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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27%를 위한 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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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
사회부문 차장

단체 여행을 하면 이런 경우가 있다. 집단 쇼핑에 이끌려 갔는데 둘러보니 딱히 마음에 드는 물건이 없다. 뜨내기를 상대하는 곳이라 그런지 상품도 조악해 보인다. ‘그래도 이왕 왔으니’라는 생각에 다시 돌아봐도 눈에 들어오는 게 없다. 빈손으로 우두커니 서 있자니 가이드 눈치를 살피게 된다. 그때 드는 생각이 있다. ‘손님들이 자꾸 사주니까 가이드가 이런 데로 데려오는 것이다. 나는 저항하리라.’

“오빠, 그거 해봤어요?” “오빠랑 하고 싶기는 한데 아직 그날이 아니라서요.” 배우 조보아가 불온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여성 비하 논란을 부른 선거관리위원회가 내놓은 투표 독려 영상의 장면이다. ‘국민 애인’ 설현도 애교 작렬 포즈로 독려 활동에 참여했다. 화장품 고르듯, 휴대전화 고르듯 소중한 한 표의 권리를 행사해 보라고 권한다. 이런 캠페인의 효용성에 의문을 품다가 ‘오죽하면 이렇게까지 하겠나’라는 생각에 이른다.

유권자의 27%가 부동층(지난달 말 기준)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20대만 따져 보면 그 수치가 47%다. 절반 가까이가 찍을 후보나 정당을 못 찾았거나 굳이 찾으려고 하지도 않았다는 얘기다. 시간당 최저임금 9000원(새누리당), 1만원(더불어민주당)의 유혹도 소용이 없었나 보다. ‘옥새런’과 ‘셀프 공천’의 막장 드라마가 손님 쫓는 역할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선거라는 게 원래 이런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영국 총선에서 모든 후보는 각 선거구의 당원 투표를 통과한 이다. 중앙당이 ‘전략 공천’ 차원에서 내세운 이들도 있으나 그들 역시 당원 투표를 거치지 않으면 후보가 될 수 없다. 미국의 후보도 지역구 당원(일부 지역에서는 비당원도 참여) 투표를 거쳐야 한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OO(지역명)의 아들’이라고 우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두 나라에 비례대표(한국 20대 총선 비례대표 후보의 평균 재산이 20억원이 넘는다)는 없다. 그래도 장애인, 이민자, 노조 활동가, 각종 전문직 출신이 꽤 많은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정계에서 은퇴한 영국 정치인 데이비드 블런켓(토니 블레어 정부에서 교육부·내무부·노동부 장관 역임)은 선천적 시각장애인이다. 셰필드의 유권자들은 총선에서 그를 여섯 번 뽑았다.

마음에 안 드는 물건 큰맘 먹고 사주는 것도 한두 번이다. 손님들이 먼 산만 바라보고 있다면 상점의 운영 방식을 바꿔야 한다. 안 그러면 손님이 고달프다.

이상언 사회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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