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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경성의 봄, 우리는 꽃이 되어 노래하리"…'해어화'의 한효주, 천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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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전소윤(STUDIO 706)]

두 여인이 있다. 다정다감한 소율과 수줍음 많은 연희는 1940년대 경성, 권번(券番·일제강점기 기생 조합 및 교육 기관)에서 자랐다. 함께 노래하고 웃음을 나누던 둘은 서로에게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친구였다. 작곡가 윤우(유연석)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해어화’(4월 13일 개봉, 박흥식 감독)는 이들의 애정과 질투와 욕망을 그린 이야기다. ‘말을 알아듣는 꽃(解語花)’이라는 뜻의 제목은 기생을 일컫는 말. 소율과 연희를 각각 연기한 한효주(29)와 천우희(29)를 만났다. 동갑내기 두 여배우는 꽃처럼 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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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전소윤(STUDIO 706)]

한효주
내 안의 다른 색깔 지금부터 보여 줄게요
영화 속 한효주를 떠올려 보자. ‘오직 그대만’(2011, 송일곤 감독) ‘반창꼬’(2012, 정기훈 감독) ‘쎄시봉’(2015, 김현석 감독) ‘뷰티 인사이드’(2015, 백감독) 등에서 한효주는 언제나 아낌없이 사랑을 ‘받는’ 여자였다. “의도했던 건 아닌데 지금까지 연기한 캐릭터들이 대부분 예쁘고 착했어요. 사랑도 많이 받았죠. 그래서 이번에는 조금 다른 캐릭터에 욕심냈어요.” 변화를 꿈꾸던 시점에 ‘해어화’ 시나리오를 만났다는 그는 이번 영화를 “캐릭터 하나만 생각하고 선택한, 특이한 영화”라고 했다. “욕심나는 캐릭터였어요. 지금까지와 다른 연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극 중에서 사랑을 받고 안 받고, 착하고 착하지 않고는 부수적인 문제였어요. 과연 내가 지금까지와 다른 걸 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시대적 배경과 함께 기생이란 역할을 통해 관객들에게 색다른 모습으로 다가갈 수 있느냐가 제일 중요했어요.”

‘해어화’에서 한효주는, 마지막 남은 경성 제일의 기생 학교 ‘대성권번’에서 최고의 예인으로 불리는 소율을 연기한다. 최고의 가수를 꿈꾸지만, 둘도 없는 친구 연희와 경쟁하며 안타까운 선택을 하게 되는 인물이다. 그는 소율에 대해 “마주하고 싶지 않은 질투·욕망·회한의 감정까지도 모조리 드러내고야 마는 연약한 아이”라고 말했다. “소율은 지금까지 연기한 캐릭터와 확실히 달라요. 그래서 연민이 느껴져요. 이 아이가 짊어질 후회의 무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니까요. 정말 안타까워요.” 그동안 감정을 안으로 삭이는 역할을 자주 맡아 왔기에 직접적인 감정 표출이 쉽지 않았을 터. 그는 소율의 감정이 공감되지 않을 때마다 “있는 그대로의 소율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촬영하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어요. 스스로도 몰랐던 표정이 나오더라고요. 나에게 저런 얼굴이 있었단 말이야? 어느 순간 저도 모르게 진짜 소율이 된 거죠.”

“‘일각이’라는 정가를 좋아해요.” 영화에서 소율은 탁월한 창법으로 어린 나이에도 정가(正歌·가곡, 가사, 시조를 아우르는 전통 성악의 한 갈래)의 명인으로 불린다. 생소한 장르인 정가를 직접 불러야 했던 한효주는 촬영 3개월 전부터 노래 교육을 받았다. “처음 접해 보는 것이라 걱정이 많았는데, 배울수록 색다른 매력이 있더라고요. 우리나라에 이토록 아름다운 노래가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어요.” 시조에 음을 붙인 정가를 배우기 위해 “고등학교 졸업 이후 처음으로 시조 공부도 다시 했다”며 가장 좋아한다는 ‘일각이’의 한 소절을 되뇌었다. “‘일각이 삼추라 하니 열흘이면 몇 삼추요.’ 일각(一刻)은 짧은 순간을 뜻하는 단어예요. 삼추(三秋)는 긴 세월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고요. 일각도 긴데 열흘이면 도대체 얼마나 긴 시간이냐는 거죠. 떠나간 이를 그리워하는 마음에 대한 표현이 정말 재미있지 않나요.” 노래 연습뿐 아니라 기생에 관한 자료를 수없이 찾아본 그는 “당시 기생들의 눈썹 모양을 영화에 그대로 가져오자”고 먼저 제안하기도 했다. “기생들의 눈썹이 굉장히 특이했어요. 아주 얇고 길게 그리더라고요. 딱 그 시대를 반영하는 메이크업인 것 같아서 제 눈썹도 똑같이 다듬었어요. 얇은 눈썹이 생각보다 예쁘더라고요(웃음).”

올해 한국 나이로 서른 살이 된 한효주. 나이 이야기가 나오자 “지난해 12월에 그렇게 술이 당겼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예전엔 나이를 먹는 것이 아쉽기보다 오히려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막상 앞자리 숫자가 바뀐다고 생각하니까 착잡하더라고요. 지금껏 느껴 보지 못한 색다른 감정을 경험했다고 할까요. 앞으로 나이가 스물아홉 살인 역할을 맡으면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시트콤·로맨틱 코미디·사극 등 다양한 장르에서 인정받은 그는 부인하기 힘든 충무로 대표 여배우다. “자꾸만 이름 앞에 부담스러운 수식어가 붙는다”며 쑥스러워하면서도 “더 잘하고 싶은” 마음과 책임감을 드러내는 한효주에게 물었다. 배우 한효주가 보낸 20대 시절을 되돌아보면 만족스럽냐고. 그는 망설임 없이 “후회도 미련도 없다”고 답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모든 열정을 쏟아 부은 게 연기밖에 없어요. 감사하게도 가진 것에 비해 좋은 기회가 많이 생겼고, 작품 운도 좋았어요. 인복도 많았고요. 아낌없이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미련도 아쉬움도 없어요.” 그렇지만 배우가 아닌 한효주의 20대에는 아쉬운 점이 많다고 털어놓았다. “점점 어리광이 늘고 있어요. 꽤 어릴 때부터 배우로 일했기 때문에 책임감이 컸거든요. 그러다 보니 늘 긴장하면서 잘하려고만 했던 것 같아요. 왜 그때 조금 더 어리광 부리지 못했을까요. 지금부터라도 더 나이 들기 전에 응석을 부려야겠다는 객기가 점점 생기네요.”

한효주는 인터뷰 말미에 “그땐 왜 몰랐을까요, 그렇게 좋은 걸”이라는 ‘해어화’의 대사를 읊으며 “이 말이 마음에 무척 와 닿았다”고 말했다. “누구나 그렇잖아요. 당시엔 좋은 줄 모르고 지나친 것들이 나중에야 비로소 소중했다는 걸 깨닫죠. 20대를 되돌아보며 이 대사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앞으로 배우로서 여자로서 저에게 다가오는 모든 순간을 후회 없이 즐기며 감사히 보내려고요.”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배우에게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앞으로 그가 우리에게 보여 줄 모습은 진정 후회 없는 순간일 테니. 한효주를 기대해야 할 이유가 또 하나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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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전소윤(STUDIO 706)]

천우희
예쁘지 않아도 좋아요 연기를 위해서라면
호흡을 가다듬으며 천우희는 “사실 ‘해어화’ 시나리오를 처음 받고 나서는 출연을 거절했었다”고 말했다. “뭐랄까…”라며 잠깐 뜸을 들인 후였다. “너무 달려온 상태였기 때문에 잠시 숨을 고르고 싶었거든요.” 지금의 천우희를 만든 ‘한공주’(2014, 이수진 감독) 이후 ‘카트’(2014, 부지영 감독) ‘손님’(2015, 김광태 감독) 등으로 쉼 없이 달리던 때였다.

그러나 1940년대 경성의 기생 학교 권번을 배경으로 다룬 이야기를 언제 또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그를 붙들었다. 다시 살핀 ‘해어화’ 속 연희는 그간 천우희가 연기해 온 인물들처럼 쉽지 않은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단번에 가닿을 수 없는 모호한 구석이 있었다. “연희가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긴 했지만, 권번에는 우연하게 흘러들어 왔어요. 재능이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살다가 작곡가 윤우를 만나면서 처음으로 하고 싶은 게 생기죠. 모든 것이 우연으로 시작된달까. 대체 이 친구의 마음은 뭘까, 이해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연희가 우희에게로 왔다.

가난한 아버지가 팔다시피 보내 권번에 들어온 연희는, 따뜻하고 재능 넘치는 소율을 만나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그러나 작곡가 윤우와 얽히며 그가 만든 노래 ‘조선의 마음’을 사이에 두고 둘의 관계는 삐거덕대기 시작한다. 뜨거운 우정이 걷잡을 수 없이 변해 가는 것을 두고 천우희는 “처음에는 이해하기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이 친구에게 소율은 세상에 하나뿐인 동무잖아요, 믿을 수 있는 단 한 사람. 그런 사람과 서로 등을 보일 수 있을까요? 저는 그렇게 해 본 적이 전혀 없어서 너무 어려웠어요.”

외려 끔찍한 폭력의 상처를 안은 ‘한공주’ 속 고등학생 공주나 무당 노릇을 해야 하는 ‘손님’의 젊은 과부 미숙 역이 더 어려웠을 것 같다고 하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물론 지금까지 연기한 인물들의 감정 중 직접 경험했던 것은 극히 일부예요. 늘 온갖 상상을 총동원해서 그 감정을 헤아릴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연희의 그것은 오히려 현실에서 만나기 쉬운 감정이었어요. 질투와 욕망 때문에 어그러진 관계는 요즘 인터넷만 들여다봐도 널려 있잖아요. 어쩌면 그래서 더 어려웠던 것 같아요. 일상에서 누구나 느낄 수 있는 평범한 감정을 표현하는 일이라서.”

고민 끝에 천우희가 찾아낸 길은 연희의 노래에 있었다. 딱히 가수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었지만, 한으로 얼룩진 삶에서 유일하게 위로가 되어 주던 그 노래 말이다. “물론 소율도 소중하지만 내면에 응어리가 많은 연희에게 예술적 영감이 찾아왔다면, 그렇다면 욕심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노래 연습은 천우희에게 중요한 숙제가 됐다.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도 있었지만 연희를 더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스스로 해내고 싶었다. 하루에 다섯 시간씩 4개월간 내리 연습했다.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과 같은 그 시절 유행가나 생전 듣지 않던 트로트도 닳도록 들었다. 그렇게 1940년대 유행가와 현재 감성이 조금씩 섞여 연희의 ‘조선의 마음’으로 탄생했다.

하지만 노래를 잘하는 것보다 어려운 부분은 따로 있었다. 가사에 감정을 이입하는 일이었다. “음…, 연기할 때는 제 감정에 취하지 않거든요. 제가 맡은 인물을 객관적으로 보려고 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노래는 그렇지 않더라고요. 자기 감정에 취해 불러야만 관객이 함께 느낄 수 있는데, 그걸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어요.”

자신이 연기하는 인물에 거리를 두는 것, 그게 천우희가 자신의 캐릭터를 대하는 방식일까. 그는 연희를 지칭할 때마다 꼭 “이 친구”라는 표현을 쓰며 일정한 거리를 뒀다. 세고 어두운 캐릭터를 주로 연기해 오며 매번 찬사를 받았음에도, 천우희가 하나의 이미지나 강렬한 장면에 갇혀 있지 않은 건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일정 부분, 스스로 “예쁘지는 않지만 성형할 생각은 없다”고 말하는 외모 덕도 있다. 한눈에 확 띄는 화려한 외모는 아니지만 무엇이든 담아낼 수 있을 것 같은, 보면 볼수록 말갛고 고운 얼굴. “조금 모나게 나오고 안 예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역할을 제대로 표현하기에는 충분히 매력적인 얼굴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배우 얼굴로는 딱 좋지 않나요? 하하.”

천우희는 신중하게 작품을 선택하지만, 일단 빠져들면 누구보다 진중하게 인물에 접근하는 배우다. 그 기운은 인터뷰할 때도 느껴졌다. 처음에는 “뭐랄까…”라며 말을 고르고 골랐으나, 질문과 대답이 수다로 변한 순간부터는 거침없었다. 그는 인터뷰가 끝난 다음날 “어제 제대로 말하지 못한 답이 있다”며 답변을 더해 오기도 했다. “연희와 저의 닮은 점을 물으셨잖아요. 없는 것 같았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있어요. 현실에 굴복하지 않는 마음을 가진 점, 그리고 자존심과 기개가 있다는 점. 그런 점들이 닮은 것 같아요.” 아마 천우희를 여기까지 끌고 온 힘은 이런 것일 게다.

“오감 중 하나를 만족시키든, 눈물을 왈칵 쏟게 해 감정을 해소시키든, 내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무엇이든 하나라도 주고 싶다”는 그는 ‘해어화’에 이어 5월경 개봉할 ‘곡성’(나홍진 감독)에도 출연한다. 황정민, 곽도원 등 쟁쟁한 남자 배우들 사이에서 기가 죽기는커녕 “엄청나게 기 세고 에너지 넘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내 안에 들끓는 무언가를 마구 꺼내 쓸 수 있어 무척 즐거운 현장이었다”고 했다. 바야흐로 천우희의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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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전소윤(STUDIO 706)]


이지영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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