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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는 하나인데 장모는 100명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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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입구에 탁상달력이 놓여 있다. 1986년 6월이 펼쳐져 있다. 한 달 일정이 빼곡하다. 9일부터 14일까지 강릉단오제 취재다. 그 옆에 붙은 작가의 메모. “강릉 단오굿은 우리나라 제일의 마을축제이다. (…) 단오가 가까워지면 나는 강릉으로 달려가고파 가슴 설렌다.” 국내 무속사진을 기록하는 데 열정을 다한 김수남(1949~2006·사진)씨의 말이다.

무속 사진작가 김수남 10주기전
30년 굿판 누빈 ‘예술혼’ 되살려

음력 5월 5일인 단오는 올해 6월 9일 돌아온다. 강릉단오제는 2005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올해에도 마을사람들은 신에게 제사를 올리며 평화롭고 풍요로운 한 해를 기원할 것이다. 지금은 하늘나라에 있는 김수남 작가도 찾아올지 모른다. 생과 사의 경계에 서 있는 ‘굿판’을 찾아 국내외를 누볐던 그 아닌가.

김 작가는 행복한 사람이었다. “다큐멘터리 사진가는 현장에서 최후를 맞을 때 가장 행복할 것”이라고 되뇌이던 것처럼 2006년 2월 태국 치앙라이 고산족을 취재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10주기를 기억하는 특별전 ‘김수남을 말하다’가 6일부터 6월 6일까지 서울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린다. 유족 측이 지난해 박물관에 기증한 자료 17만여 점 가운데 대표작 100점을 골랐다. 70년대부터 30여 년 간 한국 및 아시아 각국 무속 현장을 포착했던 고인의 행적을 돌아보는 자리다. 방울과 부채 대신 카메라를 든 ‘사진박수’로 불렸던 그의 면모가 한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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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남 작가가 1981년 찍은 ‘제주도 신굿’. 자손의 번창과 출생을 기원했다.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굿은 종합예술이다. 개인과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빌었다. 죽은 이를 보내고, 산 자를 위로했다. 70년대 새마을운동 시절에는 미신(迷信)이란 딱지가 붙어 괄시를 받기도 했다. 김 작가는 이런 ‘사라지는 것에 아쉬움’ 때문에 카메라를 들었다. 촬영을 거부하는 무속인과 신분 노출을 꺼리는 제주(祭主)와 가까워지려고 거푸 술잔을 기울였고, 덩실덩실 함께 춤을 추기도 했다.

“마누라는 한 명인데 장모는 백 명”이라고도 했다. 그가 10년 작업 끝에 93년 20권으로 완간된 ‘한국의 굿’(열화당) 시리즈는 지금도 기념비적 작업으로 꼽힌다.

전시는 삶과 죽음의 굴레를 벗어나려는 인류 공통의 소망을 다룬다. “죽음이 곧 시작이고 삶의 끝이 죽음”이라고 믿었던 작가의 예술혼이 사진으로, 육성으로, 영상으로 되살아난다. 민속박물관 김형주 학예사는 “종전의 김수남 전시가 지역별 굿문화에 맞춰졌다면 이번에는 생과 사라는 보편적 주제에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박정호 문화전문기자 jhlogo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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