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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2035] 노오력의 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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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미
JTBC 사회부 기자

“너처럼 노력하면 서울대에도 갈 거야.” 학교 선생님과 부모님은 성실한 A를 격려했다. A는 좀처럼 노는 법이 없이 책상을 지켰다. 엉덩이에 커피색 굳은살이 붙을 정도였다. 하지만 서울대는 가지 못했다. 대학생이 된 A는 더 성실해졌다. “너처럼 노력하면 취업도 골라서 할 거야.” 공부 말고도 봉사활동에 인턴까지 챙길 게 많았다. 그래도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기까지 2년이 걸렸다. “그나마 노력했으니 여기까지 온 거야.” A는 그렇게 ‘노력의 신봉자’가 됐다.

내 얘기를 굳이 A라고 쓴 건 이런 사람이 많을 거라는 생각에서다. 얼마 전 만난 30대 취재원도 그랬다. 명문대를 나와 대기업에 근무하는 워킹맘, 유별나거나 극성스러운 사람은 아니다. 그녀는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이 공부를 꽤 잘한다고 했다. 요즘엔 특목고 입시를 위한 교내 과학탐구대회 준비로 밤늦게 학원에서 돌아온다고. 그 모습을 보면 짠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래도 어떻게 해요.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거 알잖아요. 김 기자님도 열심히 했으니까 지금이 있는 거잖아요? 그렇죠?”

정말 그런가. 사실 나는 약간의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무엇보다 노력의 결과가 생각과 다르다. 서울대에 가려고, 더 좋은 직장에 들어가려고 노력한 게 아니었다. 보이는 목표는 그랬지만, 그렇게 되면 내 인생을 잘 꾸려갈 수 있을 거라고 믿 었다. 대학교에 가면 즐거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고, 기자가 되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서울대에 입학한 것도 모자라 박사까지 마친 친구, 외국계 기업에 들어가 나보다 몇 배 높은 연봉을 받고 있는 친구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고 했다.

노력이란 건 끝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됐다. 노력은 노오력을, 노오력은 노오오력을 부른다. 노오오오력을 해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총선 당일 선거 캠프에서 만난 한 후보. 그의 입에서는 단내가 났고, 눈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말을 너무 많이 하고 잠을 못 잔 탓이다. 하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캠프 관계자는 “모두 승리를 위해 200% 노력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300% 노력했다면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을까.

노력해 봤자 다 쓸모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나는 여전히 운보다 노력의 힘을 믿고 노력하는 삶을 사랑한다. 다만 노력은 언제든 배신할 수 있다는 걸 기억하며 노력의 방향과 정도를 잘 살피자는 거다. 얼마 전 ‘무한도전’에 만화 ‘미생’의 윤태호 작가가 출연해 가장 공감을 얻은 대사로 이것을 꼽았다. “우리를 위해 열심히 사는 건데 우리가 피해를 보고 있어.” 이렇게 느껴지는 노력이라면 안 해도 그만이다. 좋은 노력의 방향과 정도는? 그건 자기가 안다.

김혜미 JTBC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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