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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영원한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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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

영어신문 기자 시절 외국인 에디터들에게 “○○, 눈물의 삭발 투혼” 혹은 “XX, 석고대죄 위해 무릎 꿇었다”는 내용을 설명하는 건 고역이었다. 미국 샌타페이 출신에게 고매하신 공자님 말씀인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를 읊을 수는 없는 노릇. 대신 “부모님께 물려받은 소중한 머리카락마저 자를 만큼 굳은 결의를 보여 주는 것”이라 설명해도 이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석고대죄’도 마찬가지. 이런 질문이 돌아오곤 했다. “보여 주기 위한 퍼포먼스 아니야?”

지난 총선에서도 어김없이 ‘석고대죄’와 ‘삭발 투혼’ 장면은 등장했다. 새누리당은 지난한 공천 파동 막장드라마가 끝나기 무섭게 거적을 깔고 사죄의 절을 올렸다. 삭발을 하고 선거운동을 벌이는 후보들도 있었다. 당 지도부도 무릎을 꿇고 사죄하면서 반성의 노래까지 만들어 불렀다. 사죄할 정도로 잘못을 했다면 깨끗이 물러났어야 하는 게 순리다. 그런데도 ‘미워도 다시 한번’ 식으로 표는 또 달라고 하니, 어이가 없는 노릇이다. 이런 ‘사죄 코스프레’를 보며 에디터의 질문에 이제야 답을 해본다. “맞네요, 퍼포먼스.”

민심이 무섭다는 건 이미 증명됐다. 영원한 것은 없다. 총선 결과를 두고 오가는 한숨과 환호성도 언젠가는 멈춘다. 문제는 망각으로 잊을 것인지, 변화로 벗어날 것인지다. 민심은 또 언제 바뀔지 모른다.

이런 생각도 든다. 유권자의 심판이 필요 없는 진짜 정치, 책임정치는 정녕 꿈에 불과한 것일까. 유권자는 정치권을 심판하기보다는 정치권과 함께 성장하고 싶다.

실패학(failure study)이라는 게 있다고 한다. 경제·경영 분야에서 실패를 거름 삼아 성공으로 삼자는 취지의 학문이다. 실패학자들에 따르면 해도 좋은 ‘명예로운 실패(honorable failure)’가 있고 악순환만 일으키는 ‘불명예 실패(dishonorable failure)’가 있다. 이를 가르는 기준은 “자신의 실패에서 발전 가능성을 뽑아낼 수 있는지 여부”라고 일본 도쿄대 하타무라 요타로(畑村洋太郞) 교수는 강조한다. 비단 기업뿐 아니라 정당도 마찬가지일 터. 입으로만 뼈를 깎는 변화를 외칠 게 아니라 근본에서부터 변화를 꾀해야 한다. 실패학의 권위자라는 시드니 핀켈스타인 다트머스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힌트를 준다. “스마트한 지도자는 왜 실패하는가. 무능해서가 아니다. 자기만의 확신에 사로잡혀 변화할 생각이 없기에 실패한다.” 이제 자신만의 확신과 아집을 버리고 변화를 꾀해야 할 때다. 20대 총선 결과가 증거하듯, 영원한 지지는 없다.

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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