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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으로] 175㎝ 넘는 깔끔한 조직원 뽑아 금융업·M&A … 싸움은 ‘아웃소싱’

| 강남으로 몰리는 ‘기업형 조폭’
10년 새 부산·대구·광주·대전은 줄고
서울만 26개파서 40개파로 85%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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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이 서울로, 그중에서도 강남으로 몰린다. 본지가 최근 입수한 ‘대검찰청 특별관리 조직폭력단체 현황’에 따르면 서울에서 활동하는 특별관리 조폭은 2006년 26개 파에서 2016년 40개 파로 불어났다. 증가율 85%다. 지난 10년간 전국 5대 도시 중 특별관리 조폭 수가 늘어난 곳은 서울이 유일하다. 부산(15개 파→12개 파)·대구(20개 파→17개 파)·광주(19개 파→14개 파)·대전(12개 파→9개 파)은 감소하는 추세다. 특별관리 조직(전국 165개)은 조직원 수가 100여 명에 달하고 진출 사업 규모만 수십억~수백억원 수준인 ‘기업형 조폭’으로 검경이 수시로 동향을 파악하는 곳이다.

서울에서 조폭이 뿌리 내리는 곳은 단연 강남이다. 검찰 관계자는 “돈이 모이는 곳에 조폭이 있게 마련”이라며 “유흥업·성매매영업·대부업이 발달한 강남은 조폭들이 불법 수익을 내기 가장 쉬운 곳”이라고 설명했다. 2014년 말 기준으로 서울 강남구의 유흥업소는 604곳으로 서울 시내 25개 자치구와 비교할 때 압도적으로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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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신세계’에서 ‘골드문’은 건설·유통·대부업을 하는 업체로 등장한다. 폭력조직이 자금력을 키워 여러 사업에 진출한 경우에 해당한다. 골드문의 실세 정청(황정민 분·왼쪽)과 그의 오른팔 이자성(이정재 분)이 3세대 조폭의 전형으로 묘사됐다. [중앙포토]


◆전국구 조직 탈피 슬림화=서울 조폭의 본래 활동 무대는 강북이었다. ‘종로의 김두한, 명동의 이화룡’은 해방 직후의 공식이었다. 하지만 김두한이 정계로 뛰어들면서 서울은 무주공산이 됐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동대문 사단’을 이끌었던 이정재다. 자유당 비호 속에 야당에 대한 정치테러를 감행하면서 세력을 키웠다. 1960년대 군사정권이 들어서고 이정재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며 ‘정치깡패’ 시대가 막을 내렸다.

이후 육군 상사 출신 신상현이 명동·충무로·을지로 일대 조폭을 장악했다. ‘신상사파’는 70년대 경제성장과 함께 서울로 올라온 호남 지역의 젊은 조폭들과 맞서게 된다. 이른바 ‘3대 패밀리’로 불리는 서방파(김태촌)·양은이파(조양은)·오비파(이동재)의 등장이다. 이들은 지역상권을 장악한 뒤 보호비 명목으로 금품을 뜯어내는 ‘갈취형’ 1세대 조폭으로 분류된다. 향락문화 확산과 부동산 투기 열풍에 올라타 자금을 축적했다.

조양은은 ‘사보이호텔 사건’(75년)으로 실세로 부상했다. 당시 ‘오종철파’의 행동대장이던 조씨가 명동 사보이호텔에서 열리던 신상사파 신년회를 부하 세 명만 데리고 습격했다. 그는 이 사건에서 주먹으로 ‘맞짱’을 뜨던 전통(?)을 깨트렸다. 조폭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흉기를 들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이듬해 3월 김태촌이 무교동 엠파이어호텔에서 조씨의 보스 오종철을 기습적으로 공격했다. 김씨와 조씨는 숙명의 라이벌이 됐지만 ‘세기의 대결’은 이뤄지지 못하고 80년에 모두 구속됐다. 이 틈을 타 오비파가 세력을 키웠다. 하지만 오비파 보스 이동재도 88년 양은이파에 피습돼 중상을 입고 미국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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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으로 인한 사회문제가 잇따르자 검찰은 90년 전국 6대 지방검찰청에 강력부를 신설하고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검경은 두목급 200여 명을 포함해 조직폭력배 2만4000여 명을 구속하고 175개 폭력조직을 와해시켰다. 이 같은 강력 대처는 ‘사회 정화’ 효과를 내기도 했지만 조폭들이 교묘히 법망을 피하게 한 동기도 됐다. 1세대 두목들의 몰락을 본 2세대 조폭들은 비대한 전국구 조직이 아닌 중소 규모 형태로 조직을 슬림화했다. 기존의 갈취형 방식에 더해 기업형 범행을 저지르는 ‘혼합형’ 조직으로 진화했고 나이트클럽·호텔 카지노 등 합법업소 운영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전국 호텔 5곳과 슬롯머신 업소 9곳을 운영해 ‘슬롯머신 대부’로 불렸던 정덕진이 대표적이다.

| 갈취형에서 혼합형으로 진화
유흥업·성매매·사채업 위주서 탈피
건설업 등 겸업해 위험 분산시켜


◆이젠 ‘스마트 조폭’ 시대=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지난해 8월 전국 교도소와 구치소에 수용된 전·현직 폭력조직원 307명을 설문조사하고 이 중 41명을 심층 면접했다. 연구 보고서엔 1·2세대 조폭과 다른 3세대 조폭의 현주소가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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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폭력조직은 사업 한 가지보다 여러 가지를 겸업하는 경우가 많다. 불법 수익 창출에 따른 ‘리스크’를 고려한 위험분산 전략이다. 업종별로는 유흥업소(74.9%), 오락실·게임장(61.9%), 사채업·채권추심업(54.4%), 도박장·사설 경마장(50.8%) 순이었다.

이 중에서도 유흥업소 운영, 성매매 영업, 대부업은 조폭의 ‘3대 업종’으로 꼽힌다. 연간 매출액은 업종마다 최하 1000만원 이하부터 500억원 이상까지 다양하다. 대부업 쪽에서는 과반수(56.5%)가 5억원 이상의 상대적으로 높은 매출을 올렸고 유흥업도 48.2%가 5000만~5억원의 수익을 냈다. 성매매 영업의 매출액은 1000만원 이하(10%)에서 최고 500억원 이상(10%)까지 폭넓게 퍼져 있었다.

하지만 최근 폭력조직은 3대 업종이 아닌 다른 분야에 눈을 돌리고 있다. 경찰 단속과 경기 불황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새 영토로의 확장이다. 요즘 등장한 ‘스마트 조폭’들은 영화 ‘신세계’의 ‘골드문’, ‘공공의 적2’의 ‘거성’ 같은 지능화된 조직에 가깝다. 주요 진출 사업은 기업 인수합병(M&A)·금융업·건설업 등이다.

지난달 30일 구속기소된 인천 부평식구파 박모(40)씨 등 7명은 은행 대출심사 제도의 맹점을 교묘히 파고들었다. 이들은 실적이 없는 유령기업 두 곳을 인수한 뒤 연간 매출이 100억원대인 것처럼 회계서류를 꾸몄다. 이후 세무공무원 출신 조모(48·구속)씨가 작성한 허위 재무제표를 제출해 금융사 11곳으로부터 68억원을 대출받았다. 중소기업의 경우 국세청이 발급한 재무제표가 아니더라도 세무사가 써준 확인서만 있으면 대출을 허용해주는 은행의 업무관행을 노린 것이다.

| 조폭들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
월 100만원 이하 받는 조직원 37%
대기업 사원 수준 400만원 이상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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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조폭과 전통적인 갈취형 조폭이 공존하면서 이들 간의 양극화 현상도 나타났다. 형사정책연구원에 따르면 100만원 이하의 ‘열정페이’ 수준의 월급을 받는 폭력조직원들은 36.6%였다. 대기업 사원 수준(400만원 이상)의 월수입을 올리는 이들은 28.2%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이태원을 무대로 활동해온 이태원파는 키 1m75㎝ 이상에 깔끔한 외모와 영어 실력을 갖춘 ‘정규직’ 조직원을 뽑는다고 한다. 이들은 두목의 지시로 경비 용역이나 채권 추심 등 각종 사업을 따낸 뒤 실제로 힘쓰는 일은 지방 조직폭력배들에게 맡겼다. 일종의 ‘아웃소싱’ 구조다.

| 수사 강화 나선 대검 강력부
조폭 사건 부장검사가 주임 맡아
“미국·유럽처럼 잠입수사 해볼 만


◆조폭 잠입 수사 가능해질까=대검찰청 강력부는 올해 2월 처음으로 충북 진천에서 1박2일간 ‘전국 조폭전담검사 워크숍’을 열었다. 조폭의 진화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대검 강력부장인 박민표 검사장은 “앞으로 폭력조직 사건은 원칙적으로 부장검사가 주임검사가 되어 수사를 진행하는 등 수사 역량을 총동원하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영화 ‘무간도’ 등에 등장한, 수사 요원을 조직에 잠입시켜 벌이는 수사도 시도해볼 만한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형사정책연구원의 전현욱 박사는 “조폭 범죄는 관련자들이 증언을 기피하고 ‘꼬리 자르기’식으로 증거를 인멸해 수사가 매우 어렵다”며 “미국·유럽 등에선 수사관들이 범행에 가담할 것처럼 인상을 줘서 핵심 증거를 확보하는 함정수사 기법이 발달해 있다”고 말했다. 잠입 수사에는 위법 증거 수집 논란과 수사관의 안전성 담보 등의 걸림돌이 있다. 이 밖에도 유죄협상제도(Plea Bargaining), 참고인 강제소환제도 등도 관련 대책으로 논의된다.
 
조폭, 요즘 경조사 ‘병풍’도열 대신 타 조직과 친목 다지고 정보 교류

지난해 11월 2일 서울 잠실의 한 특급호텔 예식장. 월요일 오후에 열린 결혼식인데도 하객들이 타고 온 고급 승용차가 줄을 이뤘다. 250여 명의 하객 중에는 검은 정장을 입은 건장한 체격의 남성이 많았다. 호텔 안팎에는 부산에서 파견된 형사 등 경찰 인력 230여 명이 배치됐다. 이 결혼식의 신랑은 부산의 유명 폭력조직 칠성파의 행동대장 권모(58)씨였다.

애경사 모임은 조폭들에게도 중요한 ‘이벤트’다. 과거엔 깍두기 머리를 한 조직원들이 입구부터 길게 늘어서는 일명 ‘병풍’으로 조직의 세력을 과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요즘에는 이런 풍경을 보기가 쉽지 않다. ‘강력통’으로 분류되는 한 부장검사는 “최근 폭력조직들이 다툼을 자제하고 공존·연대를 강조하면서 조폭의 경조사는 타 조직과 친목을 다지는 형태로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조직과의 관계를 돈독히 유지하면서 ‘사업’ 정보를 공유하는 장으로 활용한다는 얘기다.

검찰은 경조사 때 조직폭력배들이 모여 위세를 부리면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의 ‘범죄단체 등의 구성·활동’ 관련 조항을 적용해 기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9년 대법원이 “(폭력 조직의) 회식·경조사 모임은 범죄단체 활동이 아니다”고 판결하면서 처벌이 어려워졌다. 검찰 관계자는 “참석자 수나 참석자 면면을 살펴보면 조직의 규모나 진출 사업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되기 때문에 요즘도 여전히 조폭들의 경조사 모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혁진 기자  analo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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