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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을 살아도 난 오늘을 그리는 사람이오…김병기 ‘백세청풍’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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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 선생의 개인전 ‘백세청풍: 바람이 일어나다’가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작품 ‘공간반응’(유화, 2015년).


리뷰: 100세 화가 김병기 백세청풍’전

100세 시대에 100세 화가가 나타났다. 국내 최고령 작가 기록을 세운 김병기 선생이다. 1916년생이니 에누리 없이 만 100세다. 유아 사망률이 높아 신생아를 1~2년 뒤 호적에 올리는 그 시절 관행을 고려해보면 선생은 102세나 103세일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그는 현역 화가다. 흔히 고령의 노인을 높여 부르는 옹(翁)조차도 선생께는 붙이기가 저어된다. 그만큼 정정하고 거침이 없다.

지난달 25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막을 올린 선생의 개인전 제목은 ‘백세청풍(百世淸風): 바람이 일어나다’다. 백수(百壽) 개인전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이다.

 기자들과 만난 선생은 만년 청년이었다. 당연히 건강과 근황을 여쭙는 질문부터 시작되었는데 그는 씩씩하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오늘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오. 어제 얘기는 싫소. 오늘과 관련 있는 삶을 얘기합시다. 이런 세월 사는 현실성이 가장 중요합니다.” 선생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가슴으로 날아왔다.

  김병기 선생은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회고전을 계기로 65년부터 머물러온 미국에서 영구 귀국했다. 지난해 베이징전, 올가을에는 도쿄에서 초대전을 연다, 그의 활동 반경이 어디까지 뻗어 갈지 기대된다.

 평창동 언덕배기 작업실 겸 거처에는 새벽까지 그렸다는 캔버스 몇 개가 세워져 있었다. 창문 너머 바라다보이는 북한산을 그렸다는데 삐죽삐죽한 사선의 붓질이 일군 팽팽한 긴장감이 화폭을 찢고 나올 듯 기세가 대단했다. 그 질감 속에는 북과 남을 오가며 겪은 이념 견주기, 한반도와 태평양 건너 미 대륙을 헤맨 영혼의 자유, 고국과 동료들로부터 일부러 자신을 격리시켜 지켜온 고독과 신념의 그림자가 배어 있었다. 화가의 장수 비결은 저 꿋꿋한 그림들 속에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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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토가의 호수’(유화, 1978년)


 김병기 선생은 지하철을 즐겨 탄다고 했다. 오늘의 한국을 보고 즐기기 위해서인데 우리 사회가 어떠냐는 질문에 그는 “부정을 긍정으로 바꾸라, 오래 두면 병이 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쇠를 달궈 망치로 두드리라”고 주문했다. 그가 젊은이 같고 우리는 늙은이 같았다.

 전시 제목 ‘바람이 일어나다’는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 첫머리에 나오는 시 구절이다. 청년 김병기는 수많은 선을 넘으며 이 한마디를 되뇌었다. 그의 그림을 가로지르는 수많은 사선(斜線)은 그가 건너온 분단 조국과 인생의 헤아릴 수 없는 사선(死線)의 은유인지도 모른다. 김병기 선생을 보면 ‘장수 만세’를 부르고 싶다. 그 강건한 정신이 길이 살기를. 전시는 5월 1일까지. 02-720-1020.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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