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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흔든 시 한 줄] 김이나 작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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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나
작사가

남에게 줄 수 있는 이 기쁨도 그냥 받은 것.
땅에서. 하늘에서. 주위의 모두에게서
나는 너무 많은 것을 그냥 받았다

- 마종기(1939~), ‘과수원에서’ 중에서
 


봄날의 푸른 싹, 지난밤 내린 비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선물 아닐까


인간의 보잘것없음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주로 자연의 힘을 꺼내 든다. 하지만 자연은 우리의 생이 결코 허무하지 않다는 것도 깨닫게 해준다. 자연은 늘 거기 있기에 그 이야기가 잘 들리지 않을 뿐이다. 종종 죽음이 두려운 이유를 생각해본다. 모든 것이 나를 떠난 외부적인 것이란 점에서 생이 공허하게 느껴진다. 말하자면 나는 나의 남편이, 또는 나의 부모가 나의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두렵다. 죽음보다 삶이 나은 이유를 내 안에서 찾지 못하는 게 늘 찜찜했다.

어느 때부턴가 매일 해가 뜨고, 때가 되면 비가 오는 세상의 이치가 ‘살아라’라고 말해주고 있는 거라고, 내 멋대로 받아들였다. 봄날 돋아나는 싹이나 지난밤 비에 젖은 흙이 그렇게 반가웠다. 내가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우연한 생물학적 발생이 아닌 선물 같은 거라는 걸, 이 시를 통해 새삼 느꼈다. 또 누군가에게 베푸는 것을 나의 아량으로 여기던 마음마저 ‘남에게 줄 수 있는 이 기쁨도 그냥 받은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시의 마지막 글귀처럼, 이 깨달음이 ‘깊이’ ‘자주’ 생각나기를 바란다.

김이나 작사가

'과수원에서'
-마종기


시끄럽고 뜨거운 한 철을 보내고
뒤돌아본 결실의 과수원에서
사과나무 한 그루가 내게 말했다
오랜 세월 지나가도 그 목소리는
내 귀에 깊이 남아 자주 생각난다

-나는 너무 많은 것을 그냥 받았다
 땅은 내게 많은 것을 그냥 주었다
 봄에는 젊고 싱싱하게 힘을 주었고
 여름에는 엄청난 꽃과 향기의 춤.
 밤낮없는 환상의 축제를 즐겼다
 이제 가지에 달린 열매를 너에게 준다
 남에게 줄 수 있는 이 기쁨도 그냥 받은 것.
 땅에서. 하늘에서. 주위의 모두에게서
 나는 너무 많은 것을 그냥 받았다

-내 몸의 열매를 다 너에게 주어
 내가 다시 가난하고 가벼워지면
 미미하고 귀한 사연도 밝게 보이겠지
 그 감격이 내 몸을 맑게 씻어주겠지
 열매는 음식이 되고. 남은 씨 땅에 지면
 수많은 내 생명이 다시 살아나는구나
 주는 것이 바로 사는 길이 되는구나

오랜 세월 지나가도 그 목소리는
내 귀에 깊이 남아 자주 생각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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