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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사진관]과거의 흔적과 변화된 현재를 찾아가는 산책 '을지유람'


 
“혁대 버클의 부러진 고리를 붙이려고 이곳을 찾는 분도 있어요.” 서울 중구 세운대림상가 옆 산림동에서 제일공업사를 운영하는 강한준(65)사장이 말한다. 이 지역은 철물관련 소규모 업체가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밀집되어 있는 곳이다. 전자상가와 공구상가가 밀집돼 있어 미사일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농담이 오가는 곳 이기도 하다. 을지로와 청계천 일대에 위치해 있다.
   
서울의 중심가인 이곳이 일종의 산업단지화가 시작된 것은 6.25전쟁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52년 초부터이다. 당시 부산으로 피난했던 서울시청이 복귀해 초토화된 서울 도심부를 구획정리해 재건할 계획을 세운다. 서울시는 1952년 3월 25일자 내무부 고시 제23호로「서울도시계획가로변경, 토지구획정리지구추가 및 계획지구변경」을 결정·고시한다.

이때 계획변경의 주목적은 도심부(종로구·중구)인 제1·제2 중앙지구의 구획정리에 있었다. 또한 일제가 불합리하게 책정한 지역제 변경, 전후복구와 관련된 계획 가로의 일부변경 그리고 1949년 행정구역 확장에 따라 서울시에 편입된 지역을 위한 도시계획 구역 확장도 포함됐다.

제1지구는 종로구에 속하는 관철동과 종로 5·6가, 중구에 속하는 을지로3가, 충무로, 명동, 을지로5가에서 묵정동까지 5개 지역이었다. 6.25전쟁 이후 신속한 주민 복귀와 토지개량, 제반시설을 완비해 상업지역 특성을 살리려 했다. 1952년 10월27일부터 1964년 6월11일까지 시행됐다.                

전후 복구사업이 활성화되면서 집수리에 관련된 업체가 급속하게 들어섰다. 현재 지하철 2호선 을지로3가역에서 신당역까지 이어지는 도로 주변은 건축, 철물, 인쇄, 조명, 의류 등의 업체가 모여 특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을지로 3가에서 4가에 이르는 지역인 입정동과 산림동에 자리 잡은 철물업체는 독특한 분위기를 보여준다. 쇠를 자르고 두드리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리고, 용접과정에서 풍기는 독특한 냄새가 골목을 채운다. 하지만, 영세업체들이 많아 리어카가 겨우 지날 정도로 좁은 골목을 이웃해 모여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건물이 낡고 경영난으로 폐점한 업체가 생기면서 빈 집이 생겨났다. 또 일과 시간 후 직원들이 퇴근하게 되면 적막한 분위기로 변해 자칫 우범지대가 될 우려가 생겼다. 이 지역 관할인 중구청은 지난해 7월부터 이를 해소하기 위해 ‘을지로 디자인 예술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다. 예술인들에게 빈 집을 저렴하게 임대해주고 이곳에서 예술작업을 하거나 전시공간으로 사용하게 했다. 이경숙 중구청 시장경제과 주무관은 이 계획을 통해 “이 지역의 슬럼화를 막고 시장상인과의 협업을 통해 거리활성화를 목표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현재 산림동 6곳에 예술가들이 자리 잡고 을지로 재생을 돕고 있다.    
중구청은 이와 함께 을지로 골목 골목을 탐험하는 ‘을지유람’ 행사도 운영한다. 3월부터 11월까지 운영하며 둘째 넷째 토요일 3시에는 해설사와 함께 90분간 진행한다. 중구청 홈페이지(www.junggu.seoul.kr 02-3396-5085)에서 경제메뉴 밑에 있는 을지투어 신청을 찾아 예약하면 된다.

을지유람은 지하철 을지로3가역 3번 출구 앞에서 시작한다. 골목길을 포함해 총 길이가 약 1.7km이며 천천히 걸어도 30분 정도면 끝 지점인 세운대림상가 앞에 도달하게 된다. 골목길은 흥미진진하다. 특히 철물가게들이 연결된 골목은 놀이공원의 모험 코스와 같다. 공원 산책길 같지는 않지만 꺾이는 골목길 다음에는 무엇이 등장할지 기대감이 든다. 도중에는 성인 한 사람이 지나기에도 부담스러울 정도로 좁은 골목길도 등장한다. 이러한 분위기로 인해 김기덕 감독이 만든 영화 ‘피에타’의 배경이 된 공간이기도 하다.

이곳 철물 상가를 대학의 금속공예과 학생들이 많이 찾는다고 성기종(55) 성광파이프 사장이 말했다. 학기 초에는 담당교수와 함께 신입생들이 이곳 분위기를 보기 위해 찾고 학기 중에는 학년별 과제물 제작을 위해 학생들이 온다고 했다. 또한, 백화점과 같은 유통업체에서 필요한 대형 옷걸이 혹은 디스플레이용 부속품을 만들기 위해 직원들이 온다고 말했다. 완제품을 만들기 위한 모든 작업을 분업을 통해 한 지역에서 할 수 있어 비용이 좀 더 들어도 여기서 만들어 간다. 그리고 소량 제작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골목길 도중에 등장하는 오래된 음식점들을 찾는 것도 을지유람의 묘미 중 하나다. 요즘 유행하는 퓨전 한식이나 외국요리는 없다. 하지만, 이곳에서 40년 이상 대를 이어 장사를 한 노포(老鋪)가 만들어 내는 맛은 오히려 한국적이다. 점심에는 된장찌개, 김치찌개를 팔고 저녁에는 소등심구이를 판매하는 통일집은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요즘 흔하게 보이는 아크릴 간판 하나 없이 페인트로 벽면에 통일집이라고 쓴 글자뿐이다. 이마저도 칠이 벗겨지려 할 정도다. 바로 옆에는 철공소가 있어 여기가 음식점인지 헷갈릴 정도다.

이 집 주인인 문대권(50)씨는 1976년 작고한 아버지 문성렬 씨의 삼 형제 중 막내다. 어머니 임정자(79) 씨가 1969년 개업했고 2012년부터 아들 문 씨가 운영하고 있다. 경기가 안 좋아 이 지역 분들은 고기를 잘 안 찾는다고 했다. 요즘은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젊은이들과 심지어 일본관광객이 일부러 찾아오기도 한다고 문 씨는 전했다.
 
전통 아바이순대 집 앞에서 순댓국 점심을 먹기 위해 줄을 서 기다리던 회사원 김모씨는 음식소개 방송프로그램을 보고 찾아왔다고 했다. 장윤선(35, 회사원)씨도 청계천변을 걸어봤지만, 이렇게 뒷골목에 들어온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철물업체가 있는 깊숙한 골목은 전혀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혹시 가볼 생각은 없느냐고 물었더니 장 씨는 특별한 음식점 혹은 카페가 있으면 가보겠으나 그냥 걷기 위해 가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도시는 변화한다. 사람이 모이면서 기능이 생기고 그 힘이 도시를 변화시킨다. 이 지역도 재개발 사업이 예정되어 있다. 이미 이 지역상인들을 장지동에 새로 지은 가든파이브로 옮기려 했으나 비싼 임대료 등의 문제로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강한준(65) 제일공업사 사장은 이곳의 모든 업체가 가지 않으면 경쟁력이 없어 상권이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는 가까운 곳에서 모든 작업을 마칠 수 있는 것이 강점인데 이것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자신과 같은 영세업자들은 이곳 환경을 약간 손 본 뒤 계속 영업을 하는 것이 더 좋다고 했다. 그리고 중구청에서 시행하는 각종 사업이 성공해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것도 도움이 될 거라고 말했다. 당장 영업과는 연결이 되지는 않지만 이곳이 어떤 곳이고 무엇을 만들고, 살 수 있는지를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면 결국 장사에도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을지로는 과거의 흔적과 변화된 현재가 공존하는 곳이다. 도심 재개발 사업이 진행되면 어느 순간 사라져버릴 모습들이다. 과거를 이어가는 사람들과 변화를 모색하는 사람이 있는 이 공간으로 ‘을지유람’ 산책을 떠나보자.

신인섭 기자 shin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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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운대림상가 옥상에서 바라본 모습, 왼편이 입정동, 오른편이 산림동이다. 약도는 ‘을지유람’이 이뤄지는 골목길을 표시하고 있다. 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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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립서울청소년수련관 앞에 있는 원조녹두. 빈대떡을 전문으로 하고 있다. 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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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골목길에 있지만 뒤에 보이는 문 안쪽에서는 콤프레셔를 만들고 있다. 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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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집과 초록색 페인트가 뿌려진 모습이 회화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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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커피숍이 유행하고 있지만 뒷골목에서는 보온병에 넣어 배달되는 커피가 있다. 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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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하게 카메라를 쳐다보고 있는 골목대장 멍멍이. 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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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다른 골목길 같지만 ‘을지유람’ 코스이다. 왼쪽 벽면에 동그랗게 표시를 붙여 놓았다. 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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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투표로 임시휴일인 13일 오전 11시, 문을 열지 않은 가게들로 인해 한산한 느낌이다. 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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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유람’ 코스 중 갈림길이 나오면 동그란 안내표시판을 따라가면 된다. 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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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성인나이트클럽 광고포스터가 붙어 있는 골목길. 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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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정동 골목길을 나와 청계천로를 따라 걷게 된다. 뒤로 세운청계상가가 보인다. 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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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동 골목길로 들어서는 입구에 보이는 철공소 상점들. 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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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 디자인 예술프로젝트’로 만들어진 예술인 공간, 산림조형의 내·외부 모습. 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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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이 바뀌는 곳에는 ‘을지유람’ 안내 표시판이 설치되어 있다. 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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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프레샤를 판매하는 상점에서 상품을 골목길에 진열해 놓았다. 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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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상인이 상점 뒤편에 있는 창고의 셔터를 열고 있다. 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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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 속에 있는 콤프레샤를 구매자가 보고 있다. 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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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건물, 가려진 햇빛으로 인해 어두운 골목은 독특한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영화 `피에타`의 공간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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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쓰러져가는 집으로 보이지만 안에서는 사람이 작업을 하고 있다. 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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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공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음식점이 골목 안에 자리 잡고 있다. 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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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공소에서 사용하는 각종 철제봉이 진열되어 있다. 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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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소를 운영하는 정한영(70)씨는 이 자리에서 22년째 일하고 있다. 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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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 공간인 ‘퍼블릭 쇼’ 외부 모습. 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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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블릭 쇼’ 내부에 전시되어 있는 각종 도자 공예 제품들. 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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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구이집인 조선옥 옆에 유성철강 등 철공소가 자리 잡고 있다. 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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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개업한 소등심구이집인 통일집. 간판도 없이 옛날 방식대로 페인트로 벽면에 상호를 적어 놓았다. 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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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리 골목에 위치한 한 음식점 처마에 명태를 말리기 위해 널어 놓았다. 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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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안주로 노가리가 나오는 것으로 유명한 노가리 골목의 맥주집들. 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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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철공소 직원이 퇴근하면서 셔터를 내리고 있다. 불 꺼진 철공소 골목은 급격하게 어두워진다. 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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