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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오바마는 ‘전’ 대통령으로서 히로시마를 들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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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현
세계평화포럼이사장
전 과학기술처 장관

히로시마 출신 정치인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상과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합작 연출한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외무장관회의(4월 10~11일)는 철두철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방문 길 트기였다. 케리 장관은 예정 시간을 넘겨 자료관에서 50분이나 머물렀고, 계획에 없던 원폭돔 시찰을 먼저 일본 측에 제안했다. 더구나 기자회견에서 오바마 정권이 추진하는 국제협조주의의 중요성을 호소하면서 ‘오바마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히로시마에 와야 한다’고 역설했다. 5월 26일 G7 정상회의차 이세시마를 방문하는 오바마에게 히로시마를 방문하라는 공개 진언이다.

G7 외무장관회의에서 채택한 ‘히로시마 선언’은 ‘히로시마·나가사키의 사람들은 원폭 투하에 의한 극심한 파멸과 비인간적 고난이라는 결말을 경험했다’로 시작된다.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에 의한 희생이라는 문명사적 재앙은 인류의 기억, 평화의 기원을 촉매하는 중요한 기록으로 남아야 한다. 히로시마·나가사키의 원폭 투하로 21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40만 명의 피폭자를 낳았다. 그중엔 한국인 사망자 3만, 피폭자 4만 명(추정)도 포함돼 있다. 더욱이 66년 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는 또 하나의 재앙이었다. 일본은 이 점에서 ‘원자력’을 매개로 근대의 에너지와 과학기술, 정치와 전쟁과 재난이라는 완벽한 문명사적 실험장이 된 특수한 위치에 있다.

우리는 인류공동체, 지구촌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일본의 히로시마·나가사키·후쿠시마의 비극이 반드시 되풀이돼서는 안 될 인류사적 극복 과제라는 사실 인식에 한없이 겸허해야 한다. 원자력(과학)-원자력발전(에너지)-원자력무기(전쟁)-대재앙-비핵화-평화에 이르는 정치사회적 그리고 생명적 존재론적(끝내 묵시론적) 맥락에까지 걸친 종합 안목으로 히로시마·나가사키의 참극과 후쿠시마의 재난을 묵상해야 한다. 단순히 전쟁의 반대개념으로서의 평화만이 아니라 역사의 평화, 정의의 평화에까지 이르러야 일본의 세 번에 걸친 원자력 재앙에서 평화를 기리고 평화를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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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이 점에서 매우 배반적인 기록을 가졌고 지금도 가지고 있다. 그렇게 엄청난 태평양전쟁(일본 표현 대동아전쟁)을 일으키고도 공식적인 전쟁기념관이 없고, 전쟁에 패배했으면서도 패전을 인정하지 않고 종전(終戰)만 있다고 기록하고 있는 야스쿠니신사의 유슈칸(遊就館)이 대표적이다. 마찬가지로 히로시마 평화공원의 ‘평화’도 매우 배반적이다.

윌리엄 페리 전 미 국방장관은 두 번 히로시마를 방문했었다. 그는 그 소감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히로시마에서 원폭에 관한 전시물 설명을 보았을 때 그 비참을 호소하는 문언·사진은 많았지만 반면 이 참극이 왜 일어났는가에 관한 기술이 하나도 없어 위화감을 느꼈다. 왜 원폭 투하라는 비운에 일본이 휩싸이게 되었는지 그 ‘원인’에 대해 자문·자성하는 문언이 히로시마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나로서는 걱정이 된다.”(니혼게이자이신문, 2010년 12월 31일자)

배반적이라고 강조하는 것은 그리도 참담한 원자력 재앙을 겪고도 나카소네 야스히로-아베 신조로 이어지는 일본의 우익 본류는 핵무기화를 1950년대부터 꾸준히 추진해왔다는 데 있다. 일본 원자력의 아버지는 과학자가 아니라 정치인 나카소네다. 70년 방위청 장관 시절엔 “일본 헌법도 방어용 핵무기는 금지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고 2006년 4월에는 “미·일 안보조약이 깨지는 대변동이 생길 경우에 대비해 핵 문제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까지 했다. 당시 현역 총리 아베는 “핵무장 논의를 봉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가세했다. 아소 다로(현 부총리) 당시 외상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한결같이 핵무기 추진의 발언을 취소한 적이 없다. 지금도 살아 있는 일본 권력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2009년 프라하선언에서 시작된 ‘핵 없는 세계’에 대한 착한 의지, 그리고 ‘비핵 평화’를 위한 그간의 노력은 매우 인상적이다. 그는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서 히로시마 평화공원을 방문해 비핵 평화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개인적’ 동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바마는 미국 대통령이고 미군 최고사령관이다. 아시아의 지정학적 현실을 고려한 히로시마 방문은 케리-기시다 연출로 족하다. 오바마는 일본의 나카소네와 현 총리·부총리에게 과거 발언의 취소 여부와 일본의 이율배반적 핵무기 정책의 진의를 다시 묻고 답을 얻는 절차를 밟은 뒤에야 히로시마 방문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일본 총리가 중국 난징기념관과 한국 독립기념관을 들러 ‘정의의 평화’를 호소할 때라야, 그리고 미국 대통령이 하노이의 전쟁기념관을 방문할 수 있을 때라야 미군 최고사령관은 히로시마를 갈 수 있다. 지금은 아니다.

2016년의 히로시마 방문은 중국·한국·북한을 향한 레알폴리틱스의 연출이 될 수는 있으나 일본의 배반적 원자력 정책이 소멸되지 않은 한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서의 보편적 평화의 연출은 아니다. 오바마는 퇴임 후 히로시마에 들러 두 딸에게 문명사적 과제를 설명하는 것이 더욱 비핵 평화의 호소력이 있을 것이다.

김진현 세계평화포럼이사장·전 과학기술처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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