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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서 8년째 1위… 미용 의료기기로 ‘K뷰티’ 키운다


단칸방살이를 하던 부부에게 악몽이 닥친 건 하루아침이었다. 병원 간호사로 일하던 엄마는 출근 전 아이에게 먹일 우유를 데우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불을 올려놓고 잠시 후 아이의 비명이 방안에 퍼졌다. 갓 걸음마를 배운 아기가 끓는 우유 위로 넘어진 것이었다. 볼에서 귀까지 화상을 입은 아이를 들쳐업고 부모는 응급실로 뛰었다. 중환자실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치료법이란 게 당시로선 실험에 가까운 피부이식 외엔 없었다. 엄마는 수술을 위해 입원했던 병원 옥상에서 자책을 하며 가슴을 쳤다. 왼 볼에 손바닥만 한 흉터가 남게 된 아이는 친구들의 놀림을 받고 자랐다. 그로부터 수십 년 뒤 아이는 피부과 전문의(중앙대 의대 졸업)가 됐고, 연 500만 달러를 수출하는 ‘닥터지(Dr.G)’ 화장품 회사의 경영자로 변신했다.


화장품+의약품 ‘코스메슈티컬’ 개척이달 7일 안건영(51·사진) 고운세상코스메틱 대표를 만났다. 그는 “피부 콤플렉스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모습도 없었을 것”이라며 “운(運)이 좋았다”고 말했다. 슬쩍 얼굴을 돌려 보여줬지만 흉은 마주 앉은 자리에서 유심히 봐도 알아채기 어려울 정도로 옅어져 있었다. 그는 의료업계에선 ‘특이인물’로 통한다. 질환 치료를 하던 피부과를 미용 개념으로 접근해 국내 최초의 피부미용 전문 병원을 만들었다. 병원경영지원회사(MSO)란 프랜차이즈 개념을 도입한 것도 그였다. 처음으로 병원에 콜센터를 만들고, 의학적 성분을 함유한 화장품 ‘코스메슈티컬(cosmeceutical)’ 회사를 차려 화장품 사업에까지 뛰어들었으니 제대로 된 이단아인 셈이다. 코스메슈티컬은 ‘화장품(cosmetics)’과 ‘의약품(pharmaceutical)’의 합성어로 기능성 화장품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아토피·여드름 등에 대한 치료 기능을 더한 제품을 말한다.


처음부터 이 길을 꿈꿨던 건 아니었다. 레지던트 3년차 시절 외환위기로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다. 동료에게 “피부미용 전문 병원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1998년 의기투합한 동료와 성신여대 앞에 ‘고운세상피부과’를 차렸다. 주변에선 “돈도 없는데 망할 짓을 한다” “미쳤다”고 손가락질도 했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대박이 났다. 2시간 대기를 해도 당일 진료가 어려울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2년 만에 강남에 2호점을 열었다.


내친김에 MSO도 세웠다. 분당에까지 병원을 열며 ‘개원 매뉴얼’도 만들게 됐다. 그는 “1~3호점에서 성공한 내용을 추스르니 성공방정식처럼 됐다”고 말했다. 명동·홍익대·청담동 순으로 병원을 확장했다. 예약 손님이 많아지자 그는 아이디어를 냈다. 주차대행 서비스를 하고, 콜센터를 만들었다. 2000년엔 병원 통합 전산프로그램을 갖추고 환자 분석에 들어갔다. 이탈고객이 생기면 왜 병원을 찾지 않는지 분석하도록 하면서 병원은 14호점까지 늘어났다. 파죽지세였다.


만족할 만도 했지만 욕심도 생겨났다. 병원을 찾아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 가운데 적지 않은 경우가 ‘화장품 트러블’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아이디어를 냈다. 피부 특성에 맞는 화장품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2003년 고운세상코스메틱을 세웠다. 병원에서 써볼 심산이었다. 원료 배합은 직접 챙기고, 생산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했다. 그는 “이미 100년 전 피부과학이란 학문을 통해 피부 종류를 16가지로 분류해 놓고 있었는데 화장품 업계는 건성·지성·민감성·복합성의 단순 분류를 하고 있었던 것을 공략했다”고 설명했다.


상하이 법인 세우고 中 온라인 쇼핑도 진출본격적인 화장품 회사의 모양을 갖추게 된 계기는 우연에서 시작됐다. 한 직원이 ‘이상한 손님’ 이야기를 꺼낼 때만 해도 그는 행운이 다가올지 예측하지 못했다. 홍콩에서 오는 한 손님이 병원을 들를 때마다 수백만원어치 화장품을 사간다는 것이었다. 보따리상처럼 물건을 대거 사들여 홍콩에서 팔기 시작한 사람이 생겨났던 것이다. 현지에서 입소문을 타게 되자 2006년 홍콩의 대표적인 미용제품 멀티숍 브랜드 ‘사사(SASA)’에서 사람이 찾아왔다. 비비크림을 사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해 안 대표는 선크림과 비비크림 100만 달러(약 11억원)어치를 팔았다. 행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한류 붐이 일면서 2008년 이후 8년째 사사 매장에 들어간 한국 브랜드 가운데서 1위를 할 정도로 인기몰이를 했다. 중국에선 짝퉁마저 생겨날 정도가 됐다.


하지만 의료계의 시선은 싸늘했다. “의사가 장사꾼이냐”는 것이었다. 병원에서 환자를 부를 때 ‘고객님’이라고 한 것도 배척받는 이유가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화장품 회사에서 횡령·배임 사건이 일어났다. 물건은 잘 팔렸지만 회사엔 돈이 남아 있질 않았다. 껍데기만 남은 회사를 살리기 위해 본업인 피부과 진료보다 화장품 회사 경영에 집중하기로 했다. 4년 남짓 공을 들인 끝에 20개국 수출에 성공하면서 51회 무역의 날에는 ‘500만 달러 수출탑’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 중국 ‘콰이러 타오바오’에 20만 달러어치의 제품도 공급했다. 콰이러 타오바오는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와 방송사인 후난위성TV가 합작해 설립한 온라인 쇼핑몰이다. 이어 중국 상하이에 현지법인을 세우면서 올해는 중국에서만 300억원대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안 대표는 “처음에 돈을 쉽게 벌어 교만해졌던 것 같다”며 “잠깐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더 나은 가치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세계 의료계에서 한국 논문을 자주 인용할 정도로 의료 기술은 높은 수준이지만 산업 차원에서 보면 아직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요즘 ‘미용 의료기기’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여드름 치료기 ‘아그네스’가 대표적이다. 일본에서 영구제모 목적으로 개발한 기술을 전수받아 4년 만에 여드름 치료에 쓸 수 있도록 개선했다. 전자부품연구원(KETI) 스마트뷰티기기 사업화지원센터의 지원을 받아 고주파 정밀 제어 기술을 적용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2013년 기기를 출시하고 지난해엔 미국 식품의약국(FDA) 인증도 받았다. 연간 5000억원 규모에 달하는 국내 코스메슈티컬 시장은 연평균 15% 이상의 성장세를 보이는 분야다. 특히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화장품 시장에서 관심을 끌면서 ‘K뷰티(한국 미용산업)’의 첨병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안 대표는 “의료기기는 인증이 까다롭고 개발에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지만 우리의 기술과 정보기술(IT)을 결합하면 세계시장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자신했다.


 


 


김현예 기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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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