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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유의 시시각각] 어르신 홀리는 최면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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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유
논설위원

서울 종로의 탑골공원과 종묘공원은 실버사회의 거울이다. 수도권 곳곳에서 몰려든 어르신들이 나누는 인생사가 흥미롭다. 왕년에 한 가락 했다는 분, 자식에게 배신당했다는 분, 일하고 싶어 죽겠다는 분…. 몇 차례 공원을 둘러봤는데 때가 때인지라 화제는 역시 총선이었다.

 ▶어르신 A:김종인(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이 일흔여섯이잖아. 팔순까지는 여의도서 월급 받겠네. 부럽다. 나도 1940년생 용띠인데 할 일이 없어.

▶어르신 B:70대 전성시대잖아요. 새누리당 강봉균(선거대책위원장)은 나보다 두 살 적은 일흔셋, 이한구(공천관리위원장)는 일흔하나. 동생들이 펄펄 난다, 날아.

▶어르신 C:난 노인 일자리 많이 만드는 당 찍을 거야. 넘치는 힘 좀 써야지.

그때 한 어르신이 끼어들었다. “아따, 정신들 차려. 곱게 늙어야지, 정치꾼처럼 노욕 부리다 탈나.” 순간 침묵, 그리고 오가는 고성. “일자리 준다는 데 받아 먹으면 그만이지, 왜 시비야.” “손자들도 펑펑 노는데, 노망났군.” “한두 번 속나, 가짜야 가짜.” 말은 거칠었지만 뼈대가 있었다. 서울메트로에 따르면 두 공원과 맞닿은 지하철 종각·종로3가역의 경로 우대 이용자는 하루 1만6000명에 이른다. 이들 중 상당수는 공원 안팎에서 삼삼오오 말벗이 되거나 바둑·장기를 두며 소일한다. 인생역정과 생각이 달라 시비도 잦지만 토닥이며 동병상련한다. 고령화 사회의 자화상이다.

그런 어르신들의 총선 영향력이 커졌다. 유권자 4명 중 한 명꼴로 60세를 넘었다. 전체 유권자 4210만 명 중 60대 이상이 984만 명(23.4%)으로 역대 최다 연령층으로 부상한 것이다(중앙선관위). 지난 총선 때보다 167만 명 늘어난 결과다. 60대는 520만 명, 70대 이상은 464만 명이다. 그간 연령층대 1위였던 40대는 884만 명(21%)으로 60대 이상에게 추월당했고, 2위였던 30대는 761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지난 총선의 평균 투표율은 54.2%였는데 60대 이상이 68.6%로 가장 높았다. 따라서 숫자도 많아지고 투표율도 높은 ‘그레이 캐스팅 보트 시대’에 돌입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연히 정치권은 어르신 잡기에 혈안이다. 재탕·차용·베끼기식 ‘최면(催眠) 걸기’ 공약이 난무한다. 근로의욕이 넘치는 이들에게 일자리 유혹은 강렬하다. 새누리당은 2020년까지 50만 개, 더불어민주당은 100만 개, 국민의당은 30만 개를 어른신용으로 창출하겠다고 한다. 여기에 의료비 정액제와 근로수당 두 배, 기초연금 30만원 균등 지급 등의 복지 덤을 듬뿍 얹었으니 경로사상이 하늘을 찌른다. 당장 노인 전성시대가 열릴 기세다. 인공지능(AI) 중심의 산업구조 개편으로 향후 5년 내 700만 개의 일자리가 기계로 대체되고 새 일자리는 200만 개에 그칠 것이라는 스위스 다보스포럼 전망과는 거꾸로다. AI를 머쓱하게 하는 정치인들의 역량이 놀랍다.

정치권의 최면에 어르신들의 마음은 춤을 춘다. 여야·이념·성향 구분 없이 융단구애를 하니 더더욱 그렇다. 지역구는 물론 47석이 걸린 비례대표 정당 투표도 그러는 듯하다. 역대 최장이라는 33.5㎝ 길이의 정당 투표용지는 어르신들의 선구안 시험대다. 당 이름이 21개나 되니 말이다. 집에 배송된 선거 공보문을 뜯어보니 정당 팸플릿은 9개뿐이다. 선관위에 물었더니 12곳은 돈이 없어 팸플릿조차 만들지 못했단다. 당명은 현란하다. 1~4번인 4당 뒤로 기독자유당·민중연합당·친반통일당·통일한국당 등 17개가 줄지어 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은 민주당, 국민의당은 개혁국민신당과 헷갈릴 것 같고 새누리당의 옛 이름인 한나라당도 있다.

여하튼 선거가 꼭 일주일 남았다. 그간 균형추 역할을 했던 40대보다 많아진 60대 이상의 표심은 초고령화 사회로 가는 정치 풍향계다. 공원에서 들은 어르신의 말이 생생하다. “정치는 최면이고 가면이야, 속고 속이는. 그래도 난 투표할 거야, 할 일도 없고. 누굴 찍지?”

양영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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