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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 인사이드] 그레이 로맨스를 꿈꾸다 아웃된 육군 중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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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중앙포토]


나는 그레이 로맨스를 꿈꾸고 있다.”


스무살 이상 어린 부하인 여군 중위에게 이렇게 말한 육군 중령에게 강제 전역 명령이 내렸졌습니다. 정당한 명령일까요.

이 말은 2014년 7월 하급부대 지도 방문을 다녀오는 길에 B중위가 “결혼할 사람은 한눈에 알아본다는데 참모님도 알아보셨습니까”라고 던진 질문에 대한 A중령의 답이었습니다.

A중령이 언행이 이게 전부가 아니었기에 일은 커졌습니다.

당시 유부남이던 A중령은 같은 해 3~11월 B 중위에게 “쉬폰 블라우스에 스키니진을 입으니 여성스러움이 더욱 빛을 발한다”, “어깨를 살짝 드러내니 분위기가 묘하다” 등의 메시지를 수십 차례 보냈습니다. 이 때 B중위를 “사랑하는 OO아”라고 불렀습니다. 메시지는 밤낮을 가리지 않았고 휴일도 없이 B중위에게 날아왔습니다.

A중령은 말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손금을 봐준다거나 볼링자세를 교정해 준다며 불필요한 신체적 접촉을 했고, 식사 자리에서도 테이블 밑에 둔 휴대전화를 찾는 척하며 옆에 앉은 B중위의 허벅지를 쓰다듬기도 했습니다. 또 동의없이 B중위의 모습을 자신의 휴대전화 카메라로 몰래 촬영하는가 하면 단둘이 놀러가자고 요구했하기도 했습니다. 지역 행사에 지원을 갈 때면 A중령은 자신의 자가용에 B중위만 태워 가며 단둘이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시기도 했습니다.

A중령의 이같은 행동은 결국 사단장에게 적발돼 계급 강등처분을 받았고, 육군본부에 보고돼 육군본부는 지난해 3월 ‘성군기 위반’을 이유로 A중령에게 강제 전역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자 A중령은 서울행정법원에 강등처분 취소소송과 전역명령 취소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강등처분 취소소송은 기각돼 항소심이 진행 중이고, 전역명령 취소소송에 대한 1심 판결이 최근에 나왔습니다.

A중령은 재판과정에서 “B중위가 성적 굴욕감을 느꼈다고 볼 수 없고, 나에게 호감을 보였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A중령의 행동이 ‘현역 부적합’ 사유로 충분하다고 봤습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부장 호제훈)는 A중령이 국방부장관을 상대로 낸 전역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18일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하급자이자 여성인 B중위가 부담스러워할 만한 수위의 문자를 수 차례 보내고 사적 만남을 제안하는 등 부하 직원에게 가질 수 있는 관심과 애정의 표시를 넘어섰다”며 “A중령의 행동은 현역복무 부적합 사유로 충분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또 “B중위는 A중령의 문자에 답을 안 하거나 사무적 말투로 응대한 경우도 많았고, 이같은 고충을 다른 상급자에게 토로한 적이 있었다”며 "B중위도 호감을 보였다"는 A중령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최근 공직 사회나 사기업을 막론하고 성희롱에 대한 인사조치는 강화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지난 3월 서울행정법원은 부하직원들에게 성희롱과 폭언을 일삼던 서울시의회 수석전문위원에 대한 해임이 정당하다는 판결을 냈습니다. 대법원도 최근 근무중 팔이 부딪친 여승무원에게 “피부가 찰지다”는 등의 성희롱을 해 온 대한항공 전 객실사무장 C씨에 대한 파면은 정당하다고 판결했습니다.

판례상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사람이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낄 수 있는 정도”에 이르는 언행이면 성희롱에 해당됩니다. 일단 성희롱으로 인정되면 이로 인한 파면ㆍ해임 등 인사조치의 부당성을 법정에서 인정받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국가기관이든 사기업이든 인사권자의 징계처분에는 폭넓은 재량권이 인정되기 때문입니다.

이번 판결에서도 법원은 “현역 복무 부적합 여부는 참모총장이나 전역심사위원회가 자유재량에 의해 판단할 사항”이라며 “군의 특수성에 비추어 명백한 법규위반이 없다면 군 당국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고 제시했습니다.

정혁준 기자 jeong.hyuk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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