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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영의 컬처 스토리] 뉴욕타임스 혹평 극복한 김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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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갑갑한 느낌의, 추상에 가까운 풍경들이 끈적끈적한 안료의 겹겹 반죽 속에 빠져, 오도 가도 못하는 것만 같다. 이 한국 화가에게는 아시아적 영향의 흔적이 없다.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으로 보인다.”

김환기(1913~74)가 뉴욕으로 이주한 후 처음 연 개인전(1964년)에 대해 뉴욕타임스(NYT) 미술 기자 스튜어트 프레스턴은 이렇게 신랄한 단평을 했다. 이 신문은 그전부터 현재까지 미술 기사를 중요하게 다루고 그 영향력 또한 크다. 그러니 NYT의 혹평은 김환기에게 적지 않은 타격이었다. 그의 반려자이며 일등 조력자였던 김향안에 따르면, 그 기사 때문에 전시작의 미술관 구매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김환기는 ‘내가 누군데 몰라보고…’ 하며 발끈해서 서울로 돌아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는 한국미술계 리더 중 한 사람이자 홍익대 미대 교수로서 많은 벗들과 지지자들에 둘러싸여 서울에서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또는 파리에 다시 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56년부터 59년까지 파리에 머물며 몇 차례 개인전을 성공적으로 열었었으니까. 게다가 그는 20세기 초 세계 현대미술의 조류를 이끈 파리를, 새로 부상한 뉴욕보다 훨씬 높이 평가했었다.

그러나 김환기는 뉴욕에 남았다. 쉰이 넘은 나이에 과거의 명성과 지위를 뒤로 하고, 그야말로 ‘계급장 다 떼고,’ 현대미술의 전쟁터와도 같은 뉴욕에서 싸웠다. 63년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에서 예전보다 “기운이 없는” 유럽 회화들, 그리고 그와 반대로 힘이 넘치는 미국 추상표현주의 회화를 본 뒤, 뉴욕행을 감행한 그였다. 그는 미술의 변방이었던 미국이 중심으로 떠오르는 것에 자극을 받았고, 한국미술도 언젠가 그렇게 되길 꿈꿨다. 그리고는 그가 늘 말해온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미술”을 실현할 장으로 뉴욕을 택했다. 그러니 물러설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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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운월(雲月)>, 1963, 캔버스에 유채, 193x129cm


그런데 ‘운월’(1963)(그림1)을 포함해서 64년 뉴욕 개인전에 나온 작품들은 분명 한국적 모티프를 담고 있었는데도 왜 NYT 프레스턴 기자는 “아시아적 영향의 흔적이 없다”고 평했을까? 구름 ·달 ·산이 동아시아 시각문화에서 갖는 전통과 의미에 무지했던 탓이다. 김환기는 그것에 의기소침하거나 분노하기보다, 타문화권 감상자의 배경지식 부족을 극복하고 보편적으로 어필하는 방법에 대해 고찰하는 계기로 삼은 듯하다. NYT의 혹평에 무너지지도 휘둘리지도 않았지만, 귀를 아주 닫지도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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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파리 생루이섬의 아틀리에에서 포즈를 취한 김환기.


이미 김환기는 NYT 혹평 이전부터 스타일 변화를 꾀하고 있었다. 그는 원래 달 ·달항아리 ·새 ·구름 ·산 등 한국 자연과 고미술의 모티프를 두터운 질감의 반구상-반추상 유화로 표현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이 스타일을 파리에서도 바꾸지 않아서, (사진2 참고) 미술사학자 최순우가 “불란서[프랑스] 물만 마시다 와도 모두 그림들이 홱 바뀌는데 수화(樹話 김환기의 호) 그림은 조금도 변하지 않아서 나는 좋다”라고 했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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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6-IV-70 #166>, 1970, 코튼에 유채, 232 x172cm


하지만 김환기는 뉴욕에 와서는 좀더 세계보편적인 완전추상으로 전환해가고 있었다. 대신 동아시아적 전통은 NYT가 혹평한 두터운 질감을 수묵화 같은 맑고 얇은 질감으로 바꾸는 것으로 실현했다. 이런 변화의 실험을 거듭한 끝에 탄생한 것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0)(그림3)로 대표되는 1970년대 전면점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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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12-V-70 #172>, 1970, 코튼에 유채, 236 x 173cm


김환기의 뉴욕시기 전면점화는 그전보다 훨씬 거대해진 화폭에 무수한 점들이 나타난다. (그림4)하나 하나의 점들이 부드럽게 번지는 각진 테두리로 둘러싸여 있어서 광채의 울림을 지닌 별들을 연상시킨다. 그 별 같은 점들이 완전히 규칙적이지도 않게, 또 완전히 불규칙적이지도 않게, 질서와 무질서 속에서 리드미컬하게 반복되어서, 화폭을 넘어서 무한히 퍼져나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것이 불러일으키는 우주적 숭고의 감정은 마크 로스코, 바넷 뉴먼 등 소위 ‘색면파’라고 불리는 일군의 뉴욕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이 추구한 숭고의 미학과 연결되는 부분이다.

그와 동시에 김환기의 전면점화는 동아시아의 철학도 담고 있다. 점화 속 사각형 테두리를 지닌 둥근 점들은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오랜 동아시아 우주관을 함축하고 있다. 게다가 김환기가 일기에서 “별들,” “뻐꾸기 노래” 또는 “친구들”을 생각하며 점을 찍었다고 했듯이, 그의 점들은 천상의 별인 동시에 지상의 음향이며 또한 인간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천지인(天地人) 합일의 동아시아적 관념의 반영이다. 김환기의 그림에 영감을 준 김광섭의 시 ‘저녁에’의 구절, “저렇게 많은 중에서 /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중략) 이렇게 정다운 / 너 하나 나 하나는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에서 볼 수 있듯이.

이렇게 서구적 숭고의 미학과 동아시아 철학을 모두 반영한 김환기의 전면점화를 보며 NYT도 김환기에 대해 새로운 평가를 했다. NYT 미술비평 수석기자이며 저명한 미술사가인 존 캐너데이는 김환기의 1971년 개인전 평에서 “그가 총애하는 모티프인, 불규칙한 둥그스름한 점들을 둘러싼 조그만 사각형들을 다루는 그만의 기발함(ingenuity)은 무궁무진한 것 같다.”며 “매력적인 전시”라고 평했다. 그 후 김환기에 대한 국제적 인지와 평가의 확대는 계속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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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무제 Untitled>, 1970, 캔버스에 유채, 222x170.5cm


그의 뉴욕시기 전면점화가 최근 국제 미술시장의 총아로 떠올랐다. 지난해 10월 전면점화 한 점이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한국미술 경매 최고가를 기록한 것에 이어서, 반 년만인 지난 주에 그의 또 다른 전면점화(그림5)가 약 48억 7천억 원에 낙찰돼 그 기록을 경신했다. 하지만 김환기 작품의 신고가 행진은 이제 시작일 뿐일 수도 있다. 김환기가 비교될 만한 로스코의 경매가는 우리 돈으로 몇백억 원에 달한다.

물론 미술작품의 고가행진은 부유한 컬렉터들과 화랑 및 경매사들의 배만 불리는 것 아니냐는 불편한 질문이 있을 수 있다. 게다가 시장 가격이 그 작가의 진정한 가치인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도 있을 수 있다. 미술사적으로 중요하지만 시장에서 거래되기 힘든 작가들도 많고, 또 지금 시장에서 비싸게 팔리지만 미래의 미술사에서 그의 이름이 과연 기록될까 싶은 작가들도 많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 가격은 작가의 인지도와 순환적 상관관계가 있음을 무시할 수 없다. 파블로 피카소가 20세기 모던아트의 아이콘이 된 시발점은 그의 초기 그림에 투자한 선구적 아트펀드 ‘곰의 가죽’이 1914년 대박을 치고 언론에 대서특필되어 시장 밖의 관심까지 끌면서부터였다. 그런 역사를 돌아볼 때, 미술 열강의 작가들에 비해 저평가되고 있는 한국 작가들의 해외 경매가에 신경 쓰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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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뉴욕 스튜디오에서 전면점화를 창작 중인 김환기


이런 상황에서 김환기는 누구보다도 세계 미술시장에서 크게 부상할 가능성이 높은 작가다. 그의 추상은 한국적 요소를 지니면서도 세계 모던아트사의 맥락에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김환기 뉴욕시기 전면점화의 기록 행진에 대해서 ‘왜 김환기인가’라고 친구들이 내게 묻는다. 그러면 나는 앞서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김환기의 전면점화에는 기존의 명성과 지위를 스스로 전복하고 변화와 도전을 감행한 예술가의 정신이 담겨있다고. (사진6) 그리고 덧붙인다. “국제 미술시장과 미술사적 평가에서 김환기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라고.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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