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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도 혁신 안 하면 문명사적 변화 감당 못해

김춘식 기자



 

더 나은 인간, 더 나은 세계를 향한 교육-. 경희대가 내세우는 모토다. 2011년 교양대학인 후마니타스(humanitas) 칼리지를 세웠고, 이번 봄 학기부터는 학생들의 ‘독립연구’ 교과를 신설했다. 후마니타스 칼리지가 학문 간 경계를 허문 융·복합 교육에 시동을 걸기 위한 시도였다면 독립연구 교과는 학생들이 자율적이고 창의적으로 학습하는 걸 돕는 시스템이다. 다음달 개교 67주년을 맞는 경희대가 혁신의 ‘세 번째 화살’을 쏘았다. 교수·교직원·학생이 참여하는 ‘21세기 대학 혁신위원회(혁신위)’를 띄운 것이다. 영문명 Committee for Global Eminence에서 알 수 있듯이, 문명사적 전환기에 요구되는 지구적 문제를 주도적으로 풀어나가기 위한 대학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선 결국 혁신밖에 없다는 고민이 배어 있다. 조 총장은 오는 9월 대학의 미래를 성찰하는 세계 지성인의 연대 World Academy of Art and Science와 국제회의를 개최, 문명전환과 고등교육의 역할에 대한 토론을 벌인다. 연말엔 혁신보고서를 발표할 계획이다.

[손지애의 톡톡 인터뷰] 대학 혁신 전도사 조인원 경희대 총장



혁신을 이끌고 있는 조인원(62세, 사진) 총장을 지난 7일 만났다. 그는 “우리 모두 AI(인공지능) 시대의 도래를 알고 있었지만 미국·유럽에 비해 우리는 대비를 못 해온 것 같다”며 “대학이 학생들과 미래의 시나리오를 논하고 이를 준비하게 하는 것은 이제 선택사항이 아니고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또 “문명의 진보는 물적 풍요를 가져다주지만 동시에 인류를 위협하는 기후변화와 생태교란, AI의 오용으로 인한 디스토피아를 초래할 수 있다. 인간의 욕망을 인간친화적, 자연친화적으로 만들어가는 것 역시 교육에서 빼놓을 수 없이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목련이 핀 창가에 앉아 환담하는 조 총장과 손 교수.



-요즘 대학들이 혁신을 외치는 이유가 뭔가.



“빈부격차와 인간소외의 문제, 환경훼손, 기후변화, 자원고갈 같은 인류의 문제가 그 심각성을 더해가고 있다. 물적 풍요와 함께 커지고 있는 문명사적 위협 요인들에 대한 해결책이 제시돼야 한다는 필요성에 대학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한다는 반성의 결과라고 본다. 전통적인 학문의 기반은 이어져야하지만 학문은 결국 인간과 세계를 위한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변화를 통해 우리가 당면한 인류의 문제를 더욱 적극적으로 풀어가야 한다. 대학이 단지 경제성장과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배출에 치중하는 것은 대학의 본령을 편협하게 규정하는 것이다. 인류와 지구 문제에 대한 책임은 국제기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정부와 사회, 그리고 대학에도 있다. 대학의 공적 책임에 대한 인식이 재생돼야 할 시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경희대는 꾸준히 혁신해오지 않았나.



“제일 중요한 것은 학문 간 장벽을 넘어설 수 있는 교류나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지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예를 들어 경제학·정치학·지리학 같은 하나의 전공만으론 풀 수 없다. 교류 없는 학문은 앞으로 학문 자체로도 성립하기 힘들지 않을까 한다. 경희대는 5년 전 후마니타스 칼리지를 설립해 학생들이 인문학, 우주 생성과 문명의 진화 같은 과목들을 함께 배우면서 미래적 사유에 대한 교육과 학습이 이뤄지도록 했다. 학생들의 선호도도 높아졌고, 보람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혁신 과제들을 어떻게 실천해나갈 계획인가.



“5개 클러스터, 다시 말해 스쿨을 형성하는 것부터 시작하려 한다. 5개 영역은 인류문명, 바이오헬스, 미래과학, 문화예술, 그리고 사회체육 클러스터로 선정했다. 이 5개의 클러스터가 기본적으로 교육 연구의 연계협력을 촉진하는 역할을 맡을 것이다. 학생들이 본인 전공 이외에 향후 설립될 스쿨서 또 하나의 전공을 할 수 있게 해주자는 취지다. 예를 들자면 나는 문학을 전공하지만 인류 보건을 위해 국제기구에 진출하고 싶다면, 바이오헬스 클러스터가 제공하는 전공분야를 선택해 복수학위를 취득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먼저 ‘미래융합공학대학’과 ‘바이오헬스융합대학’이 신설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인문사회과학이나 예체능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자신이 속한 학과와 신설될 스쿨의 복수 학위를 받을 수 있게 된다. 대학이 고질적으로 갖고 있던 학문 간의 벽, 대학 간의 벽을 넘어설 수 있는 유연한 제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알파고 쇼크를 어떻게 받아들였나.



“꽤 오래 전부터 예측되어 왔던 과학기술 축적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인공지능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기도 하겠지만, 만약 그것이 인간친화적이지 않다면 큰 재앙이나 위협을 초래할 수도 있다. 기술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 인간에 대해, 자연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우리가 꿈꾸는 더 편한 세상, 풍요로운 세상이 올 수도 있다. 반대로 다양한 형태의 범죄와 폭력에 악용될 수도 있다. 이 두 가지 가능성이 공존한다. 과거에 핵무기가 나왔을 때도 그랬다. 인간이 잘 관리할 수 있을까에 대한 우려가 많았다. 자연재해로 인해 핵 문제가 지구에 타격을 줄 수 있는 가능성, 테러집단의 핵무기 소유 문제 등에 대해 더 깊이 생각했어야 했다. 알파고도 마찬가지다. 완전범죄를 꾀하는데 악용될 수도 있고, 테러와 전쟁을 치르는데도 활용될 수 있다. 인공지능의 시대가 예견하는 직업구조, 사회구조의 큰 변동에 따른 대량 실업 문제와 함께 기술의 윤리와 인간관계를 이제부터 더 깊이 고민해야 한다.”



-AI 시대에 대학의 책무는 뭘까.



“도래할 ‘post-human 시대’에 대비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말하자면 인간의 지식 뿐 아니라 창의나 감성의 데이터베이스화 문제도 깊이 생각해야 한다. 인간의 마지막 보루인 그런 영역이 혹 인간과 유사한 기계에 탑재된다면 말 그대로 큰 재앙이 초래될 수 있다. 대학은 그 가능성에 대해 경고하고 고민하고 치열한 논쟁을 벌여야 한다. 경제성장을 이끌어 내야하는 정부와 이윤의 재생산을 기하는 기업의 더 많은 관심과 경각심을 촉구해야 한다. 그것이 이 시대 대학에 주어진 책무가 아닌가 한다. 물적 풍요와 함께 지속가능한 인간의 미래를 이어가는 것, 그것이 대학과 지성사회에 주어진 긴급한 과제다. 현실적 대처방안을 모색함과 동시에 긴 호흡으로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해야한다.”



-하지만 기업과 사회가 요구하는 스펙을 갖춘 인재를 배출해야 하는 현실적 문제도 있지 않나.



“최근 사회에 회자되는 그런 요구는 대학이 학생들을 교육시켜 산업현장에 즉각 투입될 수 있는 인재를 키워달라는 것이다. 그런 필요는 이해하지만 우리는 더 깊이 생각해야 한다. 사회와 기업이 당장 필요로 하는 인재들을 배출하라는 것은 말하자면 MBA 같은 지식을 갖추고, 현장이 요청하는 ‘스펙’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너무 단기적인 시각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일회용품과 같은 인재’를 키우는 것은 아주 위험한 발상이다. 또 기업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요즘은 지식순환이 너무 빠를뿐더러, 사회와 기업이 요청하는 현장성은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과 지혜를 담보해야 그 빛을 발한다.



대학은 중장기 안목과 식견을 배양하는 교육을 하고, 기업이 필요한 기능은 기업에서, 정부가 필요한 기능은 정부에서 교육시켜야 한다고 본다. 대학에서는 전문지식 외에도 미래세대가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데 필요로 하는 지식과 지성의 근간을 가르쳐야 한다. 기업과 사회, 정부의 시각이 달라졌으면 한다. 단기적 필요와 중장기적 필요를 조화롭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학도 물론 변해야한다고 본다. 시대의 빠른 변화와 함께 사유혁신을 기해 다가올 ‘미래의 충격과 가능성’을 동시에 준비해야 한다.“



-학생들과 대화를 많이 하는 총장으로 알려졌다. 학생들의 절규를 듣고 있나.



“지난해 ‘미래로의 여정’이란 주제를 놓고 학생들과 몇 차례 대화를 나눴다. 학생들이 현실과 이상의 괴리, 풍요로운 정신세계에 대한 갈증, 인격 배양에 대한 강한 욕구, 그리고 소망하는 자아와 지금 만들어가는 자아의 큰 거리감을 토로했다. 희망하는 삶과 너무 동떨어진 현실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인식에서 오는 자괴감, 절규, 심하게 말하면 분노를 느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다면 어떤 대학이 좋은 대학일까.



“수능 성적이 좋은 학생들이 많이 들어가는 대학, 산학 협력을 잘하는 대학, 취업을 잘 시키는 대학, 그런 기준들이 주종을 이루면 한국의 대학들은 현재의 모습에서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이 부분을 과감히 넘어서는 틀의 변화가 필요하다. ‘당장 현장에 투입될 수 있는 인재’가 아니라 ‘시대와 문명의 변화가 요청하는 인재’를 배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학이 그런 교육과 학습의 장을 마련하고 있는가에 대한 새 기준이 필요하다. 개인의 성취와 함께 지속가능한 미래를 준비하는 교육·연구·실천의 결합이 경희대의 지향이다.“



-학생과 교수들의 각성도 필요할 것 같다.



“학생들이 명문대학이 무엇인지 대한 철학을 스스로 정립해야 한다. 개인적 성취도 매우 중요하지만 내가 우리 사회에, 우리나라에, 인류와 지구의 미래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지식과 안목, 지성을 배양하는 것도 중요하다. 교수의 연구도 승진을 위한 개인적 업적을 넘어 미래세대와 인류사회, 문명 진보에 기여하고 있는가에 더 주목해야한다고 본다. 교육과 연구, 그리고 대학의 공적 책임 부문에서 큰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조 총장의 혁신의지와 실천노력이 우리 대학 과 사회에 확산돼 지금과 다른 미래가 열릴지 주목 된다.



 



손지애 이화여대 초빙교수?jieaesohn@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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