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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고장 난 정당정치, 이제는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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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주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말 많고 탈 많던 총선이 여소야대 국회를 창출하면서 끝을 맺었다. 이번 총선 과정을 지켜보았던 대부분의 국민은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국민의 대표로서 국정 사안에 대해 저마다 훌륭한 대안과 공약을 제시하는 민주주의의 본래 모습은 사라지고, 권력을 둘러싼 적나라한 투쟁만이 난무했던 혼란의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구태정치에 대해 국민들은 매서운 회초리로 꾸짖었다. 이제는 우리 정치의 문제점을 차분히 분석해 보고 개선 방안을 모색해 볼 때다.

1987년 직선제 개헌으로 성립한 우리 정치는 대통령제와 소선거구제를 기본으로 한다. 소선거구제는 영남과 호남, 그리고 보수와 진보라는 대결 구도 속에서 명확한 선택과 선명한 결과를 가져왔다. 이를 통해 양당제도가 확립됐으며, 그동안 두 개의 거대 정당을 대표하는 대통령 후보들이 서로 경쟁하며 평화적 정권 교체도 이룬 바 있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지금 소선거구제는 국민에게 양자택일이라는 선택을 강요하며, 선거를 통해 공직에 진출하려는 사람들에게는 굴욕을 감내하고 통과해야 하는 독점의 관문이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정당의 공천을 받더라도 후보들은 지역구에 나가 죽기 살기로 싸워야 한다. 지역구 주민들이 원하는 사업이면 무엇이든 약속해야 살아남는다. 국회의원이 지역구만의 대표가 아니라 지역에서 뽑는 국정의 대표자라는 민주정치 본래 취지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국민을 대신해 정부를 견제하고 국민의 권리와 국가 재정을 지키는 국회 본연의 역할을 하겠다고 나서는 후보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과연 총선이 한 지역의 개발 공약을 놓고 경쟁하는 지방선거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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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총선에도 오직 대규모 예산을 확보해 지역사업을 실현하겠다고 호언장담하는 후보들만 난무했다. 그들 말대로라면 총선 이후 국가 재정이 거덜 날 것은 불 보듯 자명하다. 여기서 선의의 경쟁이나 이성적 토론을 하겠다는 선거 전략은 현실을 모르는 착각일 뿐이다. 

이러한 냉혹한 정치 현실에서 미래의 꿈을 가진 건전한 젊은이들이 정치권에 뛰어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나라 민주정치가 가진 또 하나의 문제점은 바로 제도화된 정치인 충원 과정이 없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민주주의 선진국에서는 우수한 인재들이 아주 젊을 때부터 정계에 입문한다. 그들은 정당의 사무국이나 연구소에서 사회 문제를 연구하고 정책 대안을 모색하며 정치를 배운다. 적당한 시기가 되면 당선되기 어려운 험지에 출마해 고전하는 과정을 통해 정치를 익히고, 어느 정도의 경륜을 쌓은 후 당선권의 지역구에 배정돼 국회의원이라는 공직을 맡게 된다. 간혹 어려운 지역구에서 당선된 젊은 후보가 많으면 그해의 총선은 대승하게 된다.

그들은 국회에 처음 진출한 초선 시절부터 여러 직책을 경험하면서 정치인으로서의 자질과 능력을 평가받는다. 그 가운데 뛰어난 사람은 수십 년이 지나 장관이 되고, 나아가 총리나 대통령의 자리까지 오르게 된다. 이쯤 되면 정치인들은 모두 국정을 돌보는 데 있어 역전노장의 프로가 돼 있기 마련이다.

이와 같은 자연스러운 정치인 충원 과정이 없는 우리 정치권에서는 갑작스러운 물갈이 요구에 대응해 인위적으로 외부에서 새 정치인을 영입한다.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일지는 몰라도, 국정을 깊이 있게 다룬 경험은 일천한 정치 아마추어가 대부분이다. 결국 국정을 심도 있게 고민하는 사람보다는 이전투구의 정치판에서 정치 싸움을 잘하는 사람이 살아남는다. 이번 총선에 출마한 후보들 가운데 40% 이상이 전과가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도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우연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정당에서 공천 마감일을 앞두고 발표한 비례대표 후보들의 정치적 경륜이나 능력을 검증할 기회가 전혀 없었던 것도 매우 아쉬운 점이었다.

이제 고장 난 정당정치 체제를 바로잡고 다양한 국민의 의사가 정치권에 반영될 수 있도록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20대 국회에서는 먼저 국민에게 양자택일을 강요하고, 정치 지망생이 거대 정당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소선거구 제도와 권위주의적 공천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 정당명부식 지역구 후보 추천 제도를 비롯한 중·대선거구 제도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거대 정당의 힘겨루기보다 정당들 간 정책 경쟁으로 국회가 제 기능을 찾도록 해야 한다. 싸움의 정치보다 이성적 논의에 따른 설득과 타협의 정치를 시도해야 한다.

정당들도 의리로 뭉친 구시대적 정치파벌의 속성을 버리고, 국정을 연구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건설적 조직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국가의 미래를 책임지겠다는 젊은이들이 정치인으로서 정치권에서 성장하고, 돋보이는 인물은 최고의 요직에 올라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정치 경로도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선거에서 낙선한 후보들이 부활해 재도전할 수 있는 건전한 정치 생태계 조성에도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권혁주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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