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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 속 그 이야기 <72> 남산순환나들길 쉽게 걷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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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지체장애인 전상실(오른쪽)씨가 활동보조인 윤미경씨와 함께 서울 ‘남산순환나들길 쉽게 걷는 길’을 찾았다. 남산순환나들길 쉽게 걷는 길은 휠체어나 유모차도 불편 없이 통행할 수 있는 무장애 길이다.



편의시설 잘 갖춰 시각 장애인 걷기에 딱, 휠체어는 좀 버거워

4월은 장애인의 달이다. 오는 20일이 장애인의 날이다. 장애인의 달을 맞아 장애인이 쉽게 걸을 수 있는 길을 찾아봤다. 이제껏 ‘그 길 속 그 이야기’에서 다뤘던 트레일에도 장애인을 고려한 코스가 여럿 있었다. 대표적인 곳이 제주올레다.
제주올레는 ㈔제주올레가 지정한 휠체어 구간이 10개 있다. 그러나 장애인 입장에서 길을 걸은 것은 아니어서 코스를 꼼꼼히 확인하지는 못했다.
이번에는 다르다. 휠체어 없이는 거동이 불편한 1급 장애인과 함께 서울 남산순환나들길의 ‘쉽게 걷는 길’ 구간을 걸었다. 길을 걸었다기보다 점검했다.
남산순환나들길은 현재 가장 많은 장애인이 찾는 탐방로이지만, 장애인 입장에서 걸으니 아쉬운 것투성이었다. 휠체어가 다니는 길은 유모차도 다닐 수 있다. 휠체어가 다니는 길은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길이라는 뜻이다.



장애인과 다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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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순환나들길 쉽게 걷는 길 구간은 장애인 사이에서 이름난 산책로다. 남산케이블카 승강장 근처 공원 입구에서 시작해 와룡묘~남산골 한옥마을 입구~국립극장을 잇는 3.4㎞ 길이의 길이다. 원래 이 길은 자동차가 다니는 남산북측순환로였다. 서울시가 1991년 6월 자동차 출입을 막고 산책길로 바꾼 뒤로 장애인도 걸을 수 있는 길이 됐다. 주말 하루에만 1000명이 넘는 장애인이 이 길을 찾는다. 지난달 28일 지체장애 1급 전상실(53)씨와 한국지체장애인협회 박성오 부장을 남산공원 입구에서 만났다.

“벚꽃 필 때 오면 참 좋아요. 저도 1년에 두세 번은 이 길을 찾아요.”

휠체어에 앉은 전상실씨가 아직은 앙상한 벚나무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열여덟 살에 1급 장애 등급을 받았다는 전씨는 끝내 ‘길을 걸었다’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남산순환나들길은 장애인 편의시설이 잘 돼 있는 탐방로다. 시각 장애인에게 길을 알려주는 노란색 유도 블록이 깔려 있었고, 장애인 화장실이 거의 1㎞마다 보였다. 갈림길과 화장실 근처에는 시각 장애인을 위한 음성 유도기도 설치돼 있었다. 시각 장애인이 평소에 갖고 다니는 리모컨을 누르면 15m 이내에 있는 음성 유도기에서 주변 길 상황과 편의시설 안내 음성이 나온다.

경사도는 아쉬웠다. 서울시도 인정했다. 최호철 서울시 복지본부 장애인 편의시설팀 주무관은 “차도를 산책길로 꾸몄기 때문에 휠체어 장애인에게는 경사도가 있는 편”이라며 “애초에 장애인을 위해 만든 길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와룡묘 부근의 경사는 6.1도였다. 장애인 등의 편의증진법의 기준(4.76도 이하)에서도 한참 벗어났다. 와룡묘 근처에 설치된 전망 데크는 너무 가팔랐다. 보행로에서 전망 데크로 진입하는 경사로의 경사가 12.9도였다. 전동 스쿠터는 올라갔지만 수동 휠체어는 버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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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순환나들길 쉽게 걷는 길은 대부분 경사가 완만해 수동 휠체어도 다닐 수 있다.



필동약수터를 지나자 종점으로 가는 지름길이 나왔다. 계단을 경사로로 바꾸고 ‘휠체어와 유모차도 지나갈 수 있는 길’이라는 팻말을 세웠다. 그러나 비장애인도 걷기 힘들 정도로 경사가 있었다. 경사도를 측정하니 12.2도가 나왔다.

“우리는 못 가겠다. 너무 가파르잖아. 비장애인은 계단만 없애면 다 되는 줄 알아요. 그게 아닌데.”

전상실씨 얼굴에서 아쉬움이 드러났다. 남산순환나들길 쉽게 걷는 길 구간은 시각 장애인에게는 좋은 길이었다. 실제로 혼자 산책 나온 시각 장애인을 수시로 마주쳤다. 그러나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는 장애인에게는 부족해 보였다.


무장애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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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공원 입구에서는 서울시가 운영하는 시각 장애인 전용 택시를 자주 마주친다.

 

요즘 ‘무장애 길’이라는 단어가 많이 쓰인다. 턱이나 웅덩이 같은 방해물을 없애고 데크로드를 설치하는 등 조치를 취해 휠체어·유모차가 통행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만든 길이다. 장애인의 통행을 방해하는 것들을 없앴다고 하여 무(無)장애 길이다.

무장애 길이라고 불리는 트레일은 전국 곳곳에 있다. 중앙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정한 공원(국립공원부터 도시공원까지)에도, 민간단체가 조성한 트레일에도 무장애 길이 있다. 이름도 여럿이다. 무장애 숲길, 무장애 탐방로, 함께 걷는 길, 쉽게 걷는 길 등 각자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른다. 이름이 많다는 건 개념이 정립돼 있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법률에는 무장애 길을 규정하는 조항이 없다.

무장애 길과 관련해 알아야 할 법률이 있긴 있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 등의 편의증진보장법)’이다. 이 법률 시행규칙 2조 1항에 ‘휠체어 사용자가 통행할 수 있도록 접근로를 유효 폭 1.2m 이상 경사 4.76도 이하로 만들어야 한다’는 기준이 있다. 이 기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 흔히 무장애 길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장애인 등의 편의증진보장법은 엄밀히 말해 무장애 길과 관련이 없다. 이 법은 길을 여행의 목적이 아니라 이동 수단으로만 이해하기 때문이다. 법은 시설물로 이동하는 접근로에만 관심을 둔다. 이때의 시설물은 지붕과 바닥이 있는 시설, 즉 식당·화장실 등을 가리킨다. “아니, 공원에 산책하러 가지, 화장실을 이용하러 가는 건 아니잖아요? 시설이 없으면 길을 걷지 말라는 거랑 똑같지 않습니까?”

김인순(52) 한국장애인개발원 환경부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장애인 등의 편의증진보장법에 허점이 있다는 것은 보건복지부·국토교통부 등도 알고 있다. 그래서 지난해 7월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인증제도(이하 BF인증제도)’를 도입했다. BF(Barrier Free)인증제도는 공공시설과 공중이용시설로 접근하는 통로를 폭 1.2m 이상 경사 3.18도 이하로 만들도록 정하고 있다.

하지만 BF인증제도에도 허점이 많다. 강제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BF인증을 받지 않았다고 해서 처벌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BF인증을 받아야 하는 공공시설에 공원이 빠진 것도 문제다. 또 BF인증을 받더라도 별다른 혜택이 없다. 오히려 인증 수수료 403만원(부가세 별도)만 들어간다.


무장애 길의 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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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동약수터에서 종점으로 가는 지름길의 경사가 12.2도였다. 비장애인이 가기에도 가팔랐다.



무장애 길에 관한 정보를 얻는 것도 쉽지 않다. 어느 트레일이 무장애 길인지, 무장애 길에서도 어느 구간이 무장애 구간인지, 무장애 길을 어떻게 찾아가야 하는지 알 길이 막막하다. 그나마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곳이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운영하는 ‘걷기여행길 종합안내포탈(koreatrails.or.kr)’이다. 걷기여행길 종합안내포탈은 장애인·노약자도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트레일 15곳을 따로 분류해 ‘쉽게 걷는 길’이라는 메뉴로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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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남산순환나들길 쉽게 걷는 길을 산책하는 시각장애인.



쉽게 걷는 길 15개 코스도 저마다 단점이 있다. 이를테면 서울 중구 남산순환나들길의 쉽게 걷는 길 구간은 찻길을 산책로로 바꿨기 때문에 폭이 넓지만 일부 구간의 경사가 심하다. 서울 성북구 북한산 둘레길은 2코스와 18코스 일부를 무장애 탐방로로 꾸몄다. 데크로드의 폭과 경사도는 적합하지만, 무장애 탐방로까지 가는 길이 까다롭다. 차도를 통과해야 한다. 편도 600m 길이의 무장애 탐방로를 경험하겠다고 북한산까지 찾아가는 장애인은 거의 없다고 장애인 단체는 주장한다. 경북 문경 ‘새재 넘어 소조령길’의 쉽게 걷는 길 구간에서는 전기차가 다닌다. 전기차도 거동이 불편한 이용자를 위한 시설이지만 조심해야 한다. 서울 서대문구 안산자락길의 평가가 그나마 제일 낫다. 안산자락길은 국내 최초의 순환형 무장애 숲길이다. 길을 되돌아가지 않아도 된다.

쉽게 걷는 길 15개 코스를 선정한 기준은 무엇일까. 걷기여행길 종합안내포탈을 관리하는 서진호 한국관광공사 관광레저팀 과장에게 물었다. 서 과장은 “관광공사가 정한 기준은 없다. 각 트레일 관리자가 무장애 길이라고 지정한 곳 위주로 리스트에 넣었다”고 답했다. 이번에는 15개 코스의 쉽게 걷는 길 관리자에게 물었다. 지자체 8곳과 국립공원관리공단 6곳, 민간단체 1곳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유효 폭 1.2m 이상 경사 4.76도 이하’ 기준을 정확히 아는 담당자는 한 명도 없었다. 자체적인 기준을 정해 무장애 길 타이틀을 붙였거나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는 곳도 있었다. 1.2m는 수동 휠체어와 사람 1명이 나란히 통과할 수 있는 최소한의 폭이며, 4.76도는 수동 휠체어가 뒤집히지 않고 경사면을 오를 수 있는 최대한의 경사다.

박성오 한국지체장애인협회 편의증진국 부장은 “‘무장애 길’이라는 말만 믿고 갔다가 애먹은 사례가 한 둘이 아니다. 무장애라는 단어를 남발하지 않도록 법적 근거를 신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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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정보=남산순환나들길 전체 구간은 9.1㎞에 이른다. 대중교통과 연결이 쉬운 남산 도서관이나 국립극장에서 걷기를 시작하는 사람이 많다. 남산 도서관에서 시작한 길은 남산공원 입구~와룡묘~필동약수터~국립극장~N서울타워를 지나 다시 남산 도서관으로 이어진다. N서울타워 주변 구간은 경사가 있는 편이다. 유모차나 휠체어를 이용한다면 남산공원 입구에서 시작해 국립극장에서 끝나는 ‘쉽게 걷는 길’ 구간만 골라 걸으면 된다. 남산공원 운영과 02-3783-5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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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손민호·홍지연 기자 ploveson@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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