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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은 부리 달린 공룡 ‘백악기 공원’도 가능

다리 비교 닭의 종아리뼈는 편편하고 짧다. 닭의 배아에서 성숙 유전자를 억제시키자 종아리뼈가 마치 공룡의 종아리처럼 관 모양을 유지하고 발목까지 길게 이어졌다.


지질시대는 크게 고생대-중생대-신생대로 나뉜다. 이 가운데 중생대는 트라이아스기(2억4500만 년 전~)-쥐라기(2억800만 년 전~)-백악기(1억4400만 년 전~ 6600만 년 전)로 나뉜다. 우리는 중생대를 흔히 공룡의 시대라고 부른다. 그 가운데에서도 중간에 끼어 있는 쥐라기는 공룡을 떠올리게 하는 열쇠말 역할을 한다. 이렇게 된 데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쥬라기 공원’이 큰 역할을 했다.


그런데 이 영화에는 몇 가지 오류가 있다. 첫째는 한국어 영화 제목에 표준어인 ‘쥐라기’ 대신 ‘쥬라기’를 쓴 것이다. 이것은 스필버그 감독의 잘못이 아니다. 둘째는 이 영화에 나오는 공룡 가운데 쥐라기 시대의 공룡은 브라키오사우루스나 스테고사우루스 정도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백악기 시대의 공룡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백악기 공원’보다는 ‘쥬라기 공원’이 더 근사하게 들리는 것은 사실이니 그 정도는 애교로 봐 줄 수 있다. 정작 큰 문제인 셋째는 공룡의 피를 빨아먹은 모기의 화석에서 공룡 DNA를 추출해 공룡을 복원한다는 설정이다.


이것은 그냥 넘길 수가 없다. 왜냐하면 불가능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첫째, 유전자는 기껏해야 몇십만 년 정도 보존된다. 수천만 년 이상 보존될 수는 없다. 하지만 좋다. 수천만 년 보존된 유전자가 있다고 치자. 그러면 임신한 암컷 모기만 동물의 피를 빤다는 두 번째 문제에 봉착한다. 수컷이나 임신하지 않은 암컷 모기는 과즙을 주로 먹는 만큼 모기 피는 공룡보다는 식물의 유전자로 오염됐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운 좋게 임신한 암컷 모기로 공룡의 유전자만 있는 것을 구했다고 하자. 그래도 세 번째 관문은 통과하지 못할 것이다. 모기는 기껏해야 8000만 년 전에야 생겨났다. 중생대가 6600만 년 전에 끝나니 모기가 공룡의 피를 빨 수 있는 시기는 중생대 백악기의 마지막 1400만 년에 불과하다. 따라서 브라키오사우루스나 스테고사우루스처럼 쥐라기 시대의 공룡들은 모기에게 물릴래야 물릴 방법이 없는 것이다.


영화 ‘쥬라기 공원’의 아이디어가 쓸모없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공룡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이다.

발 비교 대부분의 현생 조류는 사람의 엄지처럼 마주보는 엄지발가락이 있어서 횃대를 붙잡을 수도 있고 먹이를 낚아챌 수도 있다. 하지만 공룡에게는 마주보는 발가락이 없다.


6600만 년 전 지름 10㎞짜리 거대한 소행성이 지구를 강타할 때, 그 충격으로 수많은 종들이 지구에서 사라졌다. 육상에서는 고양이보다 커다란 동물은 죄다 사라졌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이 대멸종의 와중에도 일군의 공룡들이 살아남았다. 그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였다. 작은 몸집이 바로 그것이다. 그 공룡들을 우리는 ‘새’라고 부른다.


새가 공룡에서 진화했다는 걸 말하는 게 아니다. 새는 그냥 공룡이라고 현대 공룡학자들은 한결같이 말하고 있다. 공룡학자들이 이렇게 주장하는 데는 공통적인 해부학적 특징을 화석에서 찾아냈기 때문이다. 공룡학자들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발생생물학자들과 손을 잡고 발생학적인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언뜻 새가 공룡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우선 새는 부리가 있고 공룡에게는 주둥이가 있지 않은가. 새가 공룡이라고 한다면, 새의 주둥이가 언제부터인가 부리로 바뀌었을 것이고, 그 흔적은 유전자에 남아 있을 것이다.


플라밍고에서 펠리컨에 이르기까지 새의 부리는 매우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연구자들은 일반적인 척추동물의 주둥이에서 어떻게 새의 부리가 생겨났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닭을 선택했다. 굳이 닭을 선택한 이유는 구하기 쉽고 싸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닭의 배아에서 부리가 발생하는 과정에 관여하는 유전자들을 샅샅이 훑은 끝에 얼굴 발생과 관련된 유전자 무더기 하나를 찾아냈다. 이것은 부리가 없는 생명체에는 없는 것이다. 닭의 배아에서 이 유전자 무더기를 억제시키자 놀랍게도 부리 대신 공룡의 주둥이가 생겼다. 뿐만 아니다. 작고 털이 난 공룡인 벨로키랍토르의 것과 같은 입천장(구개·口蓋)도 생겼다.


주둥이에서 부리로의 전환은 새가 진화하는 과정에 발생했다. 지금부터 약 1억 년 전으로 백악기 중기의 일이다.


 

닭의 부리로 공룡 주둥이를 만들 수 있다. 왼쪽부터 정상적인 닭 배아, 변형된 닭 배아, 악어 배아의 머리뼈.


1억년 전에 주둥이가 부리로 바뀌어새가 공룡이라고 하지만 발의 모습은 완전히 다르다. 대부분의 현생 조류는 사람의 엄지손가락처럼 다른 발가락과 마주보는 발가락이 발 뒤쪽에 있다. 이 발가락을 이용해 횃대에 올라설 수 있고 먹잇감을 낚아챌 수도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티라노사우루스나 알로사우루스 같은 수각류 공룡의 경우에는 발 뒤쪽에 있는 발가락이 다른 발가락과 마주보지 않으며 짧아서 땅에 닿지도 않는다. 새의 발가락보다는 오히려 개와 고양이의 며느리발톱과 닮았다.


연구자들은 새의 배아를 조작해서 발의 모양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알 속에서 배아가 움직이는 것을 막았더니 닭에게 공룡의 발이 생긴 것이다. 닭발을 공룡 발로 바꾸는 것보다 그 과정을 이해하는 게 더 힘들었다. 알고 보니 알 속에서 배아가 움직이면 성숙 과정에 있는 발허리뼈(중족골·中足骨)가 뒤틀리면서 마주보는 발가락이 생기는 것이었다. 약물 처리로 닭의 배아를 마비시켜서 알 속에서 움직이지 못하게 하자 뼈가 뒤틀리지 않으면서 공룡 발이 자라났다. 닭의 배아를 조작해서 공룡의 발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사실은 새의 진화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공했다.


 

다양한 형태를 가진 조류의 부리. 부리 발생과 관련된 유전자를 억제시키면 부리 대신 공룡의 주둥이가 생긴다. 1억년 전에 새들이 진화하면서 부리가 생긴 것이다.


모든 육상 척추동물에게는 무릎과 발목 사이에 두 개의 기다란 뼈가 있다. 바깥쪽의 종아리뼈(비골·?骨·fibula)와 안쪽의 정강이뼈(경골·脛骨·tibia)가 그것이다. 닭발을 공룡 발로 만드는 데 성공한 과학자들은 이제 다리로 관심을 돌렸다. 공룡의 종아리뼈는 관(管) 형태로 발목까지 이어진다. 그런데 새의 종아리뼈는 얇고 편편한 모양이며 길이도 짧아서 발목까지 닿지 않는다. 새의 종아리뼈도 배아 발생 단계를 보면 처음에는 관 형태였다가 편편한 형태로 변한다. 공룡의 종아리뼈가 새의 종아리뼈로 변하는 과정을 배아에서는 관찰할 수 있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인도고슴도치(Indian Hedgehog)’라고 하는 성숙 유전자를 억제시켰다. 성숙이 억제된 닭의 종아리뼈는 공룡처럼 관 모양을 유지하고 발목까지 길게 연결됐다. 공룡 같은 다리를 가진 닭의 경우에 정강이뼈는 정상보다 훨씬 짧아졌다. 이것은 화석 기록에 나오는 진화의 패턴과 일치한다.


 


화석에 남아있는 멜라노좀 구조로 색깔 추정 새에게는 부리만큼이나 중요한 특징이 있는데 깃털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공룡들에게도 털과 깃털이 있었다는 사실은 상식이 됐다.


그런데 공룡의 깃털 색깔은 어떻게 알까. 동물의 피부와 깃털의 색깔은 멜라닌 색소에 따라 달라진다. 멜라닌 색소는 멜라닌 세포 안에 있는 멜라노좀이라고 하는 작은 자루 모양의 세포 소기관에서 만들어진다. 멜라닌 색소는 화석에 남지 않지만 멜나노좀 구조는 화석에 남아 있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멜라닌 색소에 따라서 멜라노좀의 구조가 다르다. 따라서 색깔은 남아있지 않지만 색깔을 알 수 있다.


멜라노좀과 관련된 연구는 1억5000만 년 전에 살았던 작은 육식 공룡인 마니랍토란(Maniraptoran)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마니랍토란은 새의 특징을 많이 가지고 있다. 멜라노좀의 모양과 크기의 다양성은 현생 조류와 공통점이 많다.


과학자들은 공룡의 깃털이 다양한 색을 얻은 다음에야 새가 진화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깃털의 색소들이 공룡의 선조로 하여금 날 준비를 시켰다는 뜻이다. 색소와 관련된 화학 물질이 새들의 물질대사를 바꿔서 비행할 때 공기 중에 오래 머물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닭은 공룡이다. 따라서 긴 종아리를 만드는 유전자, 마주보는 발가락을 만드는 유전자가 있다. 아마 꼬리가 길어지는 유전자와 이빨을 만드는 유전자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 닭의 배아 발생과정을 보면 이빨이 등장했다가 사라지고, 손가락이 생겼다가 융합되고, 길었던 꼬리가 짧아지는 과정을 관찰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닭으로 공룡을 만들어서 ‘백악기 공원’을 실현시킬 수 있을까. 닭에서 공룡의 특징들을 발현시켰던 연구자들은 아직 백악기 공원에 대한 계획이 없으며 연구윤리위원회에 실험 승인을 요청할 생각도 없다. 그들은 주둥이가 달리고 종아리가 길고 마주보는 발가락이 없는 닭을 부화시킬 계획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만약 이런 닭들이 부화된다면 정상적으로 성장해 ‘공룡’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것은 그다지 극단적이거나 파격적인 변형이 아니다. 양계업자들이 좁은 틈에서 단숨에 자라는 새로운 닭을 만들어내는 것이 훨씬 더 이상한 일이다. 닭을 공룡으로 만드는 일은 오히려 정상적인 일에 가깝다. 다만 연구윤리적인 면에서 신중할 필요가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미 엄청난 공룡을 먹고 있다. 한국 사람이 1년에 먹어치우는 치킨만 10억 마리가 넘는다. 1인당 평균 20마리의 공룡을 안주와 간식으로 먹고 있는 셈이다.


 


이정모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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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