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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소야대 3당 체제’ 만든 표심 듣다] “텃밭 허물어지는 건 좋은 일, 지금이 삼국시대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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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같은 결과였다. 집권 여당의 참패, 20년 만의 3당 체제, 16년 만의 여소야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총선 성적표를 받아들고 잠시 멍했다. 이번 총선 드라마의 주인공은 국민이었구나…. 혼잣말을 중얼거리다 곧장 운전대를 잡으러 갔다. 기자가 직접 택시를 몰며 민심을 청취하는 중앙일보 보이스택싱(voice taxing)이 긴급 운행에 나설 타이밍이었다.
 
 

이번 총선 결과에 담긴 국민 표심의 진의(眞意)는 무엇일까. 충격적인 총선 결과가 나온 14일 보이스택싱이 서울 시내 곳곳을 돌며 시민들을 태웠다. 시민들이 들려준 민심은 준엄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잘해서 찍어준 게 아니다. 무능하고 오만한 정부와 집권여당에 대한 심판이었다.” 이날 정오부터 6시간 동안 7명의 승객이 보이스택싱에 올랐다.
 
# 명동역 → 왕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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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를 넘긴 시각. 빈 택시로 손님을 찾아 헤매는데 지하철 4호선 명동역에서 김대찬(28)씨가 손을 번쩍 들었다. 김씨는 동대문에서 2년째 도매 의류매장을 운영하는 ‘사장님’이다. 총선 결과에 대해 물었다.

“(새누리당 참패는) 그럴만한 결과죠. 저는 지금까지 모든 선거에서 새누리당(한나라당 포함)을 찍었습니다. 하지만 선거 때마다 동대문 상권 살리겠다더니 아직도 달라진 게 없어요.”

김씨는 2014년 창업 후 2년간 계속 상황이 나빠진다고 했다. 내수가 살아나지 않은 상황에서 중국인 소매상이 그나마 매출을 올려준다고 한다.

“20대 국회가 죽어가는 경제부터 살려줬으면 해요. 새누리당도 이젠 정신 차려야죠.”
 
# 서초동 → 화양사거리 → 면목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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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시20분쯤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을 지날 때 장관호(53)씨가 보이스택싱을 불러 세웠다. 승차하자마자 택시기사에 대한 불만을 털어놨다. 가까운 길을 추천했는데도 먼 길로 돌아가려 한 기사와 분쟁이 있었다고 했다. 조심스럽게 본론을 꺼냈다.

“총선 결과에 대한 민심을 듣기 위해 나온 중앙일보 보이스택싱입니다. 인터뷰 가능할까요. 목적지까지 원하시는 길로 모셔드릴게요. 물론 공짜로요.”
 
개표 결과 어떻게 평가하나요.
“새누리당은 자기 컵에 있던 물을 자기 발에 쏟아부은 격이에요. 공천 때 너무 편향적으로 하니까 이런 결과가 나왔죠. 더민주가 잘했다기보다는 새누리당이 너무 못해서 이렇게 된 겁니다.”
3당 체제가 됐습니다.
“진작에 됐어야 하지 않았나요. 적당한 크기의 제3당이 만들어지면서 기득권을 흔들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고 봅니다. 거대 양당을 견제하면서 대화와 타협으로 국정을 이끌어 나가길 기대합니다.”
현 정부는 책임이 없나요.
“인사 문제가 컸어요. 김기춘 전 비서실장에게만 전권을 준 건 아니라고 봅니다. 안보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좋은 모습 보여줬는데 아쉽죠. 그런데 옛날 왕도정치 시대도 아니고 민주정치 시대에 그런 식으로 일방적 인사를 하니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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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씨를 화양사거리에 내려주니 오후 2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어린이대공원을 지나 군자교 사거리 인근에서 김경옥(65)씨가 택시에 올랐다. 병원에 갔다가 자신이 운영하는 마트에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목적지인 면목2동으로 향하면서 김씨는 이번 총선에 대해 “불안한 결과가 나왔다”고 여러 번 말했다.

“이번에 국회의원이 많이 바뀌어서 솔직히 불안해요. (3당 체제로) 급격한 변화가 생기면 불편한 일이 많이 생기지 않을까요. 국회가 대통령이 일을 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하는데….”
 
# 강남역 → 포이사거리

오후 3시 꽉 막힌 강남역 인근에서 최모(45)씨가 승차했다. 최씨는 강남에 사는 전통적인 새누리당 지지자다.
 
더민주가 많은 의석을 얻었습니다.
“새누리당도 잘못했지만 더민주가 잘한 건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아무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정부가 일하는 데 사사건건 반대만 해왔잖아요. 일할 기회조차 주지 않아놓고 (새누리당) 잘못했다고 평가하는 건 부당하죠.”
강남에서도 더민주 소속 의원이 나왔습니다.
“정말 놀랐어요. 테남(테헤란로 남쪽)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얘기가 많았는데 결국 그렇게 되네요.”
지역주의도 일부 깨졌습니다.
"텃밭이 허물어지는 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이 삼국시대도 아닌데, 고향 출신 뽑는다는 인식은 사라져야지요.”
 
# 방배동 → 내방역 → 사당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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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순환로를 타고 사당역 방면으로 가던 오후 4시쯤 두 중학생 딸과 함께 원유민(44)씨가 보이스택싱에 승차했다. 학교수업을 마치고 학원에 데려가는 중이라고 했다. 원씨는 엄마 입장에서 이번 총선 결과를 풀이했다.

“당도 당이지만 이제는 후보의 자질이 더 중요해진 것 같아요. 호남에서도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되고 영남에서도 더민주 후보가 이겼잖아요. 우리 아이들에게 지역주의라는 유물을 물려주지 않아도 되겠다 싶어 다행입니다.”
 
국민의당이 약진했는데요.
“생각보다는 많은 의석 차지했지만 그렇게 좋게 평가해야 하나 싶어요. 안철수 대표는 지금까지 비판만 하셨잖아요. 어떻게 잘하겠다가 없었는데 앞으로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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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씨 가족이 내리고 난 직후 임건우(38)씨가 바로 승차했다. 임씨는 현재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전통적 야당 지지자인 그는 이번 선거 결과에 깜짝 놀랐다고 했다.

“더민주가 이렇게 많은 의석을 얻을 줄은 몰랐어요. 하지만 보수가 정권을 잡은 지난 10년간 세상이 나아진 게 없잖아요. 보수 정당이 매번 똑같이 반성만 하고 바뀌지는 않았으니까 (야당 압승이) 가능했겠죠.”
 
# 사당역 → 방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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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6시쯤 까치고개 인근에서 마지막 손님이 탑승했다. 자영업자인 이명진(55)씨였다. 이씨는 이번 선거 결과를 ‘반사이익’이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어느 당이든 좋아서 찍은 사람이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야당이 결과 좋았다고 하지만 어부지리, 반사이익이죠. 국민의 지혜로운 선택을 제발 이번엔 제대로 알아듣길 바랍니다.”
 
택시기사 “자만하는 큰아들 재산 빼앗아 둘째·셋째에게 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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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기사 노순만씨는 총선 결과에 대한 소감을 묻자 “우리 국민이 대단하다”고 말했다.

기사식당은 생생한 민심이 모여드는 곳이다. 택시기사와 식당 주인, 일반 손님들이 뒤섞여 여론을 형성한다. 14일 보이스택싱 운행을 마치고 기사식당 2곳에서 총선 결과에 대한 평가를 들어봤다.

지하철 2호선 구로디지털단지역 인근에 있는 기사식당에서 만난 택시기사 노순만(60)씨는 단호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큰아들(새누리당)이 말 안 듣고 자만하니까 (줬던 재산을) 빼앗아서 둘째(더불어민주당)와 셋째(국민의당)에게 힘 좀 써 보라고 보태 준 거죠.”

노씨는 “우리 국민 멋있더라. 새누리당이 반성하라고 제대로 혼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대권 주자로 거론되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안대희 전 대법관이 줄줄이 낙마한 것에 대해선 “어느 국민이 그들을 대권 주자라고 했느냐”며 “새누리당 자기들끼리 하는 얘기일 뿐”이라고 말했다. 옆자리에서 제육볶음으로 저녁식사를 하던 택시기사 이필준(43)씨는 ‘3당 체제’로 바뀐 국회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기득권을 가진 양당체제이다 보니 사회가 변한 게 없어요. 국회에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져 긍정적으로 봅니다.”

서울 성북동 성암기사식당 주인 김원경(48)씨는 손님들이 총선 결과에 대한 소감을 쏟아내 하루 종일 가게가 시끌벅적했다고 말했다. 그는 “새누리당이 된통 당해서 통쾌하다, 개표 결과가 믿기지 않았다는 반응이 많았다”고 전했다.

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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