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레고·스마트워치·전기차…누구나 생산자 될 수 있다

기사 이미지
오픈 소스(open source)=소프트웨어의 설계도에 해당하는 소스 코드(source code) 중 인터넷 등에 무상으로 공개된 것을 뜻하는 말. 누구든 수정·재배포할 수 있다. 대부분의 기업은 자사에서 개발한 소프트웨어의 소스 코드를 극비로 하며 이를 다른 곳에 제공할 때는 사용료를 받는다. 반면 대표적인 오픈 소스인 리눅스(Linux) 운영체제는 누구나 무료로 이용하고 프로그램을 마음대로 변형할 수 있다.

서울 종로구 세운전자상가 5층에 있는 ‘팹랩(Fab Lab) 서울’은 매주 목요일마다 오후 9시까지 불을 밝힌다. 회사나 학교를 마친 후 도서관을 찾듯 팹랩에 온 이용자들은 3D프린터·레이저커팅기·CNC조각기 등 팹랩에 있는 기기로 자신이 만들고 싶은 물건을 출력하고, 자르고, 다듬는다. 사용료는 기기당 1시간에 1000~4000원(3D프린터는 재료 사용량 기준) 정도.

[궁금한 화요일] 산업으로 확장되는 DIY
3D프린터로 제품 만들어 판매
‘공장서 대량생산’ 기존 틀 깨져

5~40달러 오픈소스 활용하면
초등생도 생활기기 만들 수 있어


이용자는 시제품을 만들려는 스타트업부터 생활소품을 만드는 일반인까지 다양하다. 제작실험실(Fabrication Laboratory)이라는 팹랩의 뜻 그대로 누구나 실험하는 곳이다. 지난달 31일 오후 팹랩 서울을 처음 찾은 유기영(29)씨는 “4월 워크숍에서 기기 사용법을 가르쳐준다니 들어볼 생각”이라며 “내게 딱 맞는 물건을 내 손으로 만들 수 있어 기대된다”고 말했다.
 
기사 이미지

메이커들을 위한 제작 세트를 활용해 만든 칫솔 로봇 ‘브러시봇’(맨 왼쪽), ‘레고디지털디자인’(LDD) 소프트웨어로 메이커가 직접 디자인한 기차 모양의 레고 디자인(가운데), 메이커 교육을 받은 초등학생이 들고 있는 제어판 ‘아두이노’(오른쪽)


유씨와 같은 ‘1인 메이커(maker·제조자)’를 꿈꾸는 사람들이 지난 3년간 매년 5000여 명씩 팹랩 서울을 찾았다. 팹랩은 2001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 미디어랩에서 처음 시작돼 현재 세계 36개국에서 130여 개가 운영되는 메이커를 위한 공간이다.

국내에서도 팹랩·시제품공작소 등을 중심으로 메이커 운동(Maker Movement)이 점차 퍼지고 있다. 3D 프린팅 활용 교육 및 보급이 아직 주축이지만 하드웨어 창업 열기로 이어질 가능성도 엿보인다. 김동현 팹랩 서울 디렉터는 “최근 크라우드 펀딩 투자가 활성화되면서 취미를 넘어 창업을 꿈꾸는 메이커들을 위한 여건이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메이커 운동은 ‘누구나 생산자가 될 수 있다’ ‘만들어진 물건을 사기만 할 게 아니라 직접 만들어 쓰고 팔아 보자’는 취지로 미국에서 시작된 제조혁신 운동이다. 미국 정보기술(IT) 분야 출판가 데일 도허티가 2005년 ‘MAKE:’라는 잡지를 창간하고 이듬해부터 메이크 페어라는 박람회를 개최하면서 확산됐다. 국내에선 유명 IT 언론인인 크리스 앤더슨의 저서 『메이커스』(2013·알에이치코리아) 출간 이후 주목을 받았다. 앤더슨은 이 책에서 3D프린팅 등 디지털 기술로 누구나 거대한 공장을 원하는 만큼 이용하고 제품을 만들어 팔 수 있기 때문에 생산과 유통이 민주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메이커 운동은 정보통신기술(ICT)의 발전으로 탄력을 받았다. 이전에도 DIY(Do It Yourself)는 있었지만 주로 가구나 패브릭 제품을 만들어 보는 정도였다. 하지만 요즘의 메이커 운동은 ICT를 통해 ‘공장에서의 대량생산’이라는 오랜 틀을 깬다는 산업적 의미가 강하다. 누구나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로 제품을 디자인할 수 있고, 3D 프린터로 저렴하게 물건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특히 아두이노·라즈베리파이처럼 5~40달러 수준의 저렴한 오픈 소스 하드웨어를 활용하면 초등학생도 생활에 필요한 간단한 IT 기기를 만들 수 있다. 숙련된 기술이나 고가의 설비가 제품 생산에 미치는 영향이 크게 줄어든 셈이다. 생산과 소비의 경계가 무너진 ‘프로슈머’(생산자와 소비자의 합성어)의 도래가 본격화된 것이다.
 
기사 이미지

미국 로컬모터스가 엔진과 배터리를 제외한 대부분의 부품을 3D 프린터로 출력해 만든 전기차 LM3D.


지난 3월 제주국제전기차엑스포에 참가한 미국의 3D프린팅 자동차 제조업체 로컬모터스가 좋은 예다. 로컬모터스는 제주도에 3D 프린터로 전기차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설립하고 싶다고 밝혔다. 로컬모터스는 2014년 3D프린터로 44시간 만에 자동차를 찍어내 화제가 됐던 회사다. 주목할 점은 단순히 외부 자재를 3D 프린팅한 것뿐 아니라 자동차 디자인도 전 세계 수만 명이 제안한 디자인을 활용한다는 것이다. 이 중에서 소비자가 고른 디자인대로 프린터로 찍어준다. 마이클 미네커 로컬모터스 부사장은 “우리는 기존의 자동차 생산 방식을 완전히 뒤바꾸겠다”고 강조했다. 주문과 동시에 제품 제작을 시작하니 재고를 관리하는 비용이 거의 안 든다. 3D프린터로 자동차 외관재를 찍어내고 이를 엔진 등 핵심 부품과 조립하니 1주일 이내에 자동차 제작이 끝난다.

특히 이 회사는 자동차가 실제 달릴 로컬(지역) 환경을 잘 아는 소비자들이 디자인에 참여하는 것을 강조한다. 그래서 3D프린터 공장도 전 세계 100여 개 지역에 소형 공장 형태로 짓는다. 거대한 거점 공장에서 직원 수만 명이 컨베이어벨트 위를 지나는 자동차를 조립하는 완성차 업계와는 완전히 다르다.
 
기사 이미지

기존 기업들도 메이커들에게 문을 열고 있다. 덴마크 완구업체 레고는 레고디지털디자이너(LDD)라는 소프트웨어를 통해 레고 매니어들이 스스로 디자인할 수 있는 디지털 도구를 제공하고 있다. 또 2014년엔 레고 아이디어즈라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사용자들이 제안한 제품 디자인이 다른 레고 사용자들로부터 1만 개 이상의 별점을 받으면 레고 본사가 직접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다. 이외에 세계 최대의 레고 거래 사이트인 브릭링크도 소비자들이 직접 만든 레고 디자인과 블록을 사고파는 MOC(My Own Creation) 거래 코너를 운영하고 있다.

국내에선 카카오가 도전에 나섰다. 카카오는 지난 2월 ‘메이커스 위드 카카오’라는 소비자 주문 기반의 모바일 유통 플랫폼을 선보였다. 소비자가 직접 필요한 물건을 생산하는 메이커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시제품을 보고 소비자들이 사전주문·결제한 수량만큼만 생산한다. 카카오 측은 “이윤을 만들 수 있는 최소 수량 이상의 주문이 들어올 때만 생산해 평균 20% 수준인 재고 물량을 아예 없앤 실험”이라고 소개했다.

|용산·세운상가에도 ‘메이커 공간’   
스타트업 키우는 토양 되기도  


이처럼 소비자가 직접 생산에 참여하는 메이커 운동은 하드웨어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토양이 되기도 한다. 실제 팹랩 같은 메이커 스페이스가 들어선 서울 세운전자상가나 용산전자랜드는 기존의 하드웨어 부품 생태계와 메이커를 위한 공간이 만나 새로운 활기를 찾고 있다. 예를 들어 시각장애인용 점자 스마트워치를 만드는 스타트업 닷(dot)은 팹랩 서울에서 시제품을 만들며 준비한 끝에 지난해 초 SK텔레콤이 운영하는 창업 지원 프로그램에 선정돼 주목을 받았다.

국내 최대 전자상가인 용산전자상가에도 조만간 메이커를 위한 공간인 ‘테크숍 코리아’가 생길 예정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출발한 테크숍은 미국에서 시제품 공작소로 유명하다. 웨어러블 기기 ‘페블’과 트위터 최고경영자(CEO)인 잭 도시가 창업한 간편결제 단말기 ‘스퀘어’ 등이 테크숍에서 시제품 형태로 처음 제작됐다. 테크숍 코리아는 제조 창업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 엔피프틴(N15)이 운영할 예정이다.

엔피프틴 공동창업자인 류선종 전략총괄이사는 “한국의 생산 인프라와 테크숍의 자유로운 제조문화를 결합해 제품 아이디어부터 시제품 개발, 혁신 제품 출시까지 모두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메이커 운동을 창조경제 동력으로”…창작공간 늘어나

국내 ‘메이커 운동’은 최근 2~3년 사이 전국에 다양한 ‘메이커 스페이스(창작 공간)’가 생기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민간 분야에선 우주인 출신 고산씨가 설립한 타이드인스티튜트가 2013년 서울 세운상가에 세운 팹랩서울이 시초로 꼽힌다. 지난해부턴 정부가 메이커 운동을 창조경제의 한 동력으로 키우자고 나서면서 전국 창조경제혁신센터·코리아콘텐츠랩·무한상상실 등에 메이커 스페이스가 생겼다. 대부분의 메이커 스페이스에선 3D프린팅 기기 사용법을 교육받으면 누구나 저렴한 비용으로 이를 이용할 수 있다.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메이커 교육 프로그램도 늘고 있다. 3D프린팅 교육단체인 메이커스빌은 서울 역삼동 창업단지인 팁스타운 내에 창작 공간을 운영하면서 초·중·고생 대상 컴퓨터 코딩과 3D프린팅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메이커버스는 은행청년권창업센터(디캠프)·카카오와 함께 전국 초등학교에 3D프린터를 보급하며 방문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외에 국립 과학관·박물관·한국과학창의재단 등에도 3D프린팅 교육 프로그램이 있다. 팹랩서울도 매년 여름마다 중고생을 대상으로 한 팹틴(fab teen)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전국 대학들도 자체적으로 창작 공간을 마련해 캠퍼스 창업의 전초기지로 활용하고 있다. 이화여대가 메이크존 팹랩을 운영하고 있고 서울대 공대도 지난 3월 3D프린터·레이저 커팅기 등을 갖춘 해동 아이디어 팩토리를 오픈했다.

이 같은 메이커 운동은 새로운 ‘프로슈머’를 키우는 21세기형 교육이기도 하다. 정지훈 경희사이버대 IT디자인융합학부 교수는 “메이커 운동은 이제 국내에서 막 대중화된 단계”라면서도 “소비자로서 만들어진 물건을 수동적으로 사기만 하던 시대와는 분명 다른 세대가 메이커로 성장하면서 이들이 이전과는 다른 제조 문화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집에서 보급형 3D프린터로 자녀와 다양한 소품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박수련 기자 park.suryon@joongang.co.kr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