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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소리나만 들리지 않는 건가

지천명(知天命)



지식 대백과사전 공자가 나이 쉰에 천명(天命), 즉 하늘의 명령을 알았다고 한데서 비롯한 말. 하늘의 이치나 원리, 또는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가치를 깨닫는 50세를 뜻한다.



이윤정의 공감 대백과 사전

그 여자의 사전 내년이면 닥칠 나이. 어쩐지 공포스럽게 다가오는 나이. 이 말이 비유하는 숫자는 몸으로 확신할 수 있지만 ‘하늘의 명령’ 부분에서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말. 주변 남자의 경우 이때를 계기로 진짜 멋있어 지느냐 아니면 이전의 지식들을 다 무너뜨리고 격언과 잔소리로 가득 찬 그저 그런 노년으로 접어드느냐의 여부를 결정짓는, 분기점이 되는 나이.



 



50대 이후 부쩍 격언과 명언의 인용횟수가 늘어나던 A 선배는 최근 들어 급기야 종교에 귀의한 것 같다. “세상 모든 것은 손해가 이익이 되기도 하고 이익이 손해가 되기도 한다” “제 힘만 믿고 설치는 자는 제 명대로 살지 못한다” 같은 카톡 대화와 술자리 잔소리가 이제 세속의 말씀에서 하늘의 말씀으로 바뀌긴 했지만, 솔직히 무슨 말씀을 인용해도 그리 귀담아 듣게 되진 않는다. 젊었을 땐 냉철하고 자기 주관이 뚜렷했던 저분이 왜 저렇게 남의 말만 읊는 걸까. 아마도 선배는 ‘지천명’의 나이에 걸맞게 그때부터 하늘의 명령을 끊임없이 찾다 보니 결국 하늘의 말씀에까지 이르게 된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부럽기는 하다. ‘지천명’이란 말은 도무지 내게는 요령부득이기 때문이다. ‘약관’의 나이 때 유달리 자주 아팠던 나는 이 말이 청춘은 약한 몸이란 뜻인가 보다 라고 이해했고, ‘이립’의 나이 때는 솔직히 무슨 뜻인지 잘 와닿지 않아 그냥 대충 넘겼고, ‘불혹’의 나이 때는 흔들릴 주변의 유혹이 너무 없어 아쉬워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천명의 나이를 눈앞에 두게 되자, 갑자기 이 뜻이 확연하게 몰려오면서 나를 초조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늘의 이치나 명령을 깨닫는 나이라는데 하늘의 이치는커녕 세상사는 기본 요령도 몰라서 남들보다 돈도 못 벌고 출세도 못하고 헤매기만 하니 말이다. 나는 ‘커서’ 뭐가 되려고 아직도 이러는 걸까.



중년을 방황하던 나는 하늘이 너무 멀리 있어 내 얘기가 들리지 않나 싶어 몇 년 전 해발 수천 미터의 히말라야 산맥까지 올라가보기도 했다. 고요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귀를 쫑긋거렸지만 거기에는 마치 하느님이 수만 개의 눈만 끔뻑이듯 쏟아질 것 같은 별빛뿐이었다. 그런가 하면 밤중에 경건하게 무릎 꿇고 눈 감고 하늘에 몇 번 물어보다 화를 내기도 했다. 하늘님. 계시다면 좀 이제 들려주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왜 안 들려주시는 겁니까. 천명 그거요.



잠 안 올 땐 주 기도문을 외우고 등산할 때 대웅전마다 들러 절하는 사이비 종교 신자라서 정확히 어떤 신이 목소리를 내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바로 그때 뭔가 들려오는 듯 했다. ‘바보야, 백세시대가 아니더냐.’



아하, 그래. 그건 ‘평생 철들지 않는’ 내 잘못이 아니었다. 60~70세 시대라면 지천명이 의미가 있지만 백세시대에는 기껏 절반밖에 안 산 게 아닌가. 그러니 아직 이런 말을 해도 된다. 나는 커서 뭐가 될까. 50세에 하늘에서 천명을 들었느냐 물으시거든, 아직은 인생 절반밖에 안 살아서 안 들린다 전해라~.



그러니 다시 생각해보면 50세는 또 새롭게 변신하는 후반부로 전환할 수 있는 나이이기도 하다. 나와 내 주변을 둘러본다. 우리는 이제 ‘1만 시간의 법칙’을 두어 번은 깨달았을 정도로 뭔가를 많이 아는 나이다. 이미 책 한 권은 쓸 지식과 인생 이야기가 쌓여있다. 그럼에도 인생 선배들을 보면 확실히 이때를 기점으로 다른 수준으로 멋있어지는 선배와 여태 있던 멋있음을 저금처럼 까먹고만 있는 선배들이 있다.



천명까지는 어림없지만 대략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나만의 기준 정도는 서 있다. “내가 다 해봐서 아는데”라며 냉소를 날리지 않는 사람. 페이스북에서부터 그림 그리기까지 늘 현재 진행형으로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시도하는 사람. 여전히 패션에 관심을 가지며, ‘퍼온 웃긴 글’ 말고 자신만의 유머 감각을 보일 줄 아는 사람. 남의 말보다는 ‘자기만의 언어’로 말할 줄 아는 사람. 자기만의 언어로 잔소리만 하지는 않는 사람. 선배님 예전 같은 독설이라도 좋으니 선배님만의 말과 시선을 보여주세요. ●



 



 



이윤정 ?칼럼니스트. 사소하고 소심한 잡념에 시달리며 중년의 나이에도 영원히 철들지 않을 것 같아 고민인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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