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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칼럼] 아직도 요원한 정책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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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변화가 정말 아쉽다. 적어도 문제점과 개선 방향은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는 듯한데 실현하려는 의지가 부족하다. 지금 한창인 총선 이야기다.

선거가 시작되면 모든 정당과 정치인, 언론은 ‘정책선거’를 다짐한다. 그러나 막상 선거가 진행될수록 ‘정책’은 뒷전이고 ‘색깔 칠하기’ ‘지역감정’ 등의 구태가 선거를 주도한다. “표 앞에 장사(壯士) 없다”는 말을 변명 삼아 모든 수단을 동원해 오직 승리를 향해 ‘돌격 앞으로’다. 이기는 게 최선인 그들에게 정책은 한가한 얘기일 뿐이다. 지금까지 이런 행태에서 벗어난 선거가 있었던가?

2012년 대통령 선거는 정책선거의 선례가 될 뻔했다. 유력한 여야 후보 모두가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주장해 토론과 경쟁의 지점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당시 박근혜 후보가 김종인 현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을 내세워 공약한 경제민주화는 단지 외연 확장을 위한 선거 전략에 불과했다. 따라서 활발한 정책 토론이 벌어졌다면 결국 재벌 대기업 중심이라는 자신의 본래 모습이 드러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런데 경제민주화를 강하게 주장하던 야권의 문재인·안철수씨가 ‘후보 단일화’를 우선함으로써 경제민주화 관련 정책선거를 실종시켰다. 이는 반드시 짚어야 할 문제다. 정책선거 선례를 만드는 데 실패했을 뿐 아니라 우리 시대의 과제인 경제민주화를 실종시키는 데 일조했다. 그렇다고 정치적 책임을 진 것도 아니다.

정책선거가 중요한 이유는 정책 논쟁이 대중의 관심을 유도해 정책의 이해도를 높이고 정책을 자신의 삶과 직결되는 문제로 받아들이게 하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대중은 선거 이후에도 정책 실현을 지속적으로 요구하며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지 않도록 감시할 것이고, 주권자로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며 더 나은 삶을 만들어 갈 수 있다. 또한 유권자는 선거 과정이나 그 이후 자연스럽게 드러난 정치인의 자질을 평가해 자리만을 탐하는 철학 없는 정치꾼이 퇴출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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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번 국회의원 선거는 어떤가? 과거의 구태가 아예 없지는 않지만 ‘종북’ ‘북풍’ ‘지역주의’를 주요 선거전략으로 사용하지 않는 점은 진일보한 변화다. 그러나 상대방에 대한 비아냥과 조롱은 여전하고 주권자가 향후 4년간 자신의 삶을 결정할 정책과 정책집행자를 비교하고 선택할 기회는 턱없이 부족하다.

물론 정책선거 징후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여당은 ‘야당의 발목 잡기’로 경제가 어렵게 됐다며 경제민주화보다는 양적완화를 주장하고, 야권은 ‘여당의 대기업 중심의 경제정책’으로 경제가 실패했다며 경제민주화·더불어성장·공정성장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정책 대결의 기본 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여기에 ‘할배 경제배틀’로 세간의 관심을 끈 강봉균 새누리당 선대위원장과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선대위원장 간 설왕설래가 더해지면서 정책 경쟁에 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기도 했다.

그런데 딱 여기까지였다. 논쟁은 광범위하게 대중의 참여를 끌어들이는 국면으로 진행되지 못했다. 경제민주화와 낙수주의 경제정책의 실효성을 검증하고 대안을 마련할 기회가 또다시 흐지부지된 것이다. 선거는 여론의 ‘말문’이 열리고 정책과 사람을 검증할 기회가 확장되는 공간이다. 이렇게 열린 공간을 ‘조롱과 모멸의 말’로 가득 채워 어쩌자는 것인가? ‘정책의 말’이 사라진 선거는 그저 상대를 쓰러뜨려야 하는 정글일 뿐이다. 참 답답한 일이다.

정책선거를 말하면서도 흥미 보도를 우선하는 일부 언론의 책임도 작지 않다. 선거 때만 되면 판세 분석이라는 이름으로 ‘경마식 여론조사’가 신문과 방송을 가득 채우기 일쑤다. 각 당이 내놓은 공약의 쟁점을 비교한 분석기사는 별로 없고 상대 당을 조롱하는 언사는 매일 크게 오른다. 선거를 가십거리로 만드는 보도 행태다. 이러니 언론이 정치 불신을 되레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정책선거 의지가 부족한 정당과 정치인의 책임이 크다. ‘세계 경제 무지(無知)’ 발언에서 보듯이 양당 선대위원장 간 논쟁은 정책 논쟁이 아니라 비난과 조롱에 불과하다. 세계 경제의 흐름, 헌법에 있는 경제민주화 해석, 양적완화의 유효성 등 중요한 쟁점별 주제가 당 대표 간 토론이 아니라 언론이나 유세를 통해 상호 비난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이런 토론 없는 비난전은 각자가 옳다고 주장하는 경제민주화와 양적완화 정책이 한국에서 과연 어떻게 적실성을 가질 수 있을지 제삼자가 참여해 토론할 기회까지 앗아간다.

이번에도 정책선거에 대한 기대는 물거품이 될 것 같다. 그러나 다음 선거는 정말 질 높은 정책 경쟁의 축제가 되기를 바란다. 정책선거는 정당과 정치인의 책임정치를 강화하고, 정치인의 질을 높이며, 주권자의 참여와 주권의식을 높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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