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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의 시시각각] 13일은 친노와 친박 심판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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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논설실장

아무리 총선이 여론조사의 무덤이라 해도 여전히 선거판세 읽기에 여론조사만큼 요긴한 잣대는 없다. 주요 여론조사들을 종합해 그 중간값을 추정해 보면 새누리당 166석, 더불어민주당 91석, 국민의당 30석이다. 여기에 9석 정도의 친여 무소속도 감안해야 한다. 이대로 선거 결과가 이어지면 새누리의 압승이다. 더민주는 100석 이하에다 호남까지 국민의당에 빼앗겨 참패를 당한다.

어쩌면 13일 저녁 SNS에는 이런 댓글로 야단일 것이다. “부정선거다. 더민주의 정신적 승리” “대한민국 국민이란 게 창피하다” “이민이나 가야겠다” “노인 투표권을 빼앗자”…. 하지만 오래전부터 소수의 목소리 큰 진보는 SNS 댓글로 말하고 침묵하는 다수는 조용히 투표로 응징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진짜 민심은 투표함을 까봐야 안다.

선거는 첫째가 구도, 둘째 바람, 셋째가 인물 싸움이다. 이번 총선에서 바람이나 이슈는 증발됐다. 막장 공천에 따른 ‘그 나물에 그 밥’으로 여야 인물 대결도 물 건너갔다. 결국 남은 건 구도밖에 없다. 소선거구제 아래에서 야권 분열은 쥐약이다. 지금 같은 일여다야(一與多野) 구도에서 야권은 죽어도 못 이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이하 경칭 생략)는 “우리 지지자의 30%가 새누리당에서 넘어왔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55%가 더민주에서 넘어온 사실은 숨긴다. 국민의당이 1석 늘면 더민주는 2석을 잃고, 새누리당은 수도권에서 1석을 더 챙긴다. 무시무시한 선거구도가 낳은 비밀이다.

더민주의 참패는 ‘운동권의 자멸’이나 다름없다. 친노 진영은 “선거로 심판해 달라”고 했지만 지난 12년간 유권자들은 어김없이 야당을 심판해 주었다. 이번에 또 참패하면 친노는 존립 기반 자체를 고민해야 할 처지다. 히트 상품 못 만들고 옛날 고객만 관리하는 회사는 망하기 마련이다. 친노는 2009년 노무현의 비극적 자살로 화려하게 부활했지만 후속 상품을 개발하지 못했다. ‘닥치고 반대’에만 매몰됐고, 주특기인 ‘무조건 단일화’는 무난한 패배만 불렀을 뿐이다. 13일 이후 야권은 총선 패배 책임론의 홍역을 앓을 것이다. 문재인·김종인을 대신해 손학규나 김부겸이 야권 개편의 키를 쥘지 모른다. 어쩌면 안철수가 태풍의 눈이 될 수도 있다. 지역구의 호남향우회 여론에 민감한 수도권 비노(非盧)부터 국민의당에 투항하면 자칫 더민주는 공중분해될지 모른다.

13일 심판의 도마에 오르는 것은 친박도 마찬가지다. 새누리가 과반을 차지해도 친박의 손익은 따로 계산해야 한다. 이한구를 앞세운 친박의 공천학살은 자충수였다. 유승민을 찍어내느라 대구와 수도권에서 10석 이상을 날렸고, 수도권 친박들은 비박 후보들에게 줄줄이 나가떨어졌다. 그럼에도 유승민과 친여 무소속이 대거 당선될 분위기다. 패착의 근본 책임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있다. 가장 먼저 “배신 정치를 심판해 달라” “진실한 사람을 선택해 달라”며 한국판 ‘문화혁명’을 주문했기 때문이다.

친박의 가장 뼈아픈 손실은 ‘박근혜’라는 정치적 브랜드가 결정적으로 훼손됐다는 점이다. 이제 ‘친박’은 주홍글씨나 다름없다. 수도권과 부산·경남의 새누리당 후보들은 박근혜 마케팅을 접었다. 최측근이던 구상찬 후보마저 “나는 이미 잘려나간 짤박”이라며 스스로를 부인했다. 단지 대구의 진박 후보들만 40년 전 낡은 흑백사진처럼 “한번만 살려 달라”며 무릎 꿇고 읍소하는 중이다.

친노와 친박을 향해 13일 거대한 쓰나미가 밀어닥칠 조짐이다. 과연 친노와 친박이 성난 민심의 파도를 뚫고 스스로 탈바꿈해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일이다. 여기에는 영국의 토니 블레어 전 총리의 자서전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는 18년 만에 노동당 정권을 되찾아온 역사를 이렇게 회고했다. “영국을 바꾸는 것보다 노동당을 바꾸는 게 더 어려웠다. 노조가 주물러온 당수 선거를 바로잡고 ‘공동 소유’라는 당헌까지 바꿨다. 오로지 ‘교육, 또 교육’이었다. 내부 설득이 가장 어렵고 힘들었다.” 정권교체보다 정치교체가 그만큼 더 어렵다는 이야기다. 

이철호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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