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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지역주의 해체’는 이미 시작됐다

4·13 총선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악화된 지역주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지역주의 선거는 산업화·민주화에 성공한 대한민국이 여전히 극복하지 못한 공공의 적이었다. 새누리당의 친박 패권세력이 이른바 ‘진박 사람들’을 마구잡이 공천했던 것도, 더불어민주당에서 친노 패권주의가 막무가내 활보할 수 있었던 것도 양당에 절대적·무조건으로 기본 의석을 공급했던 영·호남의 묻지마 투표 때문이었다. 이번 20대 총선에서 우리는 지역주의 균열이라는 희망의 빛을 봤다. 19대 총선 때 호남 의석 30석 가운데 25석을 싹쓸이했던 더민주는 이번에 28개 중 3석만 얻었다. 더민주의 지역적 기반이 완전히 해체된 것이다. 새누리당도 4년 전 영남의 67곳에서 63석을 석권했지만 이번엔 65석 중 48석만 얻었다. 특히 대구·부산은 영남 지역주의를 깨는 교두보로 부상했다.

세상에 저절로 허물어지는 건 없다. 그걸 깨려는 희생적인 인물들의 도전이 있어야 한다. 대구의 김부겸(더민주)·홍의락(무소속), 부산의 김영춘(더민주), 전남의 이정현과 전북의 정운천(새누리) 등은 지역주의를 깬 영웅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이들에겐 몇 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첫째, 그들의 당선 일성은 ‘위대한 유권자’에 대한 감사였다. 유권자는 하늘이었다. 적대와 불모의 시선을 신뢰와 지지의 눈빛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그들은 주민이 얼마나 무섭고 고마운 존재인지 뼈저리게 느꼈다고 한다. 둘째, 이들은 최소한 두 번의 실패를 경험했다. 첫 도전에 성공한 사람은 없었다. 오랜 세월 패배의 고통과 공포를 견뎌냈다. 유권자는 그런 시련을 내린 뒤에야 비로소 지역주의와 싸우는 사람들의 진정성을 승인했다.

셋째, 지역주의를 극복한 정치인들은 여야 간 공존, 경쟁 세력 간 상생을 정치원리로 수용한다. 그들은 모순을 받아들이는 개방성이 높다. 차이 속에서도 합의를 찾아내는 능력이 두드러진다. 문제 제기보다 문제 해결에 능하다. 공존과 상생은 적대와 극단이 일상화된 한국의 민주주의를 치유할 좋은 약이다. 지역주의를 허문 당선인들은 여야 관계 없이 한국 정치의 혁신에 귀한 자원이 될 것이다.

이와 함께 20대 국회는 지역주의의 벽을 깨는 법적 정비와 제도 개혁을 해야 한다. 지역주의를 고착화하는 대표적 제도가 한 선거구에서 한 명의 의원을 뽑는 소선거구제다. 1987년 도입된 소선구제는 권위주의적인 집권당을 명쾌하게 혼내주는 순기능이 있어 민주화 시대에 부합하는 제도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나타났듯이 오만한 정권은 2야 분열 구도에서도 얼마든지 손을 볼 수 있다. 이제 정치권은 어느새 기득권이 돼버린 소선거구제 집착을 버려야 한다. 협치(協治)와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중·대선거구제 전환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지역 선거에서 아슬아슬하게 패한 후보에게 일정한 기준이 되면 비례대표 의원이 될 수 있게 하는 석패율(惜敗率) 제도도 도입하라. 일부 정치인들의 희생적인 도전, 위대한 유권자의 경이로운 선택으로 시작된 지역주의 해체에 20대 국회는 법·제도적 인프라로 뒷받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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