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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북한 중대변화 맞닥뜨릴 20대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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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통일문화연구소장 겸
통일전문기자

북한 김일성은 사망 이틀 전인 1994년 7월 6일 경제 부문 책임일꾼협의회를 소집했다. 북한 핵 관련 대북제재와 경제난이 핵심 의제였다. 그는 20일 전 방북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 나눈 얘기라며 “우리는 제재받는 걸 두려워 않는다. 지금까지 제재를 받으며 살아왔지 제재를 받지 않은 적이 한번도 없다. (중략) 제재를 더 받는다고 하여 못 살아갈 줄 아느냐고 말해주었다”(『김일성 저작집』 제44권)고 소개했다.

호기 어린 김일성의 ‘무용담’과 달리 당시 북한 경제는 만신창이였다. 산소호흡기 역할을 하던 소련과 동구권이 붕괴했고, 교역 시장은 달러 결제 쪽으로 돌아섰다. 국가 주석 김일성의 책임일꾼협의회 발언에는 그 절박감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원유는 돈을 주고 사와서라도 보장하라”고 채근하면서도 돈은 해당 기관이 자체 조달하라고 교시하는 장면에서 수령의 권위는 금이 가버리고 만다. 당시 기록영화에는 김일성이 직접 선박공업부장을 일으켜 세운 뒤 “큰 짐배 100척을 무을(‘선박 건조’를 의미) 데 대한 과업을 준 지 여러 해 됐는데 수행 못했다”며 질책하는 장면까지 등장한다. 심근경색으로 김일성이 급사한 걸 두고 압박감을 이기지 못한 때문이란 해석이 나오는 것도 이런 사정에서다.

김일성이 벗어던지지 못한 제재의 굴레는 손자 김정은에게 고스란히 세습됐다.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은 올 초 핵과 미사일 도발 드라이브로 유엔과 국제사회의 촘촘한 대북 포위망을 자초했다. 유엔 대북 결의 2270호 발표 한 달을 맞은 지난 3일 국방위원회가 내놓은 담화는 “우리에게 있어 제재라는 말은 공기처럼 익숙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22년 전 김일성의 호언과 빼닮았다. 제재가 오히려 북한을 ‘강국’으로 만들었다는 강변까지 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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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하지만 평양의 상황은 김일성 때보다 심각해 보인다. 북한 스스로 ‘제2 고난의 행군’을 언급했다. 김일성 사망과 잇단 대수해로 2400만 인구 중 200만~300만 명이 아사했다는 90년 말 고난의 행군의 재연을 각오한 것이다. 이번 국방위 담화도 “제재 소동이 우리 삶의 공간을 완전히 질식시키고 있다”고 속사정을 내비쳤다.

주목되는 건 핵심 엘리트층의 이반이다. 32세 청년 지도자가 집권 4년 동안 벌인 흉포한 숙청과 절망적 리더십이 발화점이다. 특히 북한 정권 수립에 일정한 지분이 있다고 자부해온 ‘빨치산’ 원로세대를 중심으로 분노에 가까운 반감이 은밀히 번진다는 얘기다. 60~70대 나이의 고위 장성과 노동당 간부를 가족과 부하들이 보는 앞에서 발가벗겨 공개 처형하는 김정은의 야만적 공포정치가 결정적 계기였다는 게 내부 소식통의 귀띔이다. 졸지에 국제 범죄자 리스트에 올라 해외여행이나 신병 치료의 발이 묶인 불만도 더해졌다는 것이다. 제2의 황장엽이 평양 권력 핵심부 곳곳에 포진한 셈이다.

해외 체류 엘리트나 근로자의 탈북 사태도 심상치 않다. 중국 저장(浙江)성 닝보(寧波)시 북한 식당 지배인과 여종업원 13명이 집단으로 서울 망명길에 오른 건 눈여겨볼 대목이다. ‘대북제재 효과’라는 정부 브리핑은 부풀려진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일각의 주장처럼 총선용 ‘북풍(北風)’이나 ‘기획 탈북’으로 치부할 일은 아니다. ‘하필 선거를 앞둔 시점에 왔을까’하는 문제 제기는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탈북 사실을 가장 먼저 파악했을 북한이 ‘납치’ 운운하며 선수를 치거나, 외신 보도가 불거질 가능성을 걱정했다는 통일부 설명에도 귀 기울이는 균형감은 필요하다. 북한 식당이 하루아침에 문 닫고 젊은 여성 10여 명이 사라졌다는 입소문을 막을 힘은 없다. 철통 보안이 가능했던 남북 비밀접촉 내용을 총선 직전에 터트린 김대중 정부의 2000년 4월 정상회담 발표 때와는 사정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제 선거 잔치는 끝났다. 총선이란 블랙홀은 김정은의 ‘핵탄두’ 공개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모의실험 같은 도발 이슈를 삼켜버렸다. 북한 장사정포 부대가 ‘최후통첩’을 보냈는데도 우리 모두는 담대했다. 좋게 말하면 성숙한 시민의식이고, 걱정을 섞으면 안보 불감증이다. 대한민국의 존립과 우리 공동체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문제인 데도 ‘김정은의 셈법 바꾸기’를 잠시 미국과 중국 등 남에게 맡겨둔 느낌이 든다.

유엔 결의 한 달을 넘기며 국제사회는 대북제재의 고삐를 본격적으로 당기고 있다. 하지만 서울은 벌써 시들해지는 분위기다. 올 1분기(1~3월) 북·중 교역량이 줄지 않았다는 중국 해관(세관) 통계치를 두고 일각에선 “대북제재 효과가 없다”는 식의 호들갑을 떤다. 개성공단 재가동 주장까지 고개를 든다. 입구에 제대로 들어가기도 전에 출구전략부터 찾는 격이다.

김정은 정권의 핵·미사일 도발을 멈추게 하는 작업은 장기전이 될 수밖에 없다. 순발력보다 전략이 배합된 지구력이 중요한 이유다. 국민여론의 결집과 함께 정치권의 의기투합이 긴요하다. 다음달 말 출범할 20대 국회는 임기 중 북한 체제의 중대한 변화와 맞닥뜨릴 가능성이 크다. 한반도 정세와 남북관계에도 격랑이 불가피하다. 치밀한 대북 전략을 세울 전문가 그룹이 원내에 부족하다는 점은 아쉽다. 당리당략보다 지혜로운 북한 다루기와 통일비전에 더욱 뜻을 합쳐야 하는 이유다. 대북 문제와 안보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는 말이 새 국회에선 공염불이 되지 말아야 한다.

이영종 통일문화연구소장 겸 통일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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