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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에 폴란드로 훌쩍 작곡·성악·악기도 탐닉


“고 1때 ‘햄릿’을 보던 무대에서 지휘하게 되리라곤 꿈도 못 꿨어요. 이제 시작일 뿐이죠. 죽기 전에 한 곡이라도 명연주를 완성할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쁠까요.”


국립국악관현악단(예술감독 임재원)의 올해 첫 정기연주회 ‘무위자연’(4월 22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을 지휘하는 이혜경(55) 지휘자의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다. 1995년 창단 이래 최초로 지휘봉을 잡은 여성이다. 하지만 이번 무대가 특별한 건 그가 여성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방점은 ‘국악과 서양지휘법을 모두 깊이 있게 전공한 지휘자가 이끄는 국악관현악 연주’라는 데 찍힌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에서 지휘법을 강의하고 있는 그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국립국악고와 서울대를 거친 정통 거문고 연주자로 불혹의 나이에 폴란드로 건너가 크라쿠프 국립음악원에서 10여 년간 지휘를 공부하고 국악계로 돌아왔다. 서울시립 국악관현악단에서 10여 년간 거문고를 타다 훌쩍 폴란드로 떠날 결심을 한 건 교회 성가대 지휘를 맡으면서다.


“원래 지휘를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당시 한국은 서양음악 지휘 전공도 없던 시절이었으니 기회가 없었죠. 아마추어로 성가대를 지휘하면서 소리에 대한 고민이 생겼어요. 누군가 답을 주지 않는다면 관현악 창작곡을 더 이상 연주할 수 없겠다 싶었는데, 그럴 만한 선배가 없었죠.”


그의 질문은 ‘국악관현악의 밸런스’에 관한 것이었다. 서양관현악의 정확하게 하나로 모아지는 소리에 비해 예민함이 덜한 국악관현악의 소리가 “시끄럽게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서양음악 하는 사람에게 국악 관현악은 음정이 ‘딕(thick)’하게 들리죠. 특히 화음이 민감한 문제인데, 어느 악기 하나가 조금 올라가도 우린 적당히 넘어가죠. 당시엔 그게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늦은 나이 유학이라 비전도 안 보였지만, 최소한 질문을 해결하고 같은 고민을 하는 후배들에게 징검다리 역할이라도 해야겠다 싶었어요.”


2001년 3년 계획으로 떠났지만 결국 12년간 머물게 됐다. 지휘뿐 아니라 작곡, 성악과 악기까지 틈틈이 배우며 서양음악의 세계를 탐닉한 덕분이다. “공부를 하다 보니 정말 다른 세계가 있더군요. 많은 질문을 해결해 줄 강의들을 골라 듣는데, 음식으로 치면 마치 뷔페 같았다고나 할까. 악기도 목관·현악·금관 등 종류별로 하나씩 배운다는 목표로 피아노·바이올린·플루트·트럼펫에 성악까지를 몇 년씩 배웠어요. 지휘에 반영할 때 접근이 쉬워질 테니까요.”


하지만 서양 지휘법을 공부했다고 국악 지휘를 잘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 자신도 서양음악 지휘자가 연주하는 국악 연주회의 부조화를 경험하기도 했다. 잔향이 남는 서양 악기와 뜯어주는 스타일의 국악기 지휘법은 달라야하기 때문이다.


“이미 서양에서 완성된 지휘에 우리가 뭘 새로 만드는 건 어리석은 짓이죠. 하지만 응용할 때 안 맞는 부분이 많아요. 우리는 선으로 흘러가는데 서양은 각으로 가는 차이도 있고, 서양에 없는 농현과 시김새도 있죠. 악보에 없는 것도 많아요. 음만 주면 연주자가 떨어주고 꺾어주고 흘려주는 걸 다 알아서 하는데, 외국인들이 가장 신기해하는 부분이에요. 지휘도 그에 맞게 변형시켜야 하죠.”


그의 강점은 거문고 연주자로서의 깊이다. 지휘의 길로 들어선 지금도 정악부터 시작해 다시 거문고 전통곡 연구를 계속하며 연주의 길도 놓지 않고 있다. “거문고가 옛날엔 백악지장(百樂之丈)이었죠. 예전에는 고악보를 해독해야 하니까 작곡과 지휘에 필수였어요. 어릴 때 지휘를 하겠다 하면 선생님들이 악기를 먼저 깊이 있게 하라고 하셨죠. 폴란드의 스승도 악기를 계속하라고 했고요. 지휘도 악기의 깊이에 따라 나온다 생각해요.”


22일 국립극장서 ‘무위자연’으로 첫 무대‘무위자연’은 ‘자연과 인간’을 소재로 미국인 작곡가들의 신곡 2곡과 국악칸타타 ‘어부사시사’, 국악관현악 ‘단군신화’ 등 합창과 가곡이 어우러지는 레퍼토리 2곡을 넘나들며 폭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특히 이번에 초연되는 도널드 워맥과 토머스 오즈번의 작품에 관심이 쏠린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는 학구적인 악단이죠. 외국인이 쓴 곡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아요. 서양 작곡가들이 자신의 작품세계를 국악기 재료로 표현한 것이지만, 이미 여러 국악곡을 작곡해서 인정받은 분들이거든요.”


매니어들이 몰리는 클래식 콘서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외된 국악관현악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다. 아름답고 감동적인 관현악곡을 들려주기 위해 풀어야할 숙제가 많지만, 이제 시작인 만큼 희망도 무궁무진하다는 그의 눈빛이 반짝였다.


“국악관현악곡 중에 너무 좋아서 수백 번 듣고 싶은 곡이 있느냐, 제 질문이 그거였어요. 베토벤 교향곡은 하루종일 들으면서도 그 하나 되는 소리에 감동하죠. 몇백 년에 걸쳐 이뤄진 일이에요. 서양에서도 처음엔 노래 반주를 위해 여러 악기가 멜로디를 적어놓고 악기에 맞게 응용하면서 실내악이 생기고, 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에 와서야 관현악 시스템이 잡혔거든요. 그걸 우리는 하루아침에 카피한 게 문젠데, 그걸 해결하고 싶어 지휘를 배웠어요. 왜 그 곡이 아름답게 들리는지 그 논리가 바로 지휘법이니까요. 혼자 풀 수는 없는 과제지만, 감동적인 관현악 연주를 만드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됐으면 합니다.”●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국립국악관현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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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