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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교수 병상에서 느끼는 절망·불안·공포 …

기사 이미지
홀(The Hole)
편혜영 지음
문학과지성사 210쪽
1만3000원

소설가 편혜영(44)씨의 새 장편소설이다. 가뿐한 분량, 아담한 크기, 구멍을 뜻하는 한 음절의 영어 제목을 달아선지 무척 단단한 느낌이다. 결코 호락호락하게 틈을 보이지 않겠다는 듯이.

주인공은 40대 후반의 대학 교수 오기. 그는 아내와 함께 짧은 지방 여행을 가던 중이었다. 교통사고로 아내는 죽고 자신은 눈을 한 번, 두 번 깜빡이는 것으로 예, 아니오 의사표시만 간신히 할 수 있을 정도로 큰 부상을 당했음이 차츰 밝혀진다. 소설은 “오기는 천천히 눈을 떴다. 눈이 부셨다”라는 문장들로 시작한다. 물론 병원에서다. 자연스럽게 소설은 고통스러운 치료 과정, 건강할 때 누렸던 권능과 즐거움들을 하나둘씩 빼앗기며 오기가 느끼는 절망과 불안, 분노와 공포를 전하는 심리 드라마로 흐른다.

그 내면의 고통을 부채질하는 건 장모의 표변이다. 장모는 종잡을 수 없는 인물로 그려진다. 얼핏 소설가 이력 20년에 육박하는 이 능란한 작가가 인물 형상화에 실패한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그게 아니라면 일부러 불친절한 것이다. 장모는 교양 있고 얌전하기만 한 부인은 아니었다. 남편을 조롱하고, 이웃 아이들의 소음을 참지 못하는 성마른 성격이기도 하다. 사위 간병에 지쳐 사위에게 독하게 군 끝에 돌이킬 수 없는 막다른 상황으로 몰고 간다. 이 ‘막장극’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결국 비밀은 드러나지만, 정작 작가의 의도는 다른 데 있는 것처럼 보인다. 속수무책 장모의 해코지를 몸으로 견뎌야 하는 오기의 딱한 처지를 생생하게 묘사하는 게 목적인 듯하다. 그렇게 사건이 중심이 될 때 인물의 성격 같은 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오기처럼 아니면 작가 편씨처럼, 어이 없는 상황에 상식적으로 반응하는 평균적인 인간이면 족하다. 누구나 조금씩은 정신병자이기 마련이라는 통념을 떠올리면 오기가 경험하는 막장극은 우리 삶의 모습과 그렇게 크게 다른 것도 아니다. 인생의 허방은 어디에나 있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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