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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오도독~ 봄 별미죠, 오묘한 미더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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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바다는 푸지다. 시방 남해바다에는 미더덕이며, 가리비며, 갯가재며 제철 맞은 갯것이 넘쳐난다. week&이 강레오 셰프와 함께 남해로 나섰다. 신선한 식재료를 물색하는 요리사에게 그리고 맛을 찾아 떠난 식객에게 바다는 풍족했다. 다디단 봄 해산물이 혀끝에 봄을 불렀다.



강레오 셰프와 함께 떠난 남해 미각산책




“미더덕회 드셔보셨나요?”
그래, 시작은 이 말 한마디였다.
 
week&이 남해바다로 한달음에 내달린 것은 겨우(?) 미더덕 때문이었다. 한 달쯤 전 원조 스타 셰프 강레오(40) 반얀트리클럽앤스파 이사와 나눈 ‘봄 식재료 담화’가 발단이었다. 강레오 셰프에게 “봄 하면 떠오르는 맛”을 물으니 대뜸 미더덕회를 들이밀었다.

해마다 봄이면 알 밴 꽃게나 주꾸미를 취재하러 바다에 나가는 것이 여행기자의 오랜 의례였다. 벚꽃이 피면 섬진강에 황어가 올라오고 남해바다의 참돔 맛이 찬다는 것쯤도 알고 있었다. 한데 고작 미더덕이라니. 해물찜 부속 재료로만 여겼던 그 미더덕을 회로 먹는다니. 솔직히 회칠 거리라도 되나? 스타 셰프의 미더덕 발언은 여행기자의 오랜 관성에서 한참 벗어난, 참신한 자극과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여행이 시작되었다. 3월 하순 강레오 셰프와 함께 남해바다 식재료를 찾아(솔직히 미더덕회의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경남 남해안의 갯마을을 뒤지고 다녔다. 셰프와 여행기자가 꾸린 ‘봄 맛 원정대’쯤으로 보면 되겠다.

맨 처음 당도한 곳은 경남 창원의 고현마을이었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미더덕의 80%가 이 작은 갯마을에서 나온다고 했다. 음력으로 아직 2월이었지만 고현마을에는 벌써 삽상한 바람이 불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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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더덕이 주렁주렁 달린 그물을 걷어 올리는 강레오 셰프와 이영철씨.

 

오전 6시 이영철(53) 선장의 배를 타고 미더덕 양식장으로 나갔다. “6월까지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데 찾아왔다”는 어부의 핀잔에도 (그놈의 미더덕회 때문에) 호기심이 염치를 앞질렀다.

뗏목과 부표가 떠 있는 미더덕 양식장에 도착했다. 기계를 돌리자 그물이 올라왔다. 바다에서 막 올라온 미더덕은 어른 엄지손가락보다 퉁퉁했고 검지 만큼 큼직했다. 익히 알고 있던 그 미더덕의 크기가 아니었다. 3년 전부터 미더덕 배를 탔다는 강 셰프가 네모난 칼로 능숙하게 미더덕 껍질을 벗겨냈다. 탱글탱글한 미더덕을 툭 가르니 바닷물과 개흙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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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더덕 껍질을 돌려 깎는 모습. 껍질이 질기기 때문에 손에 익지 않으면 어려운 작업이다.



배를 가른 미더덕에서 단내가 피어올랐다. 아작아작 씹어 꿀떡 삼키자 달곰한 맛이 입안에 퍼졌다. 바다 위에서 바닷물에 씻어 먹은 미더덕은 여태 해물찜 따위에서 경험했던 그 미더덕의 맛이 아니었다. 아니 껍질을 벗긴 다음 씻어서 먹어야 하는 것도 처음 알았다. 미더덕을 수확하는 봄, 딱 한철 즐길 수 있는 강렬한 맛이었다.

“미더덕은 멍게와 비슷해요. 하지만 멍게는 향이 강해서 다른 식재료와 어울리기 힘들죠. 미더덕은 향이 은은해서 차갑게 즐겨도 되고 뜨거운 요리에 써도 좋아요. 미더덕 오이소박이를 만들어도 맛있고 된장국에 넣고 끓이면 향긋한 국물 맛을 낼 수 있어요”

 미더덕회의 즐거운 충격(?)을 뒤로하고 맛 원정대는 경남 고성의 가룡마을로 향했다. 가룡마을에서는 봄 가리비 수확이 한창이었다. 20여 가구가 전부인 가룡마을은 주민 대부분이 굴 양식에 종사하는데, 이태 전부터 마을에 가리비 양식 바람이 불었다고 한다. 고성군에서만 지난 한 해 40명이 넘는 어민이 굴에서 가리비로 양식 품목을 바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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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비 통발을 끌어 올리고 있는 구자홍씨.



가룡마을에서 굴·홍합·가리비 등을 양식하는 젊은 어부 구자홍(28)씨의 배를 얻어타고 가룡마을 앞바다로 나갔다. 자란도·와도 등 크고 작은 섬이 떠 있는 가룡마을 바다는 잔잔했다. 배로 15분을 달려 양식장에 도착했다. 부표를 들어올리자 어른 손바닥 만한 가리비가 통발에 딸려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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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층이 나뉜 통발에 가리비가 가득 담겼다.

“봄 가리비가 가을 가리비보다 살이 쫀득쫀득해요. 바다에서 겨울을 나면서 단련된 거죠. 칼국수를 끓여도 달라요. 가을 가리비보다 봄 가리비에서 짭조름하고 시원한 맛이 더 우러나와요.”

구씨가 가리비 입을 쫙 벌리자 두툼한 가리비 속살이 드러났다. 바다에서 건져 올린 가리비는 싱싱했다. 껍데기 가장자리에 붙은 검은색 눈을 보자 강 셰프의 눈이 커졌다.

“오랜만에 싱싱한 놈을 보네요. 가리비 눈이 너덜너덜한 것도 서울에서는 없어서 못 사는데. 그런데 크기가 조금 아쉽네요. 양식 레스토랑에서는 가리비를 관자 부분만 떼서 조리를 해요. 회로 먹거나, 반투명한 상태로 살짝 익히죠. 그러려면 관자가 커야 하는데…. 한 달만 더 키워도 좋겠네요. 요리사가 어떤 식재료를 선호하는지 의외로 현장의 생산자가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요리사가 부엌에서 나와 맛 여행을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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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비찜. 가리비 구이보다 부드럽게 씹힌다.



고성 동화마을의 음식점에서 가리비 요리를 맛봤다. 사실 이맘때 고성에 가면 어지간한 식당에선 다 가리비 요리를 맛볼 수 있다. 그만큼 흔하다는 얘기다. 조개 구이의 하이라이트를 이루는 가리비 구이를 기대했지만 동화자연산횟집 이경순(50) 사장은 가리비는 굽는 것보다 찌는 게 훨씬 낫다고 소개했다.

“가리비는 단백질이 풍부해서 조금만 오래 구워도 살이 질겨요. 냄비에 채를 받치고 살짝 찌면 구이보다 식감이 훨씬 부드럽죠. 식어도 맛이 살아 있어요.”

가리비찜은 향기부터 식탁을 장악했다. 고소하고 달콤한 향이 김과 함께 피어 올랐다. 탱탱한 가리비살은 씹을수록 고소했다. 양념을 더할 것 없이 가리비 자체의 짭조름한 맛을 즐기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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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비, 털게, 도다리, 낙지 등 제철 해산물로 차린 식탁.



강 셰프는 가리비 양식이 성공하면서 남해를 대표하는 봄 먹거리도 바뀔 것으로 내다봤다. 강 셰프의 말마따나 양식 기술의 발전은 우리네 제철 밥상의 풍경을 바꾸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구다. 한동안 비싸서 못 먹었던 대구는 2009년부터 꾸준히 치어를 방류한 덕분에 겨울철 대표 음식으로 거듭났다. 지금은 구경도 하기 힘든 명태의 자리를 대구가 물려받은 것이다.

유사한 사례는 수두룩하다. 광어·우럭부터 전복·매생이까지 우리의 식탁은 날로 풍성해지고 있다. 10년쯤 뒤의 봄 맛 원정대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제철 음식을 맛보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강 셰프가 개척한 ‘식재료 로드’를 따라나선 2박3일의 봄 맛 원정은 고됐다. 새벽부터 배를 탔고 해가 진 뒤에도 갯벌에 나갔다. 그래도 유쾌했다. 미더덕과 가리비 말고도 ‘딱새’란 별명이 더 편한 갯가재, 갯벌에서 잡아올린 낙지, 남해안의 대표 봄 맛 털게와 도다리를 맛보느라 원정 내내 즐거웠다. 봄날에 맛본 남해의 맛은 하나같이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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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손민호·양보라 기자 plovenson@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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