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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뫼의 눈물' 13년 후 한국의 눈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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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현대중공업에 있는 ‘골리앗 크레인’. 2003년 스웨덴 말뫼시의 폐쇄된 조선소에서 단돈 1달러에 사들인 것이다. [뉴시스]


울산 현대중공업 선박 건조장 한복판엔 거대한 ‘골리앗 크레인’이 서 있다. 높이 128m, 중량 7560t인 이 크레인의 출생지는 한국이 아니다. 2003년 스웨덴 말뫼시의 조선소에서 단돈 1달러에 울산으로 팔려왔다. 1980년대까지 세계 조선산업을 호령하던 스웨덴이 ‘신흥강자’ 한국에 무릎을 꿇으면서다. 한국으로 실려 가던 날, 수많은 말뫼 시민들이 조선소로 몰려와 그 장면을 눈물로 지켜봤다. 이를 중계하던 현지 방송에선 장송곡이 흘러나왔다.

13년이 흐른 이달 1일. 현대중공업은 울산 온산 2공장의 가동을 중단했다. 주문이 뚝 끊기면서 해양플랜트 블록을 만들던 공장을 돌리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20만㎡에 달하는 공장은 적치장으로 쓰기로 했다. 최길선 현대중공업 회장은 “도크가 빈다는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눈앞에 닥쳤다”고 말했다.

전국이 선거 열기에 휩싸였던 기간에도 대한민국 대표 산업단지의 불은 하나둘 꺼졌다. 이미 3~4년 전부터 세계적인 공급 과잉에 주력 산업 전반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경쟁력 회복을 위한 구조조정과 산업 재편은 선거 바람에 뒷전으로 밀렸다. 수술대에 올랐어야 할 기업이 계속 수혈을 받으며 버티니 정작 신성장 동력을 키울 여력만 갉아먹었다. 그사이 2%대 저(低)성장이 고착화했고 청년 일자리난은 가중되고 있다. 경제난은 이번 총선에서 여당의 참패를 불러온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선거는 끝났지만 상황은 오히려 어려워졌다. 16년 만의 ‘여소야대’에 정치적 불확실성은 커졌다. 선거 과정에서 여당에서조차 “구조조정을 못하게 하겠다”는 ‘포퓰리즘’ 발언이 난무했다. 급기야 국제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최근 “구조조정이 지연돼 부실채권이 늘 수 있다”며 국내 은행의 신용등급을 강등시켰다.

한국판 ‘말뫼의 눈물’이 현실화할 조짐은 전국으로 나타나고 있다. 충남 당진의 동부제철 열연공장은 2014년 말부터 가동이 중단됐다. 1조원이 투입된 이 공장의 세계 최대 규모 전기로는 팔릴 날만 기다리고 있다. 현대상선이 갖고 있던 부산 신항만의 ‘노른자위’ 부두(2-2터미널)의 운영권은 지난달 싱가포르항만공사(PSA)로 넘어갔다. 자금난에 처한 현대상선이 지분을 팔았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해외 업체들이 합병과 초대형 선박에 대한 투자로 물동량 감소에 대응하는 사이 국내 해운사와 정부는 손 놓고 있었던 결과다.

조선·철강·석유화학·해운 등 ‘수출 한국’을 이끌던 산업이 한꺼번에 ‘응급실’로 몰려들고 있지만 수술을 맡아야 할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역시 중환자 상태다. 지난 수년간 ‘좀비 기업’을 살리는 데 실탄을 소진했기 때문이다. 대우조선의 부실 여파에 산업은행은 지난해 1조8951억원이라는 외환위기 이후 최대 적자를 기록했다. 산업은행의 한 관계자는 “주력 산업의 문제는 전임 정권 후반기부터 표면화했지만 정치적 부담에 구조조정을 미루고, 채권단과 공기업의 ‘낙하산’ 사장들은 자신의 임기 동안 부실을 덮는 데만 급급했던 게 사태를 악화시켰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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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도 많지 않다. 내년 초가 되면 대통령선거 바람에 휩쓸린다. 구조개혁 동력도 급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앞으로 남은 6개월 정도가 개혁의 ‘골든타임’이란 얘기다. 정부도 정치권 탓만 할 게 아니라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조치는 과감하게 밀어붙여야 한다.

야당도 ‘여소야대’ 상황에 취해 개혁에 어깃장만 놓아선 역풍을 피할 수 없다. 국회의 주도권을 야당이 쥐게 된 만큼 개혁 좌초로 인한 경제 파탄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 교수는 “이번엔 여당이 심판을 받았지만 개혁 지연으로 경제가 위기에 빠지면 야당도 심판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민근·김유경·문희철 기자 jm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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