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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의 시시각각] 박근혜의 다음 한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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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
논설위원

누구나 위기를 맞는다. 때때로 아주 큰 위기는 상상의 범위를 넘어서는 곳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큰 위기를 맞았다. 이 위기는 새누리당이 원내 제2당으로 전락한 데서 시작된다. 집권에 성공한 제1당이 현직 대통령의 임기 중 제2당으로 추락한 일은 유례가 없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 1988년 총선 결과는 1여3야의 불안정한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이었으나 대통령은 제1당의 지위는 쥐고 있었다. 집권당은 최소한의 국정 주도력을 확보했다. 김영삼(YS) 대통령의 96년 총선에서도 여소야대 돌풍이 불었다. 그래도 YS당은 1당이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의 새누리당은 여소야대를 넘어 아예 제2당으로 전락했다. 두 야당은 마음만 먹으면 자기들끼리 상의해 입법권과 예산처리권을 행사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최악의 경우 임기 후반기에 식물 대통령으로 떨어질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취할 다음의 한 수를 궁금해한다. 그 한 수는 대통령을 난처한 상황에서 탈출시키고 정치권이 동의할 수 있으며 민심의 분노를 누그러뜨릴 수 있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위기 때도 기존 경로를 좀처럼 바꾸지 않는 편이다. 외부의 여러 조언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자신이 행사할 수 있는 권한과 책임을 챙기는 쪽이다. 그래서 대통령의 주변에서 가장 많이 흘러나오는 처방책이 검찰·감사원 등을 동원한 사정(司正) 작업 강화, 정·재·관계 긴장도 높이기다. 선거사범에 대한 후속 처리를 신속하고 강력하게 진행해 야권 압승의 분위기에 김을 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하지하책이다.

두 번째로 국면전환을 위해 통치권 차원의 특별한 수단을 강구할 수도 있겠다. 권력구조 개편을 포함한 개헌 추진이나 대통령의 신임을 묻는 국민투표 등 헌법이 그에게 부여한 비상한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다. 2006년 말 지방선거에 대패한 노무현 대통령이 권력분산형 개헌 논의를 제안했는데 당시 대선 경선을 준비하던 박근혜 야당 의원은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비판했었다.

세 번째는 총선으로 바뀐 정치환경에 적응하면서 대통령이 위기돌파 능력을 창조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당·정·청 인적 쇄신이다. 인적 개편은 고도의 정치행위여서 사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 국무총리와 청와대 비서실장 등 정부·청와대 요직을 거국내각 수준으로 대폭 물갈이하는 게 좋다. 관심은 초토화된 새누리당 지도체제 문제다. 당의 참패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박 대통령 본인이다. 박 대통령이 유승민 의원을 배반자로 규정하고 공공연히 낙천·낙선시키는 언행을 하지 않았더라면 새누리당이 저토록 친박·비박으로 갈려 국민모독 수준의 패싸움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 뜻에 따라 요란하게 칼춤을 춘 최경환·이한구 의원과 현기환 정무수석, 여기에 옥새 파동으로 국민을 우롱한 김무성 대표도 책임자다. 이런 때 박 대통령이 청와대로 유승민 의원을 초청해 “과거를 모두 덮고 미래를 위해 당을 맡아달라”고 요청하면 어떨까. 박 대통령이 잘못 끼운 첫 단추로 다시 거슬러 올라간다는 컨셉트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일 수 있지만 문제가 발생한 곳에서 문제 해결을 도모하는 건 정치의 기본 원리다.

박 대통령은 어색한 목소리로 총선 패배에 대한 대국민 담화 같은 것을 발표하느니 유승민과 만남을 통해 자연스럽게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게 좋다. 유승민의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 철학은 김종인의 경제민주화나 안철수의 격차 해소와 공통의 기반을 갖고 있다. 세 사람이 세 당의 대표로 만나면 국회를 패권대결형이 아닌 문제해결형으로 무드 교체가 가능하다. 박 대통령은 유승민을 활용해 국회의 법안처리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창조경제만 있는 게 아니라 창조정치도 있다. 유승민의 등용은 대통령 주변에서 누구도 제안하기 어려운 수다. 대통령이 불편해하는 사람을 쓰라고 건의할 간 큰 참모가 누가 있겠는가. 그래도 신의 한 수는 이런 데서 나온다.

전영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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