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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샛노란 들판, 꽃멀미 날 판

| 봄꽃 흐드러진 남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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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준의 소설 ‘선학동 나그네’의 배경이 된 전남 장흥 선학동 구릉에 유채꽃이 흐드러 졌다. 선학동 유채밭은 15일부터 열흘 남짓 절정의 노란빛을 뽐낼 것으로 보인다.



봄꽃이 이어달리기를 하고 있습니다. 성마르게 꽃망울을 틔운 동백이 매화와 산수유에게 바통을 넘겨주더니 이내 눈 부신 벚꽃이 강산을 물들였습니다. 봄꽃이 차례로 주인공 행세를 하는 사이 각질처럼 남아 있던 겨울도 이제는 다 털어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꽃잔치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벚꽃이 지기 무섭게 유채와 진달래가 남녘에서부터 올라오고 있습니다.
이 남도에서 강렬한 봄의 색을 채집해 왔습니다. 유채꽃의 노랑과 진달래의 분홍입니다. 전남 장흥 해안 언덕에서 유채의 노랑을 받아왔고, 경남 거제 대금산 자락에서 진달래의 분홍을 건져왔습니다. 이른 봄 언 땅 비집고 겨우 피어난 꽃에게서 생명의 고결함을 느꼈다면, 완연한 봄 시야를 장악한 유채와 진달래로부터는 흥겨운 기운을 받았습니다. 유채의 꽃말은 ‘쾌활’이고 진달래는 ‘사랑의 기쁨’이랍니다. 봄의 한복판에서 유채와 진달래가 들려주는 꽃말에 귀기울여 보시지요.



| 연분홍 꽃대궐 갈까, 노란 꽃구름에 안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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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거제 대금산을 분홍빛으로 물들인 진달래. 파란 바다와 어우러진 분홍 산자락이 눈을 찌른다. 이 붉은 기운은 이번 주말부터 경남 창녕의 화왕산, 대구 비슬산, 강화도 고려산에서도 느낄 수 있다.



봄은 분홍이다. 매화와 벚꽃에 묻어 있던 분홍 기운이 비로소 명징하게 찾아왔다. 남녘의 산을 뒤덮은 진달래꽃 이야기다. 다시, 봄은 노랑이다. 산수유와 개나리가 뿜어냈던 노란 기운이 이제는 들녘으로 번졌다.
눈이 시릴 정도로 샛노란 유채꽃 이야기다. 4월의 두 주인공 진달래와 유채를 만나고 왔다. 아니 4월의 두 색을 느끼러 경남 거제 대금산과 전남 장흥 선학동을 다녀왔다. 현기증 나는 봄의 색깔만 만나고 온 건 아니었다.
꽃노래 부르며 산행을 즐겼고 소설 속 공간을 유유히 거닐었다.


바다와 어우러진 진달래 산 - 거제 대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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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제, 대금산 정상부의 진달래 군락지.



1980년대만 해도 진달래는 어디에서나 피어났다. 마을 고샅이고 집 뒷산이고 널리고 널린 게 진달래였다. 애들은 꽃잎을 따먹었고, 어른은 꽃 지짐이를 부쳐 먹었다. 음력 삼월 삼짇날(올해는 지난 9일이었다)에는 꽃잎을 넣고 술을 담그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진달래 먹고 물장구 치고’로 시작하는 유행가(이용복 ‘어린시절’)도 있었다. 진달래는 중년 세대에게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꽃이다.

언제부터인지 그 흔했던 진달래가 귀해졌다. 개나리와 벚꽃은 도시에서도 자주 볼 수 있지만, 진달래를 보려면 굳이 먼길을 떠나야 했다. week&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전남 여수 영취산을 올랐던 것처럼 올해도 남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산을 올랐다. 올해는 경남 거제도 장목면의 대금산(大錦山)을 진달래 산행의 주인공으로 점지했다. 개화 시기와 지역 배분을 고려한 선택이었다.

대금산의 ‘금’ 자는 원래 ‘쇠 금(金)’ 자였다. 그러나 진달래가 만개하면 온 산이 붉은 비단을 깔아놓은 것처럼 반짝인다고 해서 ‘비단 금(錦)’ 자로 바꿨다고 한다. 해발 437m의 야트막한 산이어서 1시간이면 진달래 군락지가 있는 8부 능선에 닿을 수 있었다.

산세가 완만해 발걸음도 가벼웠다. 30분쯤 올라가니 붉게 타오르는 비탈진 산등성이가 보였다. 급한 마음에 발걸음을 재촉하자 안내를 맡은 김동명(53) 장목면장이 붙잡았다.

“저 소나무 숲에 핀 진달래 색깔이 너무 아름답지 않나요? 사실 숲 속에 핀 진달래는 오래 살지 못합니다. 진달래가 먼저 뿌리를 내렸어도 다른 나무가 자라면 진달래가 죽습니다.”

김 면장의 설명대로라면 옛날에 진달래가 많았던 건 뜻밖의 이유에서였다. 산이 헐벗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나무가 없어서 진달래가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진달래가 사라진 이유는 반대로 산림이 우거져서였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판단이 되지 않았다.

“전국의 진달래 명산을 떠올려 보세요. 진달래는 반드시 무리지어 있습니다. 다른 나무는 거의 보이지 않고요.”

머릿속으로 진달래 산을 그려보니 정말 그랬다. 영취산도, 대구 비슬산도, 인천 강화도 고려산도 진달래는 하나같이 산비탈에 몰려 살거나 정상부 평원에서 어울려 살고 있었다. 진달래는 다른 나무와 생존 경쟁에서 이겨 살아남은 것이 아니었다. 살아남기 위해 다른 나무가 없는 곳에서, 혼자가 아니라 무리를 지어 생명을 이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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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금산을 찾은 외국인 여행객.



마침내 진달래 군락지에 도착했다. 군락지는 이미 분홍빛 잔치가 한창이었다. 4만7000㎡(약 1만4000평)는 됨직한 경사면이 온통 진달래 천지였다. 2∼3m 높이의 진달래 나무가 등산로 곳곳에서 분홍 터널을 이뤘다. 대금산 정상 바위에 걸터앉았다.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광은 압권이었다. 붉게 물든 진달래 능선 너머로 시퍼런 바다가 펼쳐졌다. 부산과 거제도를 잇는 거가대교도 한눈에 들어왔다.

 

지난 14일 대구 비슬산 진달래 군락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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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금산 진달래도 이번 주말이 지나면 분홍빛이 바랠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 부천 원미산의 진달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아직 실망은 이르다. 경남 창녕의 화왕산, 대구 비슬산과 인천 강화도 고려산은 오는 20일 즈음해 진달래가 만개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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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서울시청에서 거제 대금산까지는 409㎞ 떨어져 있다. 자동차로 약 5시간 걸린다. 대금산 초입 외포리에서 묵어도 되고, 거제시내로 돌아가서 숙소를 잡아도 된다. 거가대교를 건너 1시간만 달리면 부산 다대포에 들어간다. 외포리는 겨울에는 대구, 봄에는 멸치로 유명하다. 외포어판장 인근에 멸치회를 파는 식당이 많다. ‘양지바위횟집’ 멸치회 5만원(4명 기준). 055-635-4327. 거제관광안내소 055-639-4178.



나그네 반기는 갯마을 유채밭 - 장흥 선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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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땅 장흥에서도 버스는 다시 비좁은 해안도로를 한 시간 남짓 달린 끝에, 늦가을 해가 설핏해진 저녁 무렵이 다 되어서야 종점지인 회진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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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천년학’에 나온 주막과 관음봉이 감싸안은 선학동 풍경.



소설 ‘선학동 나그네’의 무대를 찾아가는 길은 소설 첫머리 그대로였다. 고(故) 이청준(1939∼2008)이 1979년 작품을 발표했으니, 4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셈이었다. 그러나 갯마을은 여전히 궁벽했다. 개발의 여파가 미치지 않은 갯마을 풍경은 외려 낯설었다.

반면에 선학동의 봄은 소설과 달리 화사했다. 소설에서 누런 논두렁으로 묘사된 들녘은 연둣빛 청보리로 푸르렀고, 마을 뒤편 자드락은 노란 유채로 눈부셨다. 마을을 감싸안은 관음봉은 노란 꽃구름 위를 나는 한 마리 학 같은 형상이었다. 눈먼 소녀의 신들린 소리가 없어도 기이한 풍광이었다.

상전벽해(桑田碧海)는 선학동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선학동은 전남 장흥군 회진면에 속한 인구 100명의 작은 부락이다. 마을에서 유채를 가꾼 건 ‘선학동 나그네’를 원작으로 한 임권택(80) 감독의 ‘천년학’이 개봉한 2007년부터였다. 마을 주민은 영화 촬영지로 마을을 알리고 싶었지만 마땅히 내세울 것이 없었다. 영화 촬영 후 남은 것이라곤 허름한 주막 하나가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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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채꽃 만발하니 미물도 바빠졌다. 꿀 따먹으러 날아든 벌 한 마리.

마을은 궁리 끝에 유채밭과 메밀밭을 가꿨다. 봄에는 노랑 세상을, 가을에는 하양 세상을 만들었더니 관광객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일제 강점기 간척사업 이후 마을에 찾아온 가장 큰 변화였다.

마을회관에 차를 세워두고 골목길을 따라 유채밭을 걸었다. 선학동의 유채밭 면적은 15㏊로, 쉬엄쉬엄 걷기에 부담이 없었다. 골목길에는 ‘선학동 나그네’ 전문을 나눠 적은 나무판 100여 개가 세워져 있었다. 유채밭 가장 위쪽 구릉에 올라서니 마을은 물론이고 득량만 바다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유채밭과 빨강·주황·파랑 지붕을 얹은 여염집이 어우러져 색채 강렬한 유화를 감상하는 것 같았다. 관음봉 뒤로 해가 넘어가자 마을은 금세 어두워졌다.

선학동을 둘러본 뒤 궁금한 게 생겼다. 마을에 식당·숙소는커녕 구멍가게 하나 없었다. 이제는 제법 관광객도 몰려드니 ‘돈벌이’를 찾을 법도 한데 마을이 너무 조용했다. 최귀홍(60) 전 이장으로부터 마을의 내력을 들었다.

“오지까지 찾아오는 것도 고마운디 뭘 더 바라겄소. 어차피 놀리는 땅이었는디 이렇게라도 꾸며농께 활기 돋고 좋지라.”

최 이장만이 아니었다. 마을 어르신 대부분이 지벽(地僻)한 시골 구석을 찾아온 외지 사람이 고마우면서도 신기하다고 입을 모았다. 메밀은 꽃이 지면 쒀 먹기라도 하지만 유채는 꽃이 지면 밭을 갈아 엎는단다.

최근 10년 사이 전국 곳곳에 유채밭이 생겨나고 있다. 정부가 2005년 유채·메밀 등 경관용 작물을 재배하는 농가를 지원하면서부터다. 유채 군락지가 가장 많은 지역은 단연 제주도다. 3∼5월 성산일출봉·섭지코지·산방산 일대에서 들판을 가득 메운 유채꽃을 볼 수 있다.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의 중산간 마을을 관통하는 녹산로는 길섶에 만발한 유채꽃 덕분에 드라이브 코스로 거듭났다. 전남 완도 청산도, 경북 경주 첨성대 주변, 경남 창녕 낙동강변, 강원도 삼척 맹방 등지도 유채 명소로 꼽힌다.

수도권에서 유채를 보려면 5월까지 기다려야 한다. 경기도 구리에서 5월 13~15일, 서울 한강 서래섬에서 5월 14∼15일 유채꽃 축제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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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서울시청에서 장흥 선학동까지는 약 423㎞ 떨어져 있다. 자동차로 5시간 가량 걸린다. 선학동에는 숙소·식당이 없다. 숙소는 회진면사무소 근처나 장흥군청 주변에서 잡아야 한다. 장흥군이 운영하는 자연휴양림 ‘우드랜드(jhwoodland.co.kr)’를 이용하는 것도 좋다. 1박 6만원부터. 061-864-0063. 선학동에서 3㎞ 떨어진 삭금마을에 괜찮은 횟집이 많다. 보리숭어·갑오징어·도다리가 제철이란다. 모둠회 6만원(4명 기준). 061-867-5461. 장흥군청 문화관광과 061-860-0224.


글=이석희·최승표 기자 seri1997@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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