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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박 대통령, 패배 인정하고 쇄신 의지 밝히라

4·13 총선이 끝나고 나흘이 지나도록 박근혜 대통령은 침묵을 지켜왔다. 그동안 청와대가 내놓은 반응은 “유체이탈 화법의 전형”이란 비난이 쏟아진 정연국 대변인의 두 줄짜리 논평이 전부였다. 오늘 총선 이후 처음 열리는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박 대통령이 어떤 언급을 할지에 국민의 눈과 귀가 집중된 이유다.

이번 총선에서 드러난 민의는 한마디로 ‘박근혜 정부 심판’이었다. 박 대통령은 총선 전날 국무회의 석상에서까지 19대 국회의 무능을 비판하며 ‘국회 심판’을 강도 높게 요구했다. 하지만 국민의 심판을 받은 건 박 대통령과 정부였다. 새누리당이 과반 붕괴에 그치지 않고 원내 1당 자리까지 내준 점, 영남·장년층 등 콘크리트 지지층 상당수가 등을 돌린 점이 이를 입증한다. 지난 3년 박 대통령의 불통과 독주에 민심이 호된 회초리를 내리친 것이다. 청와대 일각에선 새누리당의 부실한 선거전략에 책임을 돌리려 하지만 ‘진박 마케팅’과 유승민 공천파동 등 여당의 핵심 패인들은 청와대의 공천 개입이 자초한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 대통령은 20대 국회에서 167석을 확보한 야 3당의 협조 없이는 어떤 법안도 통과시킬 수 없다. 또 여당은 김무성 대표가 총선 참패 책임을 지고 물러난 데다 후임 지도부도 당내 분란 수습에 바빠 당분간 야당과 협상에 힘을 쓰기 어려울 전망이다.

그런 만큼 박 대통령의 어깨는 무겁다. 무엇보다 스스로 달라지지 않으면 남은 1년10개월 동안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할 우려가 대단히 높다. 박 대통령이 오늘 청와대 수석회의 발언에서 반성과 쇄신을 약속하며 거듭나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무엇보다 총선 패배를 깨끗이 인정하고, 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을 겸허히 받들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국회와 야당만을 탓하며 밀어붙이기로 일관한 국정 스타일을 바꿔 여당과 소통하고 야당과 대화하는 타협의 정치를 하겠다고 약속해야 할 것이다. 야당 대표들과 만남을 정례화해 협치를 정착시키겠다는 다짐도 필요하다. 만약 오늘 수석회의에서 “노동개혁 법안을 꼭 처리해달라”는 식의 발언만 되풀이한다면 돌아선 민심을 되돌릴 기회는 영영 사라질 것이다.

박 대통령은 2004년 한나라당이 탄핵역풍으로 위기에 몰리자 구원투수를 자청해 당 대표를 맡았다. 이어 호화 당사를 팔고 천막 당사를 꾸린 뒤 재창당에 버금가는 개혁으로 민심에 부응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결과 17대 총선에서 50석도 힘들 것이란 예상을 깨고 121석을 얻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서 석패했을 때도 박 대통령은 한 치 망설임 없이 곧바로 승복을 선언해 국민의 박수를 받았다. 민심을 움직인 ‘아름다운 승복’은 5년 뒤 집권의 발판이 됐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이 이런 초심을 되살려 진심으로 쇄신을 약속한다면 민심은 다시 한번 힘을 실어줄 것이다. 야당도 사안에 따라 협조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 될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켜 ‘선거의 여왕’에 오른 박 대통령 특유의 용기와 리더십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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