의 여왕’ 박근혜 대통령은 적이 당황했을 거다. 아님 괘씸한 마음이 들었을지 모른다. ‘배신의 정치’를 심판하라 일렀거늘 감히 배신을 때리다니. 사실 배신을 때린 것은 청와대와 집권당이었다. ‘국민이 주인입니다. 진정 섬기겠습니다.’ 정권마다 읍소한 ‘머슴론’이나 ‘섬김서약’이 엊그제 일인데, 지난 3년은 마치 국민이 생존을 투탁하는 구활비(口活婢) 같다는 느낌을 저버릴 수 없었다. 추상같은 호령에 눌려 벼슬아치의 상소는 아예 자취를 감췄고, 일반 서민이 저잣거리에서 올리는 상언에도 대체로 비답(批答)은 없었다. 국민은 주인이 아니라 구경꾼, 객(客)이었다.

주객전도는 공천과정에서 극에 달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공천관리위원회는 원칙과 명분이 분명치 않은 칼질을 해댔다. 말이 좋아 컷오프지, 누군 자르고 누군 꽃가마를 태웠는지 아무리 애써도 알 길이 없었다. 욕설이 난무했다. 그 와중에 진박(眞朴)이 우르르 몰려다니고, 옥새를 갖고 튀고, 공관위원장은 조폭 언어를 구사했다. 좌초 일보 직전 감독권을 위임받은 김종인 대표는 뚝심 그 자체였다. 암초로 지목된 친노 성향과 강경파를 뚝뚝 잘라냈다. 난도질 끝에 불쑥 내민 여야 공천 명단에 객은 토를 달 수 없었다. ‘자, 이제 골라보시라!’ 아무튼 찍어야 했다. 명령받은 주권(主權), 그것은 객권(客權)이었다.

객이 날린 분노의 하이킥! 20대 총선은 그것이다. 그러니 뒤집어질 수밖에. 객의 분노는 무서웠다. 서울과 수도권에서 새누리당은 쫓겨났고, 대신 지리멸렬한 더민주당이 불려 왔다. 오죽했으면 보수의 아성 강남·송파·분당에서 그런 일이 발생했겠는가. 받아들일 세입자가 마땅치는 않았지만, 총 122석 중 70%를 야당에 줬다. 새누리당은 대구 본가(本家)에서도 혼쭐이 났고 문중이라 여겼던 부산에서는 더 곤욕을 치러 결국 대갓집을 비웠다. 더민주는 본가인 호남에서 쫓겨났는데 수도권이 불러주는 통에 얼떨결에 대갓집을 차지했다. 이런 어부지리가 있을까, 표정관리에 애를 써야 할 판이다. 분노의 표심에 힘입어 호남에 입주한 국민의당은 타 지역에서 더러 선전을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본가에 셋방살이라도 하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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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권의식의 울화증은 정당의 원적(原籍)을 거의 갈아치울 만큼 무서웠다. 주인이 당연히 계약을 연장해 주는 ‘텃밭정당’은 없다는 것을 선언한 선거였다. 이른바 ‘월세(月貰)정당’이 탄생했다. 여야 3당은 이제 주인의 엄격한 감사를 받아 언제라도 짐을 싸야 할 ‘월세(月貰)정당’이 되었다. 세입자를 평가할 기회가 매년 찾아온다.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그리고 2020년 총선. 수도권이 국민의당을 호출할 수도 있고, 새누리당은 경북으로 퇴각할지도 모른다. 정권은 수도권 중산층의 향배에 달렸다.

분노의 표심, 그 진앙지는 청와대이고, 박 대통령이다. 군주론적 나 홀로 통치양식에 단단한 장벽을 둘러쳤다. 노태우 정권 초기 13대 총선과 표심이 정확히 같다. 당시 민정당 125석, 평민당과 통민당 합쳐 129석, 공화당 35석 분포였다. 정권은 줬지만 독재본가 민정당을 견제하라는 요청이었다. 합의 않고는 파열음이 터진다. 2016년 표심은 3당 체제의 이런 위험을 감수하고 훈계정치 중단을 명령한 것이다. ‘의논해서 하시오!’라고. 통치자에서 조정자로 변신하라는 맹렬한 호소를 박 대통령은 읽어 내야 한다. 마음속 화쟁(和爭)위원회가 필요하다.

신념에 맞지 않는 흥정과 교환의 정치에도 선뜻 응해야 한다. 야당연합이 들고 나올 상품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우선 거센 증세 압박에 ‘증세 없는 복지’ 원칙을 폐기해야 할지 모른다. 국민연금 허물기, 노인연금 30만원 지급, 재벌대기업 규제강화 피켓을 들고 나설 야당의 강공에 직면할 것이다. 거기에 국정원·세월호 청문회 압박, 국정교과서 철회가 겹치면 정국은 소용돌이다. 무소속을 몽땅 영입해도 겨우 130석 남짓, 167석인 야당연합을 어찌 이겨 낼까. 보수정권에서 받은 서러움을 단번에 씻고자 벼르는 수십 명의 특무상사들이 몸을 풀고 있다.

지난해 6월, 야당의 법안 끼워 팔기에 화가 난 대통령이 분노의 하이킥을 날렸다. 여의도 정치를 ‘난센스’와 ‘패권주의’라 질타했고, 국회법 개정안을 청와대로 반송한 유승민 당시 원내대표는 ‘배신자’가 됐다. 그 분노의 하이킥을 채 1년도 안 돼 구경꾼이 돌려줬다. 3당 체제가 파열로 갈지 여부는 결국 박 대통령에게 달렸다. ‘조정의 여왕’으로 변신한다면 아직은 유권자 가슴속에 남은 애정이 발화할 텐데. 어제 박 대통령은 “민의가 무언지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고 운을 뗐다. 내년 봄까지는 야당의 씻김굿, 다음 열 달은 대선정국이라는 활화산, 새 정권이 들어설 2018년은 거중조정과 지자체 선거로 날이 샌다. 훈계정치로 민의를 돌파할까, 아니면 화쟁정치로 회군할까.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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