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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의식해 부실기업 놔두면, 대선 땐 야당이 심판받을 것”

산업은행은 세계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부터 2013년까지 5년간 STX조선해양에만 4조원을 대출했다. 선박 발주가 눈에 띄게 줄었지만 정부가 “일시적인 충격을 벗어나면 기업들이 회복할 수 있다”며 기업 퇴출보다는 회생에 방점을 뒀기 때문이다. 국책은행의 돈으로 연명하게 된 회사는 다시 저가 수주에 뛰어들었다. 그러다 수익성이 크게 악화하면서 대출받은 돈을 갚지 못하자 결국 채권단에 자율협약을 신청했다. 정부와 산업은행은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다시 4조원을 지원해 살리기로 했다. 하지만 STX조선은 여전히 경영정상화의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구조조정, 올해가 마지막 골든타임
경제 충격 크니 살리고 보자는
대마불사가 부실퇴출 최대 걸림돌
산업은행도 “구조조정 실기 반성”

‘대마불사(큰 말은 죽지 않는다)’는 그간 부실 대기업의 구조조정을 가로막은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경제적 파급 효과가 크니 일단 살리고 보자는 논리다. 그러나 이들 기업의 연명은 단순히 개별 업체 차원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이들이 사실상 정부의 지원 아래 저가 수주전에 나서면 정상적인 업체들마저 ‘출혈 경쟁’의 도미노에 빠지며 산업 전체가 동반 부실화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은 “대마불사 관행을 끊어내지 않으면 제대로 된 구조조정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산은 내부에서도 반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정용석 산업은행 구조조정부문 부행장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구조조정을 하지 못한 점을 크게 반성한다”며 “구조조정의 방향을 잘못 설정해 결국 좀비기업 부담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지난달 22일 국가미래연구원이 주최한 구조조정 토론회에서다.

STX조선해양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5조원대 회계 부실이 드러난 대우조선해양이나 채권단과 조건부 자율협약을 맺은 현대상선도 정부와 산은이 과감한 결단을 내리지 못하면서 구조조정의 적기를 놓쳤다는 비판이 많다. 이러다 보니 영업이익으로 은행 대출이자도 못 갚는 한계 기업(좀비 기업)은 갈수록 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4년 말 기준 3471개로 전체 외부감사 대상 기업(2만7995개)의 14.4%가 좀비 기업이다.

정부와 국책은행이 대마불사론에만 끌려 다닌 것은 합의된 산업 구조조정 방향의 ‘큰 그림’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대우조선해양 문제가 불거지고 난 뒤인 지난해 말에야 구조조정협의체를 통해 조선·석유화학·철강·해운 업종의 산업 구조조정 방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수술 방안 대신 ‘감산’ 권고 수준에 그친 탓에 효과가 얼마나 날지 미지수라는 지적이 많다.

그나마 총선 전에 공급과잉 업종의 사업재편을 위한 법적 수단이 보완된 건 다행스럽다. 상법·세법·공정거래법 등 관련 규제를 한 번에 풀어주고 세제·자금 등을 지원하는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원샷법)’으로 오는 8월 시행된다. 정부는 발효 이전 스스로 구조조정 논의를 시작한 철강업계부터 법을 적용해나가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표학길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빅딜’ 등을 통한 기업 간 구조조정이 가능하도록 대기업 상호 간 구조조정 시도 시 투자제한조치의 예외를 인정해 줘야 한다”며 “그런 경우에도 한계 기업이 구조조정을 회피하면 정부는 ‘ 퇴출이 불가피하다’는 강력한 신호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세대 성태윤(경제학부) 교수는 “산업 재편 시 부실 업종의 근로자를 다른 산업으로 전환 배치할 수 있는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정부, 과반 야당과 적극 협력해
대규모 실업·부실채권 대책 마련을
국책은행에 낙선자 낙하산은 금물


국회 지형이 여소야대로 달라진 만큼 과반 여당 시절의 일방적 밀어붙이기 개혁도 더 이상은 통하기 어렵게 됐다. 야당의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야당의 주장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얘기다. 김광두 원장은 “구조조정 방안뿐만 아니라 대규모 실업, 은행 부실채권 증가, 지역경제 침체 등에 대한 대책을 정부와 여당이 함께 마련한 뒤 야당에 협조를 요청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는 “야당이 구조조정에 협조하지 않아 경제가 어려워지면 내년 대선에서는 정부·여당뿐만 아니라 야당도 국민의 심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자본을 보강할 대책도 논의돼야 한다. ‘집도의’의 체력이 회복되지 않으면 수술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선거 과정에서 불거졌던 이른바 ‘한국적 양적완화’ 주장도 이를 염두에 둔 제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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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의 협력을 구하기 위해선 산은·수은 등 국책 금융회사에 대한 정부와 정치권의 낙하산 인사는 금물이다. 산은·수은의 부실이 늘어난 건 책임감 없이 임기를 채우는 데 급급한 낙하산 임원 영향이 크다. 낙하산 인사는 정책금융기관 임직원과 구조조정 기업의 도덕적 해이도 불러왔다. 한 공기업 관계자는 “벌써부터 총선에서 낙선한 정피아가 대거 ‘낙하산’을 타고 국책은행을 비롯한 공공기관의 요직에 내려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태경·하남현 기자 uni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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