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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의 시시각각] 2000억대 성공 신화의 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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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 논설위원

정부 시스템이 소통 부재 때문에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어떤 부작용이 생길까. 시스템 오류에 따른 책임을 개인에게 묻는 것은 적절한 것일까. 창업 초기의 벤처기업을 의미하는 스타트업계와 에인절투자가들이 최근 국가에 던진 질문이다.

발단은 호창성(41)이란 인물이 검찰에 구속되면서 비롯됐다. 스타트업 투자업체인 더벤처스 대표인 그는 이 바닥의 상징적 대표 주자다.

2013년 중소기업청은 민간인이 투자를 주도하는 기술창업 지원사업인 팁스(TIPS·Tech Incubator Program for Startups)를 시작했다. 창조경제의 일환이다. 이스라엘의 제도를 본떴다. 첫 명칭은 ‘이스라엘식 글로벌 R&D(연구개발) 지원사업’이다. 1년에 18조원가량을 벤처업계에 쏟아붓고도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자성과 함께 전문가 집단의 투자를 유도하려는 목적이다. 업계의 사정을 가장 잘 아는 민간 투자자가 스타트업에 1억원을 투자하면 정부가 기술 개발과 사업화 자금으로 최대 9억원을 지원해 주는 것이다. 민간 투자자에겐 투자 회사의 지분을 40% 이하로 취득하는 것을 허용했다. 일종의 위험에 대한 대가인 셈이다.

팁스의 효율적 운용과 홍보 효과를 위해선 ‘스타’가 필요했다. 마침 대박을 터뜨려 스타트업계에선 신화적 존재인 호씨가 안성맞춤이었다. 서울대 전기공학-미국 스탠퍼드대 MBA 출신으로 스펙도 괜찮았다. 그가 미국 실리콘밸리에 세운 다국적 영상 플랫폼 ‘비키(ViKi)는 불과 5년 만인 2013년 일본 라쿠텐에 팔렸다.

매각 금액은 무려 2억 달러(당시 환율로 2200여억원). 이후 부인과 함께 SNS인 빙글을 창업한 그는 중기청의 ‘협조 요청’에 55억원의 자본금을 들여 투자회사를 하나 더 만들었다. 100여억원의 자금을 벤처업체에 추가로 투자했다. 호씨가 합류하면서 팁스 운용사는 21곳으로 늘었다. 중기청은 “투자를 받은 133개의 스타트업 가운데 91곳이 해외법인을 설립하는 등 글로벌화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해 말 더벤처스의 대표 디렉터였던 김모씨가 검찰에 구속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마침 검찰은 정부 보조금 부정수급 사범들을 수사 중이었다. 김씨가 5억여원의 정부 보조금을 빼돌린 사실이 적발된 것이다. 이후 검찰은 호씨와 김씨가 공범이라고 판단했다.

호씨 혐의는 20억원의 팁스 사업비를 받게 해주는 대가로 스타트업 5곳에서 30억원 상당의 지분을 받았다는 것. 검찰은 “호씨가 정부 보조금을 대가로 금전적 이득을 취한 것은 알선수재와 사기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더벤처스는 검찰 수사를 반박하는 10개 항목의 입장문을 통해 반발했다. “정말 억울한 것 같다”는 댓글과 “겁이 없거나 철면피”라는 비난이 나왔다.

스타트업계와 다른 에인절투자사는 “투자대가로 해당 회사의 지분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정부가 내세운 지침”이라고 했다. 검찰 논리라면 21개의 회사 관계자 모두가 잠재적 범죄자라는 주장이다. 중기청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검찰 수사에 대해 말할 입장이 아니다”는 것이다. 검찰 수사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잔뜩 주눅이 든 느낌이다.

검찰과 중기청의 입장이 엇갈리면서 스타트업에 대한 에인절투자는 당분간 타격을 받을 것이다. 미국은 1년에 5만여 명의 에인절투자자가 20조원 규모를 굴리는 반면 한국은 1000억원도 채 안 된다고 한다. 더욱이 스타트업의 90%가량이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으로 불리는 단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고꾸라지는 경우가 많다. 검찰은 팁스가 제대로 운용되기 위해선 민간 기업이 정부 예산을 갖고 흥정을 벌이는 불법은 차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세금을 헛되게 쓰지 못하도록 돈 한 푼 한 푼도 정부의 감독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호씨가 구속되자 지인들은 “그냥 강남에 빌딩이나 사서 월세나 받으면서 살 걸…”이라고 말했다. 사건이 끝나면 미국으로 사업체를 옮길 것이란 얘기도 있다. 우리에게 창조경제는 어떤 의미일까.

 박재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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