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책 속으로] 돈버는 기술에서 예술로 진화한 광고

기사 이미지
광고로 읽는 미술사
정장진 지음
미메시스 340쪽
1만6800원

미술도 엄연한 소비 대상이다. 소비자들은 미술관에 가거나 작품을 구입하지 않아도 다양한 매체와 방식을 통해 감동·감각·감정을 소비한다. 스마트 기기와 결합해 새로운 양식을 낳기도 한다. 특히 광고가 미술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빌려 쓰면서 소비자들은 직·간접적으로 미술을 다량 소비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비평을 공부하고 문학·미술 평론가로 활동 중인 지은이는 회화와 영화, 광고로 이어지는 미술 콘텐트의 먹이 사슬에 주목한다. 그 과정에서 광고는 미술의 이미지를 차용하는 수준을 넘어 아예 스스로 하나의 예술로 자리 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스웨덴의 앱솔루트 보드카 광고다. 앱솔루트는 광고만으로 미국에서 15년 동안 매출을 140배로 끌어올린 기록이 있다. 광고학자들의 연구대상이 된 이유다. 이 회사는 초기에는 ‘앱솔루트 파리’ 식으로 브랜드 뒤에 매번 다른 단어를 붙여 신상품처럼 보이게 했다. 소비자들이 식상해 하자 미국 시장에선 팝아트 예술가인 앤디 워홀(1928~87)과 키스 해링(1958~90)에게 6만5000 달러를 주고 앱솔루트를 그림으로 그리게 해 홍보에 활용했다. ‘앱솔루트 워홀’ ‘앱솔루트 해링’ 같은 이름을 붙였다. 예술과 광고 간 ‘콜라보레이션’이다.

앱솔루트는 이런 미국 팝아트를 미술로 인정하지 않는 프랑스에선 색다른 방식을 선보였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건축·실내장식 등에서 크게 유행한 아르누보 양식에 눈을 돌렸다. 프랑스 건축가 엑토르 기마르(1867~1942)가 디자인한 아르누보 양식의 지하철 입구에 야간 조명을 넣어 보드카 병 모양으로 보이게 한 것이다. 앱솔루트가 마케팅에 활용했던 기마르의 공공 디자인은 이제 당당한 현대미술 작품으로 대접받는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그대로 떼어다가 작품으로 전시할 정도다.
 
기사 이미지

요하네스 얀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패러디한 항공사 광고. [사진 미메시스]


체코 출신의 일러스트레이터 겸 장식 미술가인 알폰스 무하(1860~1939)도 예술과 상업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무하가 아르누보 시절 프랑스에서 그렸던 극장·상점의 간판·포스터는 지금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와 비교할 정도로 예술 가치를 인정받는다.

지은이는 아르누보가 상업적·산업적 성격을 가진 디자인이 최초로 순수 미술이 된 역사적인 사례이며 이런 과정을 거쳐 이제는 순수와 응용 미술 간의 경계가 거의 사라졌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이런 역사는 ‘광고 미술을 말하지 않고는 미술을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한다고 강조한다.

아르누보의 전통은 한국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는 중앙차선제를 실시하면서 버스 승차장에 디자인을 적용했다. 작품성 있는 입간판·전광판·승차장 등을 설치해주고 그 대가로 광고운영권을 받는 프랑스의 다국적 옥외 광고업체인 제이씨드코(JCDecaux)의 작품이다. 공공 예술을 통해 시민들이 일상에서 미술을 만나고 있다.
 
예술의 생명까지 연장시키는 광고의 마법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에는 같은 이름의 그림을 비롯한 네덜란드 화가 얀 페르메이르(1632~1675, 영어식인 베르메르로 많이 알려졌다)의 작품이 줄줄이 등장한다. 미묘한 빛의 움직임을 살린 또 다른 걸작인 ‘우유를 따르는 여인’도 나온다. 사람을 끄는 묘한 매력의 두 작품은 광고에도 자주 등장한다. 전자는 호기심 많아 보이는 소녀의 눈동자 방향을 살짝 바꾸는 변형으로 쇼핑과 마일리지 혜택을 광고하는 항공사 광고에 이용됐다. 식품 기업인 네슬레는 후자를 유제품 광고와 브랜드 상징에 사용한다. 변형이 유제품의 변질을 연상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작품을 거의 원형 그대로 쓴다. 미술 작품이 제작 당시의 시대성과 용도를 뛰어넘어 현대에서 또 다른 용도로 힘을 발휘한 사례다. 예술의 생명력이다.

채인택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