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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view&] 한국은행이 시장의 존경을 받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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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민
경제데스크

11월 14일은 한국은행의 독립기념일이다. 1997년 이날 국회는 한은의 숙원이었던 한은 독립법을 통과시켰다. 한은의 통화정책 결정기구인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장을 50년 만에 한은 총재가 차지하게 됐다. 그전까지 금통위원장은 재무부장관이 맡았다. 한은 스스로 ‘재무부 남대문 출장소’로 자조했던 시절이다. 한은도 기회 있을 때마다 독립 투쟁을 벌였다. 그러나 재무부 서슬에 번번이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97년 초 대통령 직속 금융개혁위원회(금개위)가 한은법 개정안을 들고 나왔을 때도 한은조차 기대하지 않았다. 한데 그해 말 터진 외환위기가 한은 독립 여론에 불을 질렀다.

애초 금개위는 미국 중앙은행 모델을 구상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12명의 이사로 구성된 이사회(FRB)가 최고 의결기구다. FRB 아래에 12개의 지역 연방준비은행이 포진해있다. FRB가 머리고 지역 연준 은행이 손발이다. 우리 식으로 적용하면 금통위를 최고 의결기구로 두고 그 아래 한은을 배치하는 구도였다. 그러자 한은이 발끈했다. 재무부가 금통위원을 포섭하면 다시 ‘출장소’로 전락하는 게 아니냐는 위기감에서였다. 격론 끝에 금통위가 한은 아래로 가는 현재 구도로 결판났다. 7명의 금통위원 가운데 한은 총재와 부총재는 당연직이고 나머지 5명 중 한 명도 한은 총재가 지명권을 가졌다. 금통위가 한은의 머리가 아니라 ‘총재의 거수기’란 비아냥을 듣게 된 까닭이다.

여기다 한은은 독립의 대가로 은행감독원이란 손발도 떼줘야 했다. 은행원은 눈치가 9단이다. 감독권한을 잃은 한은은 이빨 빠진 고양이 취급을 당했다. 자연히 속세와도 멀어졌다.

그럴수록 한은은 오그라들었다. 정부 관료가 금리의 ‘금’만 꺼내도 파르르 떨었다. 금리 결정은 한은 고유 권한인데 왜 정부가 밤 놔라 대추 놔라 하느냐고 핏대를 올렸다. 심지어 98년 봄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과 협상해 살인적이었던 초고금리를 낮추기로 합의하자 한은이 어깃장을 놓기도 했다. 경제 걱정 보다 금리 결정권이란 밥그릇 지키는데 연연하다는 인상을 스스로 심었다.

소극적이란 힐난을 받을 때마다 한은은 감독권한이 없기 때문이라고 항변한다. 벤 버냉키 미 연준 의장이 양적완화라는 극약처방을 내기 전까지는 그런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중앙은행 무기고엔 가공할 미사일이 즐비했다.

물론 발권력을 가진 중앙은행이 너무 재기 발랄한 건 위험하다. 금리나 돈은 특정 산업이나 지역에만 영향을 미치는 스마트 미사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산업과 지역을 가리지 않는 핵폭탄이다. 잘못 다루면 경제 전체를 결딴낼 수 있다. 그만큼 중앙은행은 무서운 힘을 가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일본·유럽은 물론 중국 정부마저 수습에 쩔쩔매고 있을 때 각국 중앙은행이 구원투수로 등장한 까닭이다.

마침 강봉균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한국적 양적완화’라는 포장으로 한은의 역할을 재조명했다. 좀비기업과 1200조원이 넘는 가계부채 수술은 당장 우리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지금 메스를 들이대지 않는다면 훗날 무서운 암 덩어리가 되리란 건 자명하다. 그런데 정부는 여력이 없고 이번 선거로 국회마저 야당 손에 떨어졌다. 한국적 양적완화는 여당의 선거공약이었으니 야당이 이를 받아줄 리는 없다. 그러나 구조 개혁을 해야 한다는 절박함과 지금 이를 감당할 능력이 있는 건 한은밖에 없다는 아이디어는 살 만하지 않나. 관료 출신 제안이라고 무조건 걷어찰 게 아니다. 오히려 한은의 힘과 능력을 보여줄 기회다.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한은이 당장 주택금융공사나 산업은행의 채권을 사줄 순 없다. 그러자면 한은법을 고쳐야 한다. 그러나 현행 법으로도 두 기관에 증자를 해줄 순 있다. 창의력만 발휘하면 한은이 구조 개혁에 돈을 쏘아줄 길은 얼마든지 있다. 19일엔 현재의 금통위원이 여는 마지막 금통위가 열린다. 다음 회의 때는 7명 중 4명의 금통위원이 교체된다. 떠나는 금통위원으로선 마지막 기회다. ‘남대문 상아탑’의 일원으로 기록되느냐, 수렁에 빠진 경제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진 소방수로 기억되느냐. 선택은 금통위원들의 몫이다.

정경민 경제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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