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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2035] 거짓말 공화국, 거짓말쟁이들의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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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현
JTBC 경제산업부 기자

중학교 1학년 1학기 중간고사를 떠올리면 아직도 식은땀이 난다. 대학 입시의 첫 단추라는 생각에 나름대로 비장했다. 기술·가정 주관식 마지막 문제로 ‘민물고기 이름을 10개 적으시오’가 나왔다. 예상했던 바, 믿는 구석이 있었다. 시험 시작 전 막판 벼락치기를 하면서 앞·뒷자리 친구들과 낄낄대며 스카치테이프에 물고기 이름을 몇 개 적어 벽에 붙여뒀다. ‘이름 두세 개만 채우면 100점인데…’하며 커닝 테이프를 슬쩍 봤다.

답안지를 제출하고 콧노래를 부르며 가방을 싸는데 담임선생님이 교무실로 나를 불렀다. “네가 커닝을 했다고 애들이 난리가 났다.” 머리가 쭈뼛 섰다. 공범이라고 믿었던 자들의 배신이었다. 소름과 공포가 엄습했다. 초등학생 딱지를 갓 뗀 초범임을 감안해 주관식 점수만 0점 처리됐고 부모님께는 “뒷면에 주관식 답을 쓰는 걸 까먹었다”고 둘러댔다. 그 후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는 거짓말이라면 치를 떨었다.

그런데 학교를 졸업하고 보니 원칙대로 산다고 바보 소리를 듣는 일이 많다. 입사 면접장에서 “왜 기자가 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대학원에 다니고 싶은데, 기자라면 학업과 병행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정말 솔직히 말한 옆자리 남자는 그 뒤로 다시 볼 수 없었다. 집에서 몇 년째 같은 통신사의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데 한 달에 몇 번씩 “업체를 바꾸면 현금 20만원을 준다”는 전화가 온다. 지인들은 모두 가만히 있으면 손해라며 통신사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 바꾸겠다 으름장이라도 놓으라고, 그러면 상품권을 준다고 조언한다. 쇼호스트가 “지금이 마지막 최저가 찬스”라고 재촉해서 급하게 산 물건들, 지금 인터넷에 검색하면 여전히 홈쇼핑보다 더 싼 가격으로 살 수 있다.

거짓말이 판을 치니 사람들 마음도 점점 닫힌다. 얼마 전 시민 인터뷰를 하러 나가 50명에게 말을 걸었는데 모두 거절당했다. 5년 전엔 그래도 한 시간 동안 대여섯 명은 카메라 앞에서 말을 해줬는데…. 취재원에게 확인할 것이 있어 전화통화를 하다 “혹시 지금 녹음하고 있느냐”고 의심받는 일도 많아졌다.

부패와 사기가 일상화된 사회에 사는 사람이 거짓말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영국 노팅엄대 연구진이 23개 국가에서 대학생 또래를 상대로 개개인의 정직성을 측정하는 실험을 했는데, 거짓말과 규칙 위반이 일상적인 나라일수록 참가자들이 거짓말하는 확률이 높았다.

워킹맘 복지도 챙기고, 청년 일자리도 늘리고, 전철역도 만들어주겠다, 총선을 앞두고 쏟아진 공약 중에서 거짓말이 아닌 것이 몇 개나 될까. 현실성 없는 거짓말 공약이 남발하는 건 투표하러 갈 것이란 우리의 약속도 열에 여덟 아홉은 잠 때문에, 나들이 때문에 ‘본의 아닌’ 거짓말이 될 것을 그들도 알기 때문은 아닐는지.

이 현 JTBC 경제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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